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BTS (방탄소년단) - Butterfly Piano Cover
코끝에 새하얀 눈이 내려앉았다. 차가운 촉감에 지민이 눈을 떴다. 매서운 바람이 지민을 덮쳤다. 날 것 그대로 들이닥치는 바람 덕분에 지민의 귀와 손가락이 벌겋게 얼어 있었다. 분명히 대기실이었는데. 대기실에 눈이 왜 있어. 대기실에 바람은 또 왜 불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어난 지민의 눈 앞에는 웬 짓다 만 공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천장도 없고, 철근과 콘크리트로만 이루어진 건물 안이었다. 꿈인가, 싶었다.
“...어?”
공기도 더럽게 나빴다. 으스스한 공기가 지민의 몸을 감쌌다. 스산한 기운에 지민이 몸을 떨었다. 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탁한 공기였다. 안개가 낀 것처럼 희뿌옇고, 흐릿하고, 탁한 공기. 지민이 두 눈을 찌푸렸다. 햇빛조차도 잘 보이지 않았다. 미세먼지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공기의 수준이 심각했다. 옅게 들어오는 붉은색 노을빛에 하얀 먼지들과 눈이 뒤섞여 있는 것이 훤했다. 어디서 튀어나온 조각인지 모를 톱밥 같은 것들도 여기저기 떠다니는 중이었다. 이 공간 안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불쾌할 지경이었다.
지민은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현실적인 감각이 와닿지 않아서. 제 머리 위에 내려앉는 눈도, 시야에 가득한 먼지도, 붉게 내려앉은 노을까지도 그 모든 것들이 현실적이지 않았거든. 기껏해야 악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민이 일어나기 위해 아무런 의식 없이 바닥을 짚었다. 그러자 손에 시커먼 먼지가 뒤섞인 눈이 잔뜩 달라붙었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잠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이 저를 감싸 안고 있었다. 지민이 화들짝 놀라면서 바닥에 붙어있던 손을 뗐다. 지나치게 생생했다. 감각이.
“왜 이렇게 생생해.”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기실이어야만 하는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지민이 있는 곳의 방문은 어디로 갔는지 온데간데없었고, 바닥에는 작은 철사나 굵은 철근들이 군데군데 솟아올라 있는 형태였다. 문이 달려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걸로 보아 이 곳이 방이었다는 것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현실적인 것들이 마구 몰아닥쳤다. 혼란스러운 것들 투성이였다.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 스케줄은 어떻게 된 것인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당최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는 상황에 지민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두 눈을 여러 차례 껌뻑여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먼지 투성이인 방 안이었다.
휑한 방 안을 멍하니 바라보던 지민의 머릿속에 가장 중요한 것이 떠올랐다. 무의식적으로.
저와 마지막까지 대기실에 같이 있었던 여섯 명.
가장 중요한 사람들.
"…멤버들.“
잠들기 직전 남준은 책을 읽고 있었다. 책 제목이 언어의 온도였나. 안경까지 끼고선 열심히 읽던 모습이 기억난다. 윤기는 제 옆자리에 누워 조용하게 자는 중이었고, 호석은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담당자분과 이야기 중이었다. 나머지 석진과 태형, 그리고 정국은 시끌벅적하게 자기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곧 있으면 녹화하러 갈 컴백 무대에 대한 이야기였다. I Need U 컴백무대. 컨셉이나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도 했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 했다. 180도 바뀌어버린 컨셉 덕분인지 걱정도, 기대도 많았던 모양이다.
'무슨 얘기해요?'
'컴백 반응 얘기. 이번 뮤비 대체적으로 반응 괜찮다는 거?‘
'형도 이쪽으로 와요.‘
'아냐, 난 잘게. 졸리다.‘
'잘자, 짐나.'
이야기하는 무리에 잠시 끼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까, 싶었으나 점점 더 밀려오는 수마에 지민은 잠을 택했다. 희미하게 조용해지는 대기실의 소음을 백색소음 삼아.
