옛날 옛적 어떤 마을에 아주 작은 고양이 수인이 있었어요. 아주 큰 나무 위 고양이 수인처럼 작은 집에서 홀로 살고 있었죠.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수인 마을이 아닌 인간 마을에서 지내고 있던 이 고양이 수인은 어렸을 때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어요. 작은 몸에 상처가 없는 날이 없었답니다. 그래도 작지만 강한 고양이 수인은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았어요. 방긋방긋 웃으며 자신을 내치는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고양이 수인의 노력 끝에 마침내 고양이 수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갔어요. 작은 고양이 수인에게 이름도 생기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큰 병이 돌게 되었어요. 병에 걸린 사람들은 온몸이 붉게 변하고 높은 열에 시달렸어요. 그리고 결국에는 입에 거품을 내뱉으며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무서운 병을 '붉은 게 병'이라고 불렀어요. '붉은 게 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죽자 마을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바로 인간이 아닌 수인이 마을에 살아 마을신께서 분노하셔 벌을 주시는 것이라는 이야기였죠. 이 이상한 소문은 돌고 돌아 결국 마을 촌장의 귀까지 들어가게 되었어요. 촌장은 작은 고양이 수인을 불길하게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늘 작은 고양이 수인을 내쫓기 위한 방법을 물색했었지요. 소문을 들은 촌장은 곧바로 사람들을 모았어요. 작은 고양이 수인의 죽임으로써 마을 신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말이죠. 촌장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작은 고양이 수인이 그의 작은 집에서 잠들었을 때, 고양이 수인 집의 큰 나무를 불태우는 무서운 계획을 만들었답니다.
촌장의 무서운 계획을 모르는 작은 고양이 수인은 자신을 아껴주던 마을 사람의 집에 몰래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한씨네 아주머니가 챙겨주신 커다란 과일 바구니를 작은 손으로 열심히 옮기고 있었죠. 작은 고양이 수인이 자신의 집에 다다랐을 때, 작은 고양이 수인의 집 앞에 서 있는 반가운 얼굴을 보았어요. 그 사람은 작은 고양이 수인에게 이름을 만들어준 소중한 작은 고양이 수인의 친구였어요. 남자에게 손을 흔든 작은 고양이 수인은 헐레벌떡 집 앞으로 달려갔답니다. 급하게 남자에게 달려간 작은 고양이 수인은 한씨네 아주머니가 주신 과일 중 가장 크고 예쁜 과일을 남자에게 건네주었어요. 하지만 남자는 작은 고양이 수인의 과일을 받지 않았어요. 그 대신 슬프고 또 화난 얼굴로 작은 고양이 수인을 내려다보았어요. 평소와는 다른 남자의 태도에 작은 고양이 수인은 귀를 내리고 한 발자국 물러났어요.
"촌장님한테 또 혼났어요?"
남자는 촌장의 아들이었어요. 촌장은 작은 고양이 수인을 싫어했기에 고양이 수인과 어울리는 남자를 자주 혼내곤 했습니다. 촌장에게 혼나는 날이면 남자는 자주 슬픈 표정으로 고양이 수인을 찾아오고는 했어요. 작은 고양이 수인은 축 늘어진 귀로 남자에게 사과했습니다. 자신 때문에 남자가 슬픈 게 작은 고양이 수인은 너무 슬프고 미안했거든요. 하지만 남자는 평소처럼 작은 고양이 수인의 사과를 받아주거나 작은 고양이 수인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어요. 그저 작은 고양이 수인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죠. 남자의 눈물에 놀란 작은 고양이 수인이 남자에게 다가서자 남자는 크게 소리를 질렀어요. 도망가라고 말이죠.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작은 고양이 수인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어요. 멀리서 기름냄새와 함께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왔습니다. 잘그락. 잘그락. 사람들의 발소리와 무언가 쇠와 부딪히는 기분 나쁜 소리들이 윙윙 울려왔어요. 그때서야 작은 고양이 수인은 남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겁에 질린 고양이 수인이 멍하니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자 남자는 고양이 수인을 힘껏 안아주었어요. 그리고는 작은 고양이 수인을 향해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지민아, 도망가!"
