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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Sia - Snowman

Snowman

​마리

지민이 막 서울로 이사 왔던 겨울의 일이었다. 3월이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었던 어린 지민은 자신만 동네 친구들과 다른 말투를 쓴다는 생각에 학교 입학하기를 두려워했었다. 오죽하면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해서 매일 악몽을 꿀 정도였다. 어떤 날은 물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무서운 괴물에 쫓길 때도 있었다. 그날도 악몽을 꾸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일어난 지민은 자신의 눈앞에 선 흰옷을 입은 남자를 마주했었다. 남자의 몸이 빛나고 있어 생김새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창밖도 아니고 집 안에 나타난 낯선 이에 겁을 먹은 지민은 부모님을 부를 생각도 못 한 채 자신의 이불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불 밖으로 정수리가 튀어나온 줄은 모르고 이불 속에 숨어 눈을 찔끔 감고 열을 세던 지민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에 이불 밖으로 빼꼼 얼굴을 드러내 보였다. 하지만, 이미 흰 옷을 입은 아저씨는 사라진 다음이었다.

다음 날 아침, 어느 때보다 일찍 일어난 지민은 부모님이 깨실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부모님이 일어나자마자 간밤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고 부모님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셨다. 지민은 어린이집에 처음 등원했을 때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었다. 서울에 있는 유치원에 처음 방문했을 때도 부모님 곁을 떠나지 않으려 울고 불었었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성격 때문이었다. 어린 지민이 서울에서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챈 부모님은 곧장 지민의 심리 치료를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지민은 심리 치료 센터에 가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그림을 그렸다. 악몽을 꾸다가 일어난 밤이었던데다 잠결에 인영(人影)을 본지라 지민은 생김새를 흐리게만 기억했다. 확실한 건 흰옷을 입은 남자였다는 거. 그리고 지민에게 존재만으로 예쁘다고 하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는 거. 지민은 그를 <눈사람 아저씨>라고 불렀다.

심리 치료사는 지민의 부모님께 낯을 가리는 아이에게 간혹 나타나는 증상이라 설명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와 이를 보살펴줄 보호자의 부재로 아이가 애정 결핍이 생기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외로움을 타면서 자신만 볼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낸 거라 했다. 공무원인 아버지에 비해 수입이 적었던 지민의 어머니는 한 달 내로 직장을 그만두었고 지민만 돌보기 시작했다. 아버지 역시 퇴근 후의 시간은 지민에게 쏟아부었다. 부모의 염원이 하늘에 닿았을는지는 모르지만, 지민은 그날 이후로 <눈사람 아저씨>를 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중학생이 된 지민은 <눈사람 아저씨>를 서서히 잊었다. 처음부터 기억에 깊이 남을 정도로 뚜렷한 형상을 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시간이 지나니 어렴풋하게 기억나던 생김새마저 잊혔다. 심리 치료사나 부모님은 외로운 지민이 만들어낸 <나만 아는 친구>로 치부했지만, 지민은 악몽을 꾸고 있던 제가 저도 모르게 불러낸 <수호천사>쯤으로 여겼다. 그의 몸을 감싸던 은은한 빛이 두려운 건 사실이었지만, 그 두려움은 공포보다는 경외에 가까웠으니까.

 

 

* * *

 

 

"빡찌! 뭐해?"

어릴 적의 트라우마를 털고 평범한 중학생의 삶을 사는 지민이었지만, 겨울만 되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러니까 지민이 열네 살이던 작년까지는 그랬다. 지민이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탈 때는 <눈사람 아저씨>의 환상을 본 적도 있었으니까. 중학교 2학년이 된 지민은 남들 다 겪는 중2병도 피할 정도로 천진한 삶을 살았다. 또래보다 키도 작고 덩치도 작은 데다 남들 다 겪는 2차 성징도 아직이었던지라 지민은 친구 중에서도 귀엽고 작은 애로 통했다. 남들 하는 짝사랑 한번 한 적 없었고, 다들 챙기는 투투 한 번 챙긴 적 없던 지민은 2학기 개학식 날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 김태형, 12월 30일에 태어났다는 잘생긴 겨울 아이. 운동을 시작하며 축구부로 유명한 지민의 학교에 전학 왔다는 귀염둥이. 지민은 이제 겨울만 되면 지민의 애정 결핍을 상징하는 <눈사람 아저씨> 대신 겨울의 시작점에 태어난 태형을 떠올렸다.

"빡지! 왜 대답을 안 해."

"뭐가."

"담임 선생님이 너 교무실로 오래."