그 소음들이 저를 깨워줄 줄 알았건만, 잠에서 깨보니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사라져 있었다.
책을 읽던 남준도, 자던 윤기도, 메이크업을 받던 호석도, 이야기를 나누던 석진도, 태형도, 그리고 정국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가장 소중한 제 멤버들이다. 지민이 애써 침착한 척 하며 바닥에 다시 한 번 손을 뻗었다. 까슬까슬한 콘크리트가 손바닥에 닿았다. 먼지 가득한 바닥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제 시야에 있는 뜯겨나간 문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딛었다. 지민이 느린 템포로 한 발자국씩 내딛다가, 얼마 안 가 빠른 템포로 바꾸어 성급하게 걸어갔다. 마음이 급한 것을 숨기려 해 보았자 소용없었다. 애타는 만큼 발자국이 빨라졌다. 종국에는 달릴 지경으로.
이건 꿈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현실이다. 제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것들이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하나같이 다 비현실적인 것들 투성이였다. 지민이 고개를 휘저었다.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 눈 딱 한번만 감았다 뜨면 다 괜찮아져 있을 거야. 전부 다 원래대로 돌아와 있을거다. 그러나 꿈이라고 생각해도 좀처럼 심장은 진정될 리 없어 보였다.
방을 박차고 뛰어나가니 길게 이어진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방 안으로 희미하게 들어오던 불빛의 출처가 복도였던 모양인지 밖으로 한 걸음 내딛을때마다 빛이 붉어졌다. 방 밖으로 온전히 나와서야 그 빛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한 쪽 벽면은 아예 미완공인 모양인지 뻥 뚫려 있었다. 덕분에 벽면을 향해 다가갈수록 붉은색이 점점 짙어졌다. 붉은색 가득한 노을이 지민의 두 눈동자에 완벽히 담겼다.
황혼이었다.
날카로운 바람이 각종 눈을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상황에 걸맞지 않은 장관이었다. 지민이 그것을 얼마간 멍하니 바라보다가 텅 비어 있는 벽면을 향해 움직였다.
이것이 꿈인 것은 틀림없으니 깰 방법만 찾으면 된다. 그걸 찾기만 한다면 멤버들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저 단순한 악몽일 뿐이니까. 지민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점점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낭떠러지 끝무렵이었다. 완성되지 않은 벽이 지민의 앞을 가로막을 순 없었다. 지민이 발 한 걸음을 더 내딛어 생긴 먼지 바람이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지민이 그 먼지 바람을 따라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몇 층인지는 모르겠으나 3층 정도 된다는 것은 알겠다.
여기서 떨어지면 꿈에서 깰 수 있지 않을까.
떨어졌다가 정말 죽으려나, 와 같은 생각을 했다가 이내 여기가 현실일 리 없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확연해 관두었다. 지민은 한시라도 빨리 여길 벗어나 포근한 원위치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민이 두 주먹을 꽉 쥐고서 낭떠러지를 향해 발걸음을 천천히 내딛었다. 꿈인데도 불구하고 감각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제 볼을 스치는 바람, 몸에 걸쳐진 옷들의 무게, 코로 들어오는 먼지 바람, 그리고 두 눈에 선연하게 비춰지는 붉은 노을 같은 것들이. 그래서일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몸이 파르르 떨렸다. 꿈이지만 두려웠다. 여기서 뛰어내리기만 한다면 꿈에서 깰 수 있다고 겨우겨우 스스로를 달래며 앞으로 전진했다.
한 발, 한 발. 이윽고 지민이 끄트머리에 제 발을 올렸다. 두 눈을 질끈 감고서 상상했다. 제 밑에는 아무것도 없다.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다시 대기실일 것이다. 굳세게 감긴 눈을 뜨지 않은 채로 발을 떼려다가 밑에서 들리는 괴상한 소리에 눈을 살포시 떴다.
"…저게 뭐야."