남자의 말에 고양이로 변한 작은 고양이 수인은 숲속으로 달려갔어요. 기름냄새가 나지 않을 때까지, 사람들의 소음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말이죠. 한참을 도망가던 고양이 수인은 얼음길에 미끄러져 절벽 밑으로 굴러떨어지게 되었어요. 소복이 쌓인 눈 덕분에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굴러떨어지면서 돌에 다리를 부딪힌 작은 고양이 수인은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다시금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에 작은 고양이 수인은 엉금엉금 앞으로 기어갔습니다. 아니 기어가려고 했죠. 갑자기 들려지는 작은 몸이 아니었다면 말이에요.
발버둥 치던 작은 고양이 수인을 가볍게 제압한 남자가 작은 고양이를 바구니 속으로 넣었어요. 그리고는 앞으로 힘차게 달려갔죠. 사람이 아닌 호랑이의 모습으로요. 그제야 작은 고양이 수인은 남자가 자신을 잡으러 온 마을 사람이 아닌 자신 구해준 사람 아니 수인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마음이 편안해진 작은 고양이 수인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작은 고양이
수인 이야기
오렌지
지민은 이마 위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놀라 눈을 떴다. 지민의 머리 위로 무언가를 올리던 남자는 갑작스럽게 눈을 뜬 지민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뒤로 물러났다. 낯선 남자의 얼굴에 겁을 먹은 지민이 뒤로 물러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지민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 다리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에 지민은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앞으로 굽힐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끙끙 앓는 지민의 모습을 보고 당황한 남자는 허둥거리며 지민의 팔을 붙잡았다.
"아니, 그니까, 인제, 붕대 감은지 얼마 안돼가지고... 그 움직이시면 안 되거든요..."
남자의 말에 시선을 내린 지민은 자신의 다리가 붕대로 감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잡힌 팔을 따라 시선을 올린 지민이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을 때, 그제야 남자가 자신을 구해주었던 호랑이 수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지민은 동굴 안에 있었다. 지민은 천천히 상황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지민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모두 떠올렸다. 꿈이 아니었어... 악몽 같았던 상황들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는 것을 인지하자 몰랐던 두려움과 슬픔이 지민을 덮쳤다. 지민과 시선을 맞추던 남자는 갑작스럽게 눈물을 흘리는 지민의 모습에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동굴 밖으로 황급히 나가버렸다.
혼자 남겨진 지민은 이제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기분 나빴던 소리는 무기들이 부딪히는 소리였고, 코를 찌르던 기름냄새는 필시 자신의 집이나 나무를 불태우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마을 사람들이 왜 갑자기 자신을 공격하려고 한 것인지 감이 잡히지가 않아서 지민은 더 슬프고 무서웠다. 대놓고 지민을 차별했고 때때로는 지민을 때리거나 지민의 집을 향해 돌을 던진 적도 있었다. 그 마을에 살면서 수인이라는 이유로 많이 당하면서 살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예전 이야기였다. '그'와 지민이 친구가 된 이후로 대놓고 하던 차별도 줄었고 더 이상 지민을 때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랬었는데, 갑자기 왜. 집 앞에서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어났을 뒷 상황이 끔찍했다. 몰려오는 공포감에 이젠 지민의 몸이 벌벌 떨렸다.
주체되지 않는 떨림을 느끼며 지민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데 남자가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나갈 때와 같이 황급히 들어온 남자의 뒤로 다른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급한 걸음으로 지민의 옆에 다가와 앉는 남자와 다르게 새로운 남자는 동굴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유로운 남자의 모습에 지민의 옆에 앉은 남자는 손짓을 하며 남자를 재촉했다.
"아, 형! 빨리! 저... 많이 아프시죠? 잠시만요. 아, 진짜 윤기형!"
"간다, 가. 임마."
눈물 범벅이 된 지민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본 남자는 윤기라는 남자를 다시 한번 채근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하얀 천을 지민에게 건넸다. 지민이 자신에게 건네어진 하얀 천을 받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떨리는 손이 천을 받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떨리는 지민의 손을 본 남자가 표정을 굳혔다. 무표정이 된 호랑이 수인의 얼굴은 작은 고양이 수인에게는 너무 위협적인 것이라서 지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을 뒤로 뺐다.
"제가 미쳐 배려를 못했네요. 아직 손에 힘이 없으실 텐데."