난생처음 경험하는 사랑의 힘은 대단히 대단했다.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 혼자 한 사랑이래도, 태형은 지민의 마음 한편에 자리한 외로움이라는 응어리를 완벽하게 치료해주었다. 공이라도 차다가 손등이 스치고, 음악 발표 수업 같은 조가 되는 사소함조차 지민에게는 기쁨이었다. 반장인 지민이 제가 가진 권력으로 태형에게 특혜를 줄 때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다. 비록 입 밖으로는 꺼낼 수 없는 애끓은 애정이었지만, 지민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했다. 12월의 마지막은 태형의 생일이었다. 바로 연말이고 신년에 방학을 시작하면 방학에는 태형을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지민은 태형의 생일을 축하하는 선물과 함께 꾹꾹 눌러 쓴 편지를 준비했다. 사랑한다는 말이나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다는 노골적인 고백은 전할 수 없었다. 고민에 고민해서 내년에는 다른 반이 되더라도 더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진심과 함께 사랑한다는 마음은 꼭꼭 숨길만 한 평범한 안부 인사를 적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교실이나 복도보다 따뜻한 교무실에 들어선 지민은 평소보다 조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몸을 조금 떨었다. 잠시만 기다리라던 선생님은 지민을 세워둔 채로 파일을 찾았고, 지민은 교무실이 주는 따뜻함에 차가운 몸을 녹이고 있었다. 주머니에 있는 제가 쓴 편지는 계속 만지작대면서. 선물은 몰라도 편지를 친구들에게 들키면 너무 창피할 거 같아서 화장실을 갈 때도 가지고 다녔던 편지. 지민의 마음을 들킬만한 내용은 전혀 없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등교할 때부터 계속 몸에 간직했던 태형을 향한 편지였다.

"태형이가 말도 없이 학교를 안 나와서…. 집도 부모님도 전화도 안 받고…. 보니까 반장인 지민이랑 집이 가깝던데. 선생님은 지민이가 수업 끝나고 한 번 가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직접 방문하기 귀찮았던 무책임한 교사의 부탁이었지만, 어린 지민에겐 태형에게 한 걸음 다가갈 기회나 다름없었다. 무단 등교한 태형을 생각하면 감기에 걸렸으려나 걱정도 되었지만, 태형과 따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서 지민은 수업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수학 선생님이 설명하는 일차 함수에서 X를 구하는 식이나 영어 선생님이 읽는 다이얼로그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집중하라 지적까지 받은 지민은 그저 방과 후에 태형을 만날 생각에 들떴었다.

종례 후, 지민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태형의 집으로 걸었다. 밤새 내린 진눈깨비가 얼어붙어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지만, 지민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주소는 지민이 사는 아파트에서 몇 킬로 떨어져 있지 않은 주택가였다. 재개발하며 집들이 하나둘 무너지고 있었지만, 태형의 집으로 추정되는 붉은 벽돌집은 폐허가 된 집터 옆으로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지민은 선물로 챙긴 캐롤 CD와 주머니에서 지민의 손에 의해 따뜻하게 데워진 편지를 꺼내서 문 앞에 섰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문을 두드린 지민은 집 안에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아 조금 기다려 보기로 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 시간, 세 시간, 다섯 시간. 늦은 시간이 되어도 태형의 집에 오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민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굳게 닫힌 문은 열리는 법이 없었다. 밤이 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민이 열심히 쓴 편지도 눈이 닿아 젖어갔다. 지민은 자신이 메고 있던 목도리를 풀러 편지가 젖지 않도록 둘러메고 계속해서 태형의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문을 열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한참을 태형의 집 앞을 지키던 지민은 자정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태형이가 급하게 전학 가게 되었대요."

다음 날 담임 선생님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말을 들은 지민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담임 선생님을 따로 찾아 태형이 이사한 동네를 아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나이대 애들이 다 그렇듯 지민은 쉬이 제 마음속의 진심을 어른들에게 꺼내 보일 용기가 없었다. 지민은 자신의 첫사랑을 그리 보낼 수밖에 없었다. 첫사랑을 봉인하여 떠나보낸 지민의 마음은 다시금 공허해졌다. 그해, 지민의 겨울은 크리스마스의 즐거움 대신, 쓸쓸함이 가득했다. 사무치는 외로움에 지민은 다시 <눈사람 아저씨>가 등장하는 꿈을 꾸었다. 알아볼 수 없는 형체로 간혹 꿈에 나타난 아저씨는 지민의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사랑한다 속삭여주었다. 중학교 3학년, 지민은 때아닌 사춘기를 겪었다. 이성에 춘정(春情)을 느끼면서 시작한다는 사춘기는 지민에겐 동성에 대한 춘정(春情)을 끝내면서 시작되었다. 늦은 사춘기와 비행은 금방 멈추었지만, 줄곧 반장을 했던 예전의 모범적인 지민은 고등학생이 된 다음에는 완전히 사라져 없어졌다.