1층에 웬 사람이 있었다. 괴상한 소리를 내는 사람. 생긴 것이 명백한 사람이었다. 저를 보면서 소리를 내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웬 사람이지. 지민은 반가움을 느꼈다. 이곳에서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은 단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반갑게 손을 들어 제 위치를 알리려던 지민이 어깨까지 손을 들어 올렸다가 흔들기 직전에 멈추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저 사람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지민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람인 건 확실했으나 움직임이 괴랄했다. 걷는 것도 아니고 기는 것도 아닌 이상한 움직임으로 제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가 아픈가. 지민이 뒤로 물러선 다음 고개만 내밀고서 바닥을 응시했다. 시야가 집중되지 않아 처음에는 흐릿하게 보이던 것이 점차 선명하게 바뀌었다. 남자의 몸 부분부분이 찢어져 있었다. 온몸의 절반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한 쪽 다리는 절면서 삐뚤빼뚤 움직이고 있었다. 끔찍하게 생긴 장기들이 몸 안에서 역류해 나오는 듯 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지민의 육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것이 겉은 사람이지만 속은 아니라는 것을. 제 눈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괴이하게 뒤틀린 몸, 억눌린 신음만이 나오는 목, 생각을 멈춘 머리.
좀비였다.
지민이 뒷걸음질했다. 몸 안쪽에서부터 토악질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것이 왜 제 눈 앞에 있는지 알 겨를이 없었다. 말이 안 된다. 제가 이런 곳에 와 있는 것을 시발점으로 말이 안 되는 것들 투성이였다. 지민이 뒷걸음질하다 제 발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세게 짚어버린 탓에 손바닥이 얼얼했다.
"지민아!"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연속에 굳어버린 지민의 귓가로 익숙한 음성이 날아왔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제가 애타게 찾아댔던 그 목소리. 가장 먼저 듣고 싶었던 목소리. 지민이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저를 본 그 얼굴이 놀라움에서 당황으로 바뀌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김태형이었다. 태형은 평소 입던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르게 입고 있었다. 이건 전정국이나 입는 옷인데. 웬 검은색 후드집업과 군용 조끼를 그 위에 걸치고 있었다. 바지도 시커먼 색. 평소의 김태형이라면 절대로 입지 않을 색의 조합이었다. 또한 투블럭이었던 머리도 어느새 길어져 이마를 다 덮고 있었다. 새카만 머리가 태형의 눈을 다 가리고 있었다.
지민이 천천히 다가갔다. 태형이다. 김태형. 제가 찾아 헤메던 사람들 중 하나인 태형. 태형이 지민에게로 뛰어왔다. 뭘 하다 온 건지 얼굴에 부분부분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여기까지 왜 나왔어. 아파서 쓰러졌었으면서."
"…태형아."
"조금 더 누워 있지.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 계획이었거든."
"태형아. 태형아, 김태형. 너 맞지, 내가 아는 김태형… 맞지."
"어, 어? 맞아. 지민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나 네가 아는 김태형 맞아."
다정하게 걱정하는 것이 영락없는 태형이었다.
세상은 다 변했으나 태형은 변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은 익숙한 제 것에 결국 지민의 두 눈에서 옅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태형이 그걸 보자 당황하더니 어쩔 줄 모르다가 지민을 살포시 제 품에 안았다. 따뜻한 온기가 태형의 몸을 타고 지민에게로 흘러들어왔다. 잔뜩 두려웠던 그 순간에 태형의 온기가 너무나도 큰 위안이 되어버렸다. 일순간 긴장이 탁 풀리면서 지민이 태형의 품에 힘없이 쓰러질 뻔한 것을 태형이 가까스로 잡아 안았다. 태형이 지민을 꽉 끌어안으려는 것을 지민이 저지했다. 의아해하는 태형의 두 뺨을 잡고선 제 시선 앞으로 데려왔다. 지민이 파들거리는 입술로 말을 꺼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방금 마주한 그 '좀비'가 지민의 정신을 온통 뒤흔들어놨다.