무서운 얼굴과 다르게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에도 다정하고 친절했다. 지민이 남자의 말을 얼마 동안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남자의 얼굴만을 바라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하얀 천을 집어올린 남자는 천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지민의 얼굴로 다가갔다. 얼굴에 닿는 천의 거친 느낌에 지민이 흠칫하자 남자 또한 손을 흠칫 떨었다. '이상한 분'이라고 지민은 생각했다. 남자가 지민의 얼굴을 닦는 사이 지민의 눈물은 어느 순간 멈춰있었다. 몸의 떨림도 꽤 잦아들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저기 나 가도 되냐? 내 반신욕 물 식거든."
지민과 남자 곁에 언제부터 앉아있었는지 모를 윤기가 부러 기침소리를 내며 말했다. 윤기의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란 지민이 고개를 살짝 뺐다. 남자의 손 또한 거두어졌다.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든 지민이 맨얼굴을 몇 번 쓸어내리고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남자를 향해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이니 남자가 지민을 향해 해맑게 웃어 보였다. 네모 웃음, 그래 그 웃음. 남자의 웃음이 '그'와 닮아 지민은 잠시 자신이 긴 꿈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착각을 했다. 그 착각은 곧 다시 윤기에 의해 깨졌지만 말이다.
"다리는 이상 없고. 어디 부러진 것 같으니 며칠 얌전히 누워계시면 나을 겁니다. 뭐, 여기에 감각은 있으시죠?"
지민의 발가락을 힘주어 누른 윤기에 지민이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진지하게 보고 있던 남자가 지민의 새된 비명 소리에 파드득 놀라며 윤기의 팔을 붙잡았다.
"아니, 형. 왜 이렇게 쌔게 눌러."
"이거 놔라, 태형아. 니가 진단 봐, 그럼."
"아니, 그게 아니라. 쫌! 살살해라. 뭐 그런 거지, 하하."
태형의 손을 떼어 낸 윤기가 다시 지민을 돌아보았다. 윤기는 지민을 날카로운 눈으로 훑어 내렸다. 지민은 윤기의 눈빛에서 적개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낯선 것에 대한 경계, 윤기의 태도는 당연한 것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자신을 구해와 치료까지 해준 태형이 이상한 것이었다. 지민에게는 오히려 경계심이 가득한 윤기의 눈이 익숙했다. 날카로운 시선 탓에 떨리는 심장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이제 정신 차렸으니 말해보세요. 너 뭐야?"
"형!"
"조용히 해. 너 내가 지금 많이 봐줬어. 누군지도 모르는 고양이 새끼 치료해줬으면 많이 참았다."
윤기가 다시금 자신을 붙잡는 태형의 손을 거칠게 떼어 냈다. 태형과 언쟁을 하는 도중에도 지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윤기가 고개를 비뚜름하게 숙이고 지민에게 턱짓하였다. 지민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라는 말을 행동으로 재차 반복한 것이었다. 윤기와 태형을 번갈아서 바라보던 지민은 작은 주먹을 꼭 쥐었다.
"제 이름은 지민이고, 고양이 수인..."
"당신이 고양이 수인인 거 이 마을이 다 알아요. 그거 말고. 여기 왜 왔냐고."
윤기의 질문에 지민은 다시 악몽 같던 상황을 떠올렸다. 용기를 얻고자 꼭 쥐었던 주먹이 무색하게 지민의 몸이 다시 벌벌 떨라기 시작했다. 윤기는 냉정한 얼굴로 지민의 떨리는 몸을 바라보았다. 지민의 작은 몸이 떨리는 것이 불쌍하기는 했지만 윤기에게는 낯선 이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태형은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윤기와 지민을 번갈아서 바라보다 떨리는 지민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었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온기에 놀란 지민이 고개를 들자 태형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민은 태형의 눈을 보자 이상하게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숨을 크게 들이쉰 지민은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상황을 설명하였다. 인간 마을에 홀로 살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의 괴롭힘은 있었지만 최근 들어 괜찮아졌다고. 그런데 그날 갑작스럽게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의 집을 공격하려고 했었다고. 그곳에서 도망쳐 오는 길에 절벽에서 미끄러졌고 그 이후는 기억이 없다고 말이다. 지민의 말을 들은 윤기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 이후는 태형이가 물고 왔겠죠. 그쪽을."