 

"형님은 수시에 합격했단다."

어깨를 으쓱하며 교실에 들어선 지민은 반응 없는 제 친구들에게 실실대며 말했다. 뒤늦은 사춘기를 겪었던 지민은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가 될 때까진 내일이 없이 놀았다. 정신 차리고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2학년 2학기였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덜 자고 덜 놀면서 공부했던 지민은 중학교 때 쌓았던 기초 지식을 토대로 금방 중상위권 아이들을 따라잡았다. 지민의 노력에 더해서 운도 따라주니 손꼽히는 명문대까지는 아니지만, 남들 다 가고 싶어 할 수도권 내 학교는 수시로 합격하여 진학하게 되었다. 수능 최저 등급이라는 최종 보스가 있긴 했지만, 지민이 도달하기에 그리 어려운 수준도 아니었다.

"빡찌! 배신자 새끼. 혼자만 성공하려고."

"앞으로 잘해 새끼들아. 그럼 내가 콩고물 하나라도 떨어트려 줄지 알아?"

수능 최저 등급을 달성하기 위해 지민은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민의 친구 대부분이 고등학교 때 만났기에 공부하는 놈들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 다시 말해서, 다 같이 놀고 다 같이 돌아다녔으면서 혼자 수시에 합격해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걸 온몸으로 증명한 지민은 독서실을 함께 다닐 친구가 없다는 걸 의미했다. 늘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주변에 없어서 쓸쓸하긴 했지만, 어차피 대학 가면 다들 멀어질 게 분명하기도 했고 공부하기에는 차라리 혼자인 편이 좋았기에 지민은 쓸쓸함을 견뎌내기로 했다. 의리 있는 친구들도 갑자기 공부를 시작하는 지민을 시기하기보다는 응원해주었다. 수능을 백일 남은 어느 날. 논다고 하는 애들이랑 어울려 다니면서도 작정하고 노상까지 깐 적은 없던 지민은 처음으로 수능 디데이 백일을 기념하며 술을 마셨다. 어릴 적에 호기심으로 마셔본 적은 있지만, 몇 모금 정도였고 지금은 술잔도 없이 병째로 마셨기에 금방 취한 지민이었다. 이대로 집으로 가면 부모님께 크게 혼날 게 분명했기에 지민은 집 대신 24시간 문이 열린 독서실로 갔다. 지정석 책상에 엎드린 채 잠을 자던 지민은 밤새 틀어진 에어컨 바람에 답답함을 느끼고 새벽녘에 눈을 떠 옥상으로 갔다.

그리고.

"위험해!"

옥상의 낮은 벽 위로 교복을 입은 학생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찰나의 순간에 지민의 머릿속에는 같이 술 마시던 친구들이 하던 얘기가 떠올랐다. 수능 며칠 안 남기고 성적이 오르지 않아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얘기. 본인들은 힘들기 싫어서 시작도 안 한다는 변명을 하기 위해 밑밥처럼 꺼냈던 시시한 얘기였다. 하지만, 그런 대화를 나눈 날 새벽, 위태롭게 옥상 난간에 서 있는 학생을 본 지민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민은 위험하다고 외치며 난간 쪽으로 달려가 학생의 팔을 잡아당겼다. 지민보다 덩치가 큰 학생은 그대로 지민의 위로 넘어졌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지민은 인상을 찌푸리며 저를 덮친 학생을 밀어냈다.

"밤중에 그렇게 서 있으면 위험하잖…아."

"박지민?"

"김태형?"

지민이 다니는 학교와도 그리 멀지 않은 학교 교복을 입고 있던 학생은 바로 태형이었다. 생일날 갑작스럽게 전학을 떠난 후로 4년 만의 재회였다. 한때 지민은 태형의 전학 소식에 밤새 편지를 껴안고 울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 지민이 썼던 편지는 눈물 자국과 함께 지민의 방 어딘가를 굴러다녔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민은 슬픔은 날린 채 갑자기 나타난 태형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하지만, 불현듯 나타난 첫사랑의 등장은 지민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독서실에는 친한 친구들이 온 적도 없었고, 올 리도 없는 지민만의 공간이었다. 공공의 장소면서도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태형을 마주했다는 사실에 지민은 걷잡을 수 없는 낭만을 느꼈다.

"떨어지려는 줄 알았어."

"갑자기 달려든 너 때문에 그럴 뻔하기는 했지."