지민이 애써 웃으면서 태형의 눈을 마주했다. 두 눈에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지금 이것이 꿈이라 말해줄 태형이 필요했다. 무엇이든간에 이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태형을 마주하니 꿈이라고만 단정지었던 이 상황이 너무나도 현실인 것마냥 저에게 다가왔다. 제가 유일하게 아는 것이 나타나니까 마치 이 상황이 진짜인 것 같았단 말이다. 박지민은 그걸 원하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꿈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안락한 제 현실로 돌아가고 싶었다. 안주하고 있던 그 곳으로.
"태형아. 나 한 대만 때려봐."
"어?”
"꿈에서 깨게."
"...무슨 말이야."
"나 이 꿈 싫어. 그만 꾸고 싶으니까 얼른. 좀 세게 쳐 줘. 한방에 깰 수 있게."
예전에 어느 한 가십지에서 보았던 말. 꿈에서 깨고 싶다면 큰 충격을 가하라던 것. 아까 지민이 뛰어내리려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 정도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정도면 굉장히 큰 충격이니까, 꿈에서 깰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거든. 지금 태형에게 부탁하는 이유도 매한가지였다. 지민이 태형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태형은 잔뜩 당황해서는 오른쪽 손으로 지민의 어깨를 붙잡았다.
"무슨 말이냐니까."
"이거 꿈이잖아."
"이게 왜 꿈이야. 지민아, 정신차려…."
"우리 오늘 컴백하는 날이라니까? 아니쥬. 화양연화 파트 원 컴백날이라고."
"지민아.“
태형의 눈빛이 당혹으로 물들었다가 이내 새카매졌다. 제가 화양연화 파트 원 컴백일이라고 이야기하자마자 그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눈에 자물쇠가 걸린 것 같았다. 태형의 표정이 걱정에서 울상으로 뒤바뀌었다. 지민은 그런 태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런 표정으로 바뀌는 거야. 여기는 그냥 꿈인데. 태형이 그런 지민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갑작스럽게 안겨 온 태형에 지민의 손이 방황했다. 태형은 그런 지민의 어깨에 고개를 한참동안 파묻고 있더니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지민은 그런 태형을 기다렸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태형과 지민의 시선이 맞닿고 몇 초쯤 흘렀을까. 태형의 입에서 지민을 당혹시킬만한 말이 튀어나왔다.
"지민아.”
"…응."
지민을 잡은 태형의 두 손아귀에 힘이 잔뜩 들어가 떨리는 중이었다. 지민은 어깨가 아린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지민의 어깨 정도에 주어진 고통이면 꿈에서 깨기엔 충분한 고통이었다. 그런 여전히 검은색 머리를 하고, 검은색 옷을 입은 김태형이 제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2015년 아니야."
"어?"
"우리 그 날 컴백 무대 못했잖아, 지민아. 아래에 있는 그것들이… 그 좀비들이, 잔뜩 덮쳐와서. …지민아, 제발 그러지 마. 장난이라고 해. 나 지금 진짜 무서우니까. 지민아...“
지민을 무너뜨리기엔 충분한 말이었다. 여태까지 다 꿈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이 태형의 이 말 한마디로 정립되는 느낌이었다.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부정하고 싶었는데 태형의 표정이 아니라 말해주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 제 눈 앞에 있는 김태형은 사실이다. 너무나도 김태형의 그것이라 지민은 부정할 수 없었다.
태형이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지금 2016년이잖아.“
황혼
지금 씀
”형들이랑 정국이는 다 괜찮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머릿속으로는 이해하기 바뻤지만.
태형이 그러더라. 지금은 2016년이라고. 지민이 잠들었던 2015년이 아니라 2016년. 지민이 잠들었던 그 때, 서울 지역에 좀비가 들이닥쳤다고 한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정확히 모르지만,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 하나가 방송국에 들어왔고, 그것이 사람을 물고 전염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이 감염시킨 또 다른 좀비들이 다른 사람을 물고 전염시키고를 반복하여 아수라장이 되었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 때 멤버들은 다 같이 도망칠 수 있었고, 근처에 거처를 구한 다음 여지껏 뭉쳐 살아가는 중이란다.