윤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지민이 다시 태형의 얼굴을 바라봤을 땐, 이번엔 태형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민의 손 위로 전해져 오는 온기는 여전했지만 지민은 태형의 손이 조금, 아주 조금은 힘이 들어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개 숙이고 있는 태형의 모습을 바라본 윤기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아침 마을 임원들이 찾아와서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할 겁니다. 그때도 방금처럼 대답해주시면 돼요."
"아, 네!"
"애들이 다 중종이라서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뭐, 나쁜 애들은 아닙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민은 윤기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지민의 인사를 받은 윤기는 머쓱한 듯 머리를 한 번 털어내었다. 그리고는 태형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동굴 밖으로 나섰다. 멀어지는 윤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민은 옆에서 여전히 자신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태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까부터 변함없이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태형이 지민은 걱정되기 시작했다.
"저, 태형님."
지민이 태형을 부른 것은 태형에게 괜찮은지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민의 질문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지민을 끌어안은 태형 때문이었다. 당황한 지민이 몸을 빼내지도 그렇다고 안기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있는데, 지민의 귓가로 작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느낌을 받자 그제야 지민은 태형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중간하게 들려 있던 손을 내려 지민이 태형의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지민의 손길에 태형은 몸을 움츠렸지만 지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더욱 지민을 끌어당길 뿐이었다.
"태형님. 저 좀 잠깐만 봐주세요. 네?"
지민의 토닥임에 서서히 눈물을 그쳐가던 태형은 고개를 들어 지민의 얼굴을 마주했다. 여전히 지민의 품에 안겨있는 채로 말이다. 지민이 마주한 태형의 얼굴은 눈가가 붉어져 있었고 양볼이 눈물로 젖어있었다. 태형의 등을 토닥이던 손을 푼 지민이 조심스럽게 태형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왜 우세요?“
지민의 따뜻한 손길을 받으면서도 지민의 시선을 놓치지 않던 태형이 이번엔 자신의 손을 뻗어 지민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태형의 갑작스러운 손길에 지민은 어리둥절했지만 태형의 손이 크고 따뜻했기에 태형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
".. 그냥 지민씨가 많이 무서웠을 것 같아서요. 내가... 내가 다 무서운데, 지민씨는 더 두렵고 힘들 것 같아서요."
뒤이어 들려오는 태형의 따뜻한 말에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지민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갑작스럽게 나오는 눈물에 지민이 당황할 새도 없이 다른 눈물방울들이 줄지어서 계속해서 떨어졌다. 이번에는 태형이 지민을 품 안으로 조심스럽게 안고 등을 토닥였다. 태형의 다정한 손길에 지민은 태형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
그날 밤 작은 고양이와 큰 호랑이는 멈추지 않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 주었어요. 그 소리가 어찌나 구슬픈지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 또한 그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답니다.
작은 고양이 수인은 그날 이후로 큰 호랑이 수인과 함께 생활하였어요. 걱정이었던 마을 임원들과의 만남은 어째서인지 이루어지지 않았지요. 그 대신 다람쥐 수인과 강아지 수인이 와 작은 고양이 수인을 한 번 더 살펴보고 갈 뿐이었지요. 어느 날 임원들이 오지 않는 것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작은 고양이 수인이 큰 호랑이 수인에게 "왜 마을 임원분들은 안 오세요?"라고 물었어요. 그러자 큰 호랑이 수인은 그저 웃으며 "임원 형들이 대부분 늑대라서 아직 몸이 성하지 않은 지민씨가 보기 힘들어서 그래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작은 고양이 수인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될 때까지 마을 임원들이 찾아오지 않자 작은 고양이 수인은 다시 한번 큰 호랑이 수인에게 물었어요.
"저 이제 괜찮은데, 마을 임원분들은 곧 오시나요?"
작은 고양이 수인의 질문에 큰 호랑이 수인은 당황하며 허둥거렸어요. 작은 고양이 수인은 허둥지둥거리는 큰 호랑이 수인의 태도에 이상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작은 고양이 수인은 큰 호랑이 수인의 얼굴을 붙잡고 시선을 마주했어요. 큰 호랑이 수인은 거짓말을 할 때 눈을 못 마주치거든요. 작은 고양이 수인의 행동에 버둥거리지도 못하고 가만히 이끌리던 큰 호랑이 수인은 결국 작은 고양이 수인에게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 그니까, 인제 임원 형들이 오면 지민씨가 아픈 기억을 또다시 떠올려야 되잖아요. 지민씨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제가 대신 형들 만나서 설명했어요... 미안해요. 지민씨 일인데 제가 마음대로 해서."
큰 호랑이 수인의 커다란 등이 작게 줄어들었어요. 인간화라서 보이지 않는 귀 또한 축 처진 것 같았죠. 작은 고양이 수인은 큰 호랑이의 시무룩한 모습에 웃음이 나올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이런 일에는 단호한 작은 고양이 수인은 애써서 웃음을 참았답니다. 진지한 얼굴을 유지한 작은 고양이 수인이 큰 호랑이 수인의 볼을 붙잡고 이야기했어요.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부터는 안 돼요. 제 일은 힘들어도 제가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알겠죠?"
여전히 작은 고양이 수인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큰 호랑이 수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너무나 귀여운 큰 호랑이 수인의 모습에 작은 고양이 수인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답니다. 까르륵 웃음소리를 내며 웃는 작은 고양이 수인에 큰 호랑이 수인은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그 모습에 작은 고양이 수인은 더 웃을 수밖에 없었죠. 영문을 모르는 큰 호랑이 수인이었지만 작은 고양이 수인의 행복한 모습에 큰 호랑이 수인도 따라 웃어 보였어요. 방긋-,하고 크게 말이죠. 큰 호랑이 수인의 웃는 모습에 작은 고양이 수인은 웃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어요. 큰 호랑이 수인의 웃음은 작은 고양이 수인에게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게 했거든요.
***
태형은 지민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했다. 눈을 좋아하는 지민을 위해 동굴 안으로 눈을 가지고 와 지민의 머리 위로 뿌려주기도 하였고, 지민이 딸기를 잘 먹는다는 이유로 옆집에 사는 석진에게 부탁해 딸기를 한 바구니 구해오기도 하였다. 하루는 동굴 안에서 걷지 못하는 지민이 답답해할까 봐 지민을 대리고 산 위까지 함께 놀러 간 적도 있었다. 지민과 놀고 동굴로 돌아오자 그곳에는 둘을 기다리는 윤기가 앉아 있었다. 윤기는 태형을 혼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민에게 접근금지 삼일 처분을 받았다. 면역력이 약한 작은 고양이 수인이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 태형의 죄목이었다. 윤기가 정한 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태형이 선밖에서 지민을 보며 낑낑거리자, 지민이 윤기 몰래 태형을 선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는 것은 이미 마을 전체가 다 아는 이야기였다. 윤기도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거짓말 못하는 둘이 자신의 눈치를 보며 행동하는 것이 재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느새 지민의 다리는 많이 호전되었고 지민은 이제 가볍게 뛰어다닐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태형은 건강하게 나아준 지민을 위한 깜짝 선물을 준비하였다. 바로 지민이 좋아하는 별과 눈을 볼 수 있는 장소로 지민과 함께 놀러 가는 것이었다. 태형은 사전에 별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물색해 두었다. 작은 지민과 옷 사이즈가 비슷한 다람쥐 수인 호석에게 부탁하여 지민의 겨울옷 또한 준비해 두었기에 이번에는 윤기에게 허락을 맡을 수도 있었다.
"지민아, 나랑 나가자."
저녁을 먹고 벽화를 그리고 있던 지민을 이끌고 태형은 밖으로 나섰다. 호석의 옷과 모자로 무장한 지민을 다시 한번 확인한 태형이 지민을 등에 업고 힘차게 달려나갔다. 사람의 모습으로 호랑이가 된 태형을 처음 타본 지민은 무서운지 태형의 털을 꼭 붙잡았지만 이내 즐거운 함성소리를 내지르며 태형의 등 위로 고개를 부볐다. 지민의 행동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태형이 갸르릉 소리를 내며 더 힘차게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우와! 태태 너무 재밌었어."