태형이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거짓말이라면 아까 제가 보았던 괴상한 것들을 설명할 수가 없다. 폐허가 된 서울, 괴상하게 변해버린 사람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지금이 2015년이 아니라 2016년이라는 것까지도.
그럼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어떻게 된 거지. 지민이 생각했다. 시간을 건너뛰었거나, 기억을 잃어버렸거나, 그게 아니라면 2016년의 박지민과 2015년의 박지민이 뒤바뀌었거나. 이 중에 하나였다. 태형이 그러더라.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다고. 어제까지만 해도 2016년의 박지민이었다고. 그동안 함께했던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저처럼 기억이 토막난 채 당황해하지 않았다고 그랬다. 태형의 말대로면 마지막 것이 가장 합당했다. 15년도의 박지민과 16년도의 박지민이 뒤바뀌었다는 것 말이다.
”...괜찮아? 조금 진정됐어, 지민아?“
”엉. 괜찮아. 아직도 조금 혼란스럽긴 한데... 괜찮아.“
”다행이다.“
”...“
”...“
”여기는 왜 온 거야?“
”식량도 찾고, 지형도 파악하고 그러려고. 이번엔 우리 둘이 가야 할 차례라서 오게 된 거야.“
”아...“
”여기 온 지는 일주일 정도 됐어. 지어지다 만 백화점이야. 여기에 사람이 살던 흔적이 있어서, 남은 식량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내일 두 층만 더 보고 돌아가면 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는 진 지 오래였다. 새카만 밤하늘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아까 제가 태형을 마주했던 그 뻥 뚫린 천장 아래서 가만히 앉아 있으니, 방금전까지만 해도 혼란스러웠던 것들이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졌다. 말도 안 되는 영화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지민이 태형을 가만히 응시했다. 어딘가 선이 달라진 얼굴이 미묘하게 느껴져서. 자꾸만 낯선 기시감이 들었다. 태형이 저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지민이 툭 하고 말을 던졌다.
”태형아.“
”어?“
”너는...“
괜찮아?
그 말에 태형이 움찔했다. 눈에 띄게 움찔한 태형 덕분에 지민도 덩달아 놀랐다. 괜찮냐는 말에 왜 그렇게 놀래. 지민이 웃으면서 되묻자 태형이 그제야 당황하던 기색을 감추었다. 태형이 지민을 응시하다 시선을 돌렸다. 밤하늘을 향해서. 그런 태형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지민도 밤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태형의 덤덤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아니.“
태형의 목소리가 파들거렸다.
”아니, 지민아.”
“...”
“나 무서워.”
태형이 울고 있었다. 지민도 눈물이 날 뻔한 것을 애써 억눌러 참았다. 무서웠겠지. 무서운 게 당연하다. 세상에 좀비가 나타나고, 형들이랑 같이 있다가 그 형들을 떠나 친구와 왔는데, 그 친구는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는 거니까. 지민이 태형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태형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지민이 그런 태형을 다독였다.
“내일 두 층만 더 보고 돌아가면 된다며.”
“...”
“하루야, 하루. 하루면 형들한테 갈 수 있다고 그랬잖아. 별일 없을 거야.”
“...”
“너 안 죽어.”
태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왼쪽 손만 꾹 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밤하늘이 시커맸다.
-
아침 일찍 일어나 움직여야 했다. 하루 종일 태형을 따라 바쁘게 움직였다. 백호점이 될 뻔한 건물이라 그런지 층마다 규모가 꽤 커서. 한 층을 돌아다니는데도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해가 지평선 질 때가 되어서야 조금 쉬어갈 수 있었다. 주변이 안전한지 파악한 다음 태형과 지민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린 모양인지 지민이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김태형 너 자의로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거 되게 낯설다. 그 말에 하루종일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태형이 처음으로 웃었다.