목적지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태형은 지민을 자신의 등 위에서 내려주었다. 발이 땅에 닿기 무섭게 지민은 태형의 목을 끌어안으며 방방 뛰었다. 태형은 미끄러운 바닥에 지민이 넘어질까 조심스럽게 지민의 허리를 붙잡아주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아직까지 흥분을 채 이기지 못해 바르르 떠는 고양이를 품에서 땐 태형이 이번엔 지민의 눈을 가렸다. 갑자기 가려진 두 눈에 지민이 당황해하며 몸을 바르작 거리자 태형이 지민의 등 뒤로 몸을 밀착해오며 작게 속삭였다.
"짐나, 주고 싶은 선물이 있어. 잠시만 눈 가리고 같이 가자."
태형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바로 들려오자 지민은 이번에 다른 의미로 몸을 바르르 떨었다. 낮은 중저음의 태형의 목소리는 지민의 마음 한켠을 간지럽게 했다. 심장 한켠에서 부터 올라오는 간지러움이 지민의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아 지민은 펴져있던 손을 콱 쥐었다. 정확히 어딘지 모를 가려움을 참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조심스럽게 지민의 몸을 잡고 움직이던 태형은 이윽고 원하던 장소에 도착했는지 멈춰 섰다. 그리고는 다시 지민의 귓가에 대고 숫자를 세던 태형은 '일'이라는 말과 함께 지민의 얼굴 위에 있던 자신의 손을 치웠다.
"짜잔!"
지민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놀라 감히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넓게 드리워진 나무숲 위로 펼쳐진 별들의 바다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거기에 하얀 꽃들이 지민과 태형이 앉을 것이 분명한 바위 주변을 예쁘게 장식하며 산들산들 바람에 휘날렸다.
"오늘 눈이 안 와서 쪼금 아쉽다. 그래도 여기가 우리 마을 근처에서 가장 별이 잘 보이는 곳이래, 짐나. 어때? 마음에 들어?"
지민의 어깨 위로 작은 도포를 덮어준 태형이 지민의 앞으로 걸어 나와 지민의 손을 붙잡았다. 아직 어안이 벙벙한 지민이 주변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다 자신의 앞에 서있는 큰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표정을 살피는 호랑이의 모습에 지민은 그제야 간지러움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좋아해.
"나, 너 좋아해, 태형아."
지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와 버린 진심에 놀라 태형에게 잡혀있던 손을 황급히 빼내어 자신의 입을 가렸다. 태형도 갑작스러운 지민의 말에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당황한 지민이 도망가기 위해 태형에게 등을 돌리고 숲속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태형이 급하게 지민의 앞으로 달려가서 팔을 벌리고 지민의 발걸음을 막았다. 그리고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지민의 손을 이끌고 바위 위로 지민을 이끌었다. 태형의 손에 붙들려 바위에 앉는 순간에도 여전히 지민은 태형을 보지 못했다. 작은 지민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태형은 준비해두었던 물체를 꺼내 지민의 손에 끼어주었다. 작고 동그란 가락지가 지민의 작은 손가락에 딱 맞게 들어갔다. 손가락 사이에 느껴지는 감촉에 놀란 지민이 고개를 들어 태형의 얼굴을 바라보자, 태형은 지민을 향해 은은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드디어 봐주네,라고.
"인간들은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가락지를 나누어서 낀다며."
언젠가 지민이 태형에게 해주었던 말이었다. 인간들은 평생 함께 살 사람과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데, 그때의 증표로 반지를 나누어 가진다고 말이다. 지나가면서 지민이 했던 말을 태형은 잊지 않고 기억했다.
"널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어, 지민아. 처음에는 작고 예뻐서 좋았는데 이제는 그냥 네 모든 게 다 좋아. 내가 먼저 오늘 말하려고 했는데, 지민이 네가 먼저 말해줘서 더 좋아. 좋아해, 좋아해, 지민아."
태형의 담백하고도 진심이 가득 담긴 고백에 지민의 얼굴은 순식간에 발갛게 달아올랐다. 붉어진 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며 작게 웃음 지은 태형이 그대로 고개를 숙여 지민의 입술을 입에 머금었다. 통통한 지민의 입술을 한입에 삼킨 태형이 쪽쪽-, 야살스러운 소리와 함께 지민의 입술을 작게 깨물고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태형의 까칠한 혀로 지민의 입술을 살살 핥아 올렸다. 발갛게 달아올랐던 지민의 얼굴은 이제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지민이 작은 손가락들로 태형의 엄지손가락을 붙잡자 태형이 슬며시 웃으며 작은 지민의 손 또한 자신의 손으로 모두 잡았다. 지민의 입술도, 손가락도 모두 태형에 의해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
작은 고양이 수인과 큰 호랑이 수인이 연정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 온 마을에 퍼지게 되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축하해 주었죠. 작은 아기 고양이 수인은 사람들의 축하에 쑥스러워 했고, 큰 호랑이 수인은 호방하게 웃으며 자신의 연인을 자랑하고 다녔어요. 가끔씩 도가 지나친 날에는 늑대 형들에게 불려가 혼쭐이 나기도 했답니다. 그래도 큰 호랑이 수인은 행복했어요. 작은 고양이 수인이 큰 호랑이 수인이 혼나고 오는 날에는 뽀뽀를 해주었거든요.
작은 고양이 수인은 큰 호랑이 수인 덕분에 행복하다가도 종종 작은 고양이 수인을 도와주었던 소중한 친구를 떠올렸어요. 촌장의 아들이자 큰 호랑이 수인의 웃음을 닮은 '그'가 작은 고양이 수인은 걱정이 되었죠. 촌장은 잔인하고 무서운 사람이라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일지라도 화가 나면 봐주지 않고 '그'를 크게 혼내곤 했어요. 자신을 도와준 '그'가 혹여나 촌장에 의해 무슨 화를 당했을까 작은 고양이 수인은 행복할수록 두렵고 미안했어요. 작은 고양이 수인은 다시 한번 친구를 보러 인간 마을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 작은 고양이 수인의 마음을 알아차린 큰 호랑이 수인은 시름에 빠지게 되었어요. 작은 고양이 수인을 다시 인간 마을로 돌려보내가 큰 호랑이 수인에게는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이었죠. 작은 고양이 수인을 통해서 들은 인간 세상은 작은 고양이 수인의 작은 몸으로 감당하기에는 버겁고 힘든 세상이었거든요. 거기다가 마지막에 큰 화를 당할 뻔한 작은 고양이 수인이 다시 위험에 빠지게 된다면 큰 호랑이 수인은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어요. 머리를 꽁꽁 싸매고 고민하던 큰 호랑이 수인은 마을에서 가장 똑똑한 늑대 수인을 찾아갔어요.
"남준이 형, 저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큰 호랑이 수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던 늑대 수인은 작은 고양이 수인이 만든 과일 파이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어요. 늑대 수인이 듣기에는 답이 너무 쉬웠기 때문이었죠. 답답해하며 늑대 수인을 채근하던 큰 호랑이 수인은 늑대 수인의 대답에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어요. 늑대 수인의 말처럼 그냥 같이 가면 되는 것이었거든요. 늑대 수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큰 호랑이 수인은 자신을 기다리는 작은 고양이 수인에게로 달려갔어요. 그리고는 곧바로 늑대 수인의 생각을 전하였죠.
하지만 작은 고양이 수인은 큰 호랑이 수인의 제안을 거절했어요. 큰 호랑이가 마을에 나타나면 인간들에 의해 큰 호랑이 수인이 다치게 될 것이 분명했거든요. 큰 호랑이 수인의 제안을 거절한 작은 고양이 수인은 그 대신 큰 호랑이 수인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바로 다치지 않고 닷새 안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말이에요.
큰 호랑이 수인은 작은 고양이 수인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작은 고양이 수인을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작은 고양이 수인이 인간 마을에 다녀오지 않으면 평생 힘들어할 것을 알고 있었어요. 어쩔 수 없이 큰 호랑이 수인은 작은 고양이 수인을 보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은 몸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큰 호랑이 수인은 자리를 지키고 서있어요.