태형의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둘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지민과 태형의 앞 벽면은 어제 지민이 시간을 건너왔던 그 때 보았던 벽면처럼 뻥 뚫려 있었다. 해가 지는 시간대라 그런지 하늘빛 하늘에 점점 붉은색이 깔리는 중이었다. 지민과 태형이 앉아있는 곳으로 흰 눈이 조금씩 들어왔다. 지민이 그런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상황에 걸맞지 않은 장관이네. 지민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삼십분 정도 앉아 있었을까. 문득 태형이 지민에게 말을 걸었다.
”지민아.“
”응?”
“나 듬직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당연히 듬직하지.”
“뭐든지 믿고 맡길 수 있지, 지민아.”
“응.”
“내가 뭐든 잘 해낼 수 있다는 것도 알지.”
“잘 알지. 끈기가 조오금 없을 뿐이지만. 갑자기 왜 그래.”
“오늘은 나만 갔다 올게.”
웃으면서 대답하던 지민이 한순간에 표정을 굳혔다.
“…어?”
“여기서 기다려. 네 말대로라면 지금... 여기 적응하기도 힘들거고. 내가 가서 찾아보고 올게.”
“그게 무슨 소리야.”
태형이 왼쪽 손목을 꾹 눌렀다. 지민이 모르는 것 하나가 있다. 시간을 건너뛰어 온 지민은 아무것도 모른다. 이전의 지민은 알고 있었으나 현재의 지민은 모르는 것.
김태형은 좀비에게 물렸다.
물린지는 이틀 정도 되었다. 물린 부위에 따라 변하는 속도가 다른 것이 퍽이나 다행이었다. 지금까지는 괜찮았으나 오늘 아침부터 징조가 이상했다. 점점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따금씩 시야가 돈다던지, 속에서 무언가 울컥한다던지.
빨리 벗어나야만 한다. 태형이 왼쪽 팔의 소매를 필사적으로 싸맸다. 흰 바탕에 병아리가 그려진 손수건이 태형의 손목을 감추고 있었다. 지민이 연습생 시절 태형에게 준 것이었다. 지민이 태형을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았다. 지민은 아무것도 몰랐다.
“야.”
“갔다 올게. 금방 올 수 있어. 여기 혼자 먹을 식량은 충분해. 좀비도... 내가 어제 너 없을 때 다 잡았고.”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
”나 듬직하다며. 믿고 맡길 수 있다며. 믿어줘.“
“위험하다고. 널 어떻게 혼자 보내.”
지민이랑 같이 있다가 돌아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가끔가다 몸 안에서 무언가 역류하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박지민을 물어뜯을 수도 있다. 그건 죽기보다 싫었다. 원래 도망가는 것도 싫어하는데. 이번만은 어쩔 수 없다. 박지민을 살려야 했으니까. 지민이 아무것도 모르는 게 나았다.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달아나야만 했다. 박지민한테서.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 얘만 안 물렸음 된 거다. 그거면 됐다. 점점 오른쪽 팔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감각이 너무나도 생경했다.
“내가 반나절 뒤에도 안 돌아오면 너는 먼저 떠나.”
“가지 말라고.”
“나 할 수 있어. 우리 텔레파시 잘 통하잖아. 몇 년을 바닥부터 같이 올라왔는데. 그치. 그러니까 이번에도 텔레파시 통해서 금방 돌아올 수 있어.”
“...”
“알았지? 갔다 올게.”
“두 시간.”
“어?”
“그 이상은 안 돼. 두 시간이 지나도 네가 안 오면 난 너 찾으러 나갈 거야.”
“...그래.”
“태형아.”
물리면 안 돼.
알았어. 태형이 쓰게 웃었다. 이미 물렸지만. 태형이 지민에게서 뒤돌았다.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다. 태형이 손수건을 꼭 그러쥐었다. 조금만 더 참자.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몸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애써 꾹꾹 눌러담으며 계속해서 걸었다. 이것이 지민의 얼굴을 보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뒤돌고 싶은데, 그러면 지민에게서 도망칠 수가 없을 것 같아 꿋꿋하게 걸었다.
그런 태형을 지민이 빤히 응시했다.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의 태형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어제부터 계속해서 들던 느낌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일 년이나 지나서 그런가. 묘하게 드는 괴리감에 지민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치기엔 태형이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머릿속에 태형이 지금 무슨 느낌인지 묘사할 수 있는 정확한 단어가 떠오르자 지민이 그 원인을 찾기 위해 태형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디가 불편한거지. 그렇게 멀어져 가는 태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지민이 이내 무언가를 찾아냈다.
태형의 손이 이상했다.
무언가를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불안한 느낌이 지민을 휘감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지민이 태형에게로 달려갔다. 손목을 잡아챈 지민 덕분에 태형의 손에서 손수건이 떨어졌다. 그러자 태형이 꼭 쥐고 있던 손목이 훤하게 드러났다. 태형이 물린 부분이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으나 보자마자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선명한 잇자국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지민이 그제서야 태형이 혼자 떠나려던 이유를 깨달았다.
김태형은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던 거다.
“너 이거 뭐야.”
“...지민아.”
“너 이거 뭐냐고.”
지민이 태형의 손목을 세게 쥐었다. 물린 손목 부분이 선연히 드러났다. 태형이 손을 빼내려고 노력했으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태형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놔.”
“김태형!”
“물렸어! 물렸다고, 나. 봤으면서 뭘 자꾸 물어봐. 물린 거 맞다고!”
“그런데 왜 말을 안 해.”
“말을 어떻게 해.”
하면 너는 나 안 보내줄 거잖아...
태형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제 지민에게 무섭다고 말했던 때처럼. 태형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히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감염될까 무서워서 만지지도 못했을 태형의 손목을 지민은 아주 꽈악, 잡고서 놓지 않는 중이었다. 태형이 되려 지민의 감염을 걱정하는 중이었다. 지민의 손을 떼어내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지가 않았다. 자꾸만 온 몸의 힘들이 몸 중앙으로 모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든 열들이 가운데로 쏠리는 것 같은 기분. 힘 없는 손으로 겨우겨우 지민의 한 손가락을 떼어내면 지민은 반대쪽 손으로 태형의 팔을 붙잡았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하다 태형이 크게 휘청했다. 지민이 잡고 있던 덕분에 태형은 넘어지지 않았다.
“지민아.”
태형의 입에서 붉은 것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태형이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윽고 고개를 든 태형과 눈이 마주친 지민은, 태형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지민을 올려다보는 태형의 눈이 빨갰다. 태형의 눈이 점점 잿빛으로 물들어갔다. 태형이 지민의 손을 떼어냈다. 방금까지만 해도 손가락 하나조차 못 떼어내던 태형이 어디서 나온 괴력인지 모를 힘으로. 거센 악력에 지민의 손목이 금세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태형이 지민을 밀치곤 점점 멀어졌다.
“가.”
“김태형.”
“나 너 물기 싫어.”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이 지민에게 향했다. 지민을 물어뜯으라고 뇌에서 명령을 내리는 중이었다. 그것을 억누르기가 너무 버거웠다. 태형이 힘겹게 발걸음을 뗐다. 그런 태형을 바라보던 지민이 태형에게로 다가갔다. 점점 강해지는 지민의 냄새에 태형이 결국 이성을 놓았다. 툭 하고 필름이 끊기자마자 태형이 지민에게 달려들었다. 눈빛이 돌변해선 제게 덤벼드는 친구에 지민이 전진하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성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은 태형에 지민이 주춤했다. 지민의 등 뒤에는 노을이 있었다. 한 걸음만 더 가면 낭떠러지였다. 지민의 등 뒤로 차디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뻥 뚫린 벽 앞에 선 지민에게로 태형이 몸을 던졌다. 그걸 피하기 위해 지민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결국 지민이 발을 헛디뎠다. 태형이 그런 지민의 위로 달려들었다. 지민과 태형의 몸이 공중으로 기울은 순간, 태형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태형의 눈 속에 지민이 있었다.