그리고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작은 고양이 수인은 수인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
태형의 요즘 하루 일과는 간단했다. 지민을 떠나보낸 자리에 서서 하루 종일 지민 기다리기. 그러다가 형들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밥을 먹고 다시 같은 자리에 서서 지민 기다리기. 어두운 밤이 오면 태형을 걱정한 마을 사람들이 태형을 따뜻한 옷가지로 칭칭 둘러주었고, 그럼 태형은 그 상태 그대로 지민 기다렸다. 이러한 생활이 열흘 가까이 반복되다 보니 제아무리 강인한 호랑이 수인이라도 몸이 약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거기다가 지민이 떠난 지 나흘이 되던 날부터는 마을에 강한 눈보라가 불어 대부분의 식물들이 눈에 파묻혔고, 강물도 꽁꽁 얼어버리는 강추위가 계속되었다. 결국 열흘째 되던 날 태형은 눈 위로 쓰러졌다. 윤기는 태형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하였다.
늑대 수인들은 동굴 앞을 보초 서며 태형이 동굴 밖을 나설 수 없게 하였고, 윤기는 때마다 들어와 태형에게 약을 먹이었다. 호석은 너무 힘들어하는 태형에게 지민이 입었던 자신의 옷을 가져다주었다. 태형은 호석이 가져다준 옷을 보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리고는 호석의 옷가지들을 품에 소중히 끌어안았다. 하루는 재규어 수인 정국이 태형을 찾아왔다. 동굴 속에서 끙끙거리며 힘들어하는 태형을 향해 정국은 고양이 수인 마을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하였다. 열에 들뜬 와중에도 정국의 목소리를 들은 태형이 힘겹게 이유를 묻자 정국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이 마을에서 형 다음으로 빠르잖아. 고양이 수인, 내가 마을 가서 데리고 올게. 형이 안 알려주면 윤기형한테 물어볼 거야."
태형은 정국의 팔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지민의 말대로 중종들이 인간 마을에 나타나게 된다면 인간들은 중종들을 공격할 것이 분명했다. 정국을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태형은 자신이 직접 가겠다며 마을을 찾아가지 말라고 정국에게 당부했다. 태형의 말에 정국은 고개를 내저으며 동굴 밖으로 나갔다.
정국이 나가고 태형은 다시 정신을 잃었다. 높은 고열에 끙끙 거리며 꿈속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지민을 그리는 데, 태형은 어느 순간 차가운 어떤 것에 의해 몸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열이 내리자 몸 또한 편안해졌다. 태형은 몸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이의 모습을 보기 위해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자 작게 뜬 눈 사이로 지민의 얇은 손이 지나갔다. 태형이 선물 한 가락지를 낀 손이 말이다.
잠과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였던 태형은 가락지를 인식하자마자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뜬 태형의 앞에는 태형이 그토록 기다리던 지민이 앉아 있었다. 태형의 몸을 천으로 닦고 있던 지민은 갑작스럽게 눈을 뜬 태형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뒤로 물러났다. 태형은 멀어지는 지민의 팔을 붙잡고 자신의 쪽으로 지민을 잡아당겼다. 태형의 힘에 지민은 무게 중심을 잃고 태형의 위로 넘어지듯 쓰러졌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지민의 무게에 태형은 그제야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형이 지민의 등 뒤로 손을 올리고 힘을 줘서 끌어안았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태형에 지민도 활짝 웃으며 태형의 몸을 끌어안았다.
"늦어서 미안해. 나 왔어 태형아."
"보고 싶었어, 지민아."
***
작은 고양이 수인이 마을에 돌아오자 큰 호랑이 수인은 곧바로 기운을 차렸어요. 작은 고양이 수인은 더 이상 마을을 떠나 다른 곳을 가지 않겠다고 큰 호랑이 수인에게 약속했습니다. 작은 고양이 수인의 작은 새끼손가락을 마주 건 큰 호랑이 수인은 행복함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답니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던 두 수인은 결혼식을 올렸어요. 인간 마을에 오래 산 작은 고양이 수인을 위한 큰 호랑이 수인의 특별 이벤트였죠. 작은 고양이 수인의 요청으로 족두리는 큰 호랑이 수인이 쓰게 되었어요. 작은 고양이 수인의 크기에 맞추어졌던 저고리와 치마가 큰 호랑이 수인에게 턱없이 작았기에 작은 고양이 수인은 결혼식 내내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작은 고양이 수인의 밝은 모습에 큰 호랑이 수인도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행복한 결혼식을 마친 두 수인은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작은 고양이 수인 이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