살어, 지민아.
제가 알던 태형이 낮게 읊조렸다. 지민이 무언갈 할 새도 없었다. 이대로 떨어지는구나, 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지민이 멍하니 태형을 바라보았다.
태형이 지민과 자신의 위치를 뒤집었다. 태형의 등 뒤에 노을이 오도록. 그러고는 지민의 가슴팍을 밀쳤다. 거세게 민 태형 덕분에 지민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그리고 태형의 몸은 노을 쪽으로 기울었다. 태형의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태형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줄 벽조차도. 지민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으나 늦은 뒤였다. 태형의 몸 위로 새하얀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지민이 눈을 감았다. 태형이 제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기절하기 직전 지민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황혼이었다.
-
“박지민!”
눈을 떴다. 새하얀 조명이 두 눈 가득 들어찼다. 너무나도 하얀 시야에 지민이 쉽사리 눈을 뜨지 못했다. 그런 지민을 누군가가 계속해서 흔들어 깨우는 중이었다. 그 독촉에 지민이 힘겹게 일어났다. 손을 딛고 일어난 곳이 푹신했다. 기절한 동안 얼마나 운 것인지 양 볼에 눈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지민이 무어라 생각하기도 전에 무의식적으로 입이 열렸다.
“김태형.”
“지민아, 일어나. 어? 지금 큰일났어.”
“김태형, 태형아. 김태형.”
그 이름을 내뱉으니까 기절하기 직전의 마지막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맺혔다. 나 대신 떨어진 김태형. 날 물기 싫어서 나락으로 떨어진 김태형. 도망치려던 김태형. 태형의 이름만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그런 지민을 누군가 계속해서 흔들었다.
지민이 눈을 제대로 떴다. 실외인 것 치고 상당히 따뜻했다. 바닥도 푹신거렸고. 그것을 자각하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제 앞에는 눈 내리는 공허가 있어야 하는데. 황혼은 온데간데없고 LED 조명이 지민을 비추고 있었다. 뻥 뚫린 벽도, 지민의 몸 위로 내리는 눈, 그리고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도 다 사라지고 없었다. 지민의 시야엔 큰 거울과 빛나는 조명, 그리고 푹신한 소파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민이 그제야 자신을 흔들던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김태형이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어서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렸다. 미처 흐르지 못한 눈물이 지민의 볼 위로 떨어졌다. 김태형. 내 앞에서 떨어졌던 김태형. 이거 꿈인가. 마치 어제처럼 얼떨떨한 지민이 태형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렀다. 태형은 그런 지민을 깨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태형, 김태형.”
“지민아. 지금 밖에 좀비들이 나와서... 도망쳐야 돼. 어?‘
”너 왜 여기...“
”이럴 때가 아니야! 빨리 나와. 형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태형아.“
태형은 평소의 태형과 똑같아 보였다. 다급히 태형의 손목을 잡아챈 지민이 옷을 걷어 손목을 확인했다. 왼쪽 손목이 깨끗했다. 물린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지민이 그런 태형을 빤히 쳐다보았다. 태형은 여전히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2015년도의 자신과 2016년의 자신. 저번에 세웠던 그 가정이 머릿속에 다시 한번 더 떠올랐다. 미래의 박지민과 현재의 박지민이 뒤바뀌었던 거라면. 뒤바뀌었다가 지금 원래대로 다시 돌아온 거라면.
”태형아.“
”...어?“
”지금이 몇 년도야?“
”지민아, 왜 그래. 갑자기.“
태형이 죽는 미래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지금 2015년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