태형의 너스레에 지민은 두 손을 모아 한 번 더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 지민의 사과에 태형은 눈이 휘어지도록 웃다가 지민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지민은 태형에게 묵혀둔 질문이 많았고, 태형은 지민이 묻기도 전에 자신의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고등학교까지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진학했던 태형은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태형은 십자인대가 찢어졌었는데 지금은 완치되어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다만, 운동을 계속할 수는 없는 상황인지라 재수할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단다. 지민은 말없이 등교하지 않았던, 그러다가 훌쩍 떠나버린 그 날에 관해서 묻고 싶었지만, 태형에게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질문은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혼자 공부하기 힘들었는데 앞으로는 지민이 너한테 물어봐야겠다."

태형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처음 만난 이후로 태형은 정말 지민의 주변을 맴돌았다. 학교가 달라 등하교까지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독서실에서 만나고 같이 공부를 했다. 공부가 잘되지 않을 때는 같이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사 먹기도 하고, 독서실 옥상에 올라가 맥주를 한잔하기도 했다. 맥주는 보통 태형이 구해 왔는데 교복을 입고도 어떻게 술을 사 왔는지 알 수는 없었다. 어쩌면, 태형의 집에는 알코올 중독에 걸린 가족이 있어 냉장고가 늘 맥주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지민이었다.

처음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했을 땐 귀가하기로 마음먹은 시간인 10시만 기다리던 지민이었지만, 태형을 만난 뒤로는 귀가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어떨 때는 자정에 가기도 했고 그보다 늦는 적은 더 많았다. 공부하라 성화했던 부모님이 공부는 적당히 하고 빨리 다녔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지민은 독서실을 열심히 다녔다. 정확하게는 태형과 함께하는 공부 시간에 몰두한 거였지만. 지민은 태형이 자신에게 질문하는 게 좋았다. 가끔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들고 올 때도 있었는데 머리 맞대고 같이 고민하는 순간까지 즐거웠다. 지민은 태형과 함께하는 일분일초가 행복했다. 열매가 되지 못하고 져버렸던 열다섯 지민의 감정은 재차 꽃봉오리가 되어 꽃을 피우려 했다.

"지민아 난 피곤해서 그만 집에 가보려고. 너는 더 할 거야?"

"아니, 같이 가자!"

매일 독서실 오가는 시간을 서로에게 보고하는 것도 좋았다. 주말 저녁에는 꼭 집에 가서 밥을 먹는 지민 때문에 독서실에 남은 태형은 빵으로 때우기도 했는데, 지정석에 앉아 빵을 우걱우걱 씹어 먹는 태형에게 가서 밥 먹고 올 거라 말하는 순간마저 지민이에게는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어떤 주말, 태형이 늦게 오는 날에는 밥 먹고 오겠다는 포스트잇을 적어 놓고 가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무감이 생길수록 지민은 행복했다. 꼭 태형과 연애라도 하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태형이 대학에 합격해서 하고 싶은 일을 늘어놓았을 때 그 사이에 연애가 없다는 점도 지민을 기쁘게 했다. 지민은 재수라도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태형을 따라, 본인도 재수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지민은 지금의 시간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지민아, 혹시 바빠?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이것만 풀고."

태형은 지민이 영어 듣기 평가 문제를 전부 다 풀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었다. 지민이 이어폰을 끼우고 있던지라 말도 걸 수 없고, 장난도 칠 수 없어 심심했을 텐데도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말없이 가만히 기다리고 서 있었다.

"다 했어. 여기서 말하면 시끄러우니까 휴게실로 가자."

태형의 질문은 대부분 수학 과목이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학생치고는 여러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지민이었지만, 수학은 노력한다고 바로 따라잡을 수도 없었기에 태형이 수학 질문할 때마다 난감해하고는 했었다. 태형이 질문한 통계 문제를 앞에 두고 씨름하던 지민은 결국 백기를 들고 태형을 돌아보았다. 함께 시험지를 보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지민은 마치 입술이 닿을 듯 가까이에 있는 태형의 얼굴에 깜짝 놀랐다. 태형은 지민이 문제를 푸는 내내 지민만 쳐다보고 있던 듯했다. 학교 친구들이랑은 조금만 가까이 닿아도 소름 끼친다며 떨어지라 밀쳐내는 지민이었지만, 태형에게는 똑같이 대할 수 없었다. 태형이 눈을 감았다. 누가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지민 역시 눈을 감았다. 태형의 입술이 지민의 입술에 살짝 닿았다. 태형도 마찬가지련만 처음 키스하는 지민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대로 입술을 붙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태형이 살짝 혀를 내어 지민의 입술을 훑었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움직이던 태형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이가 부딪칠 정도로 거세게 다가오는 태형과 그런 태형의 목에 팔을 둘렀던 지민. 그날, 지민의 심장 속에 오랫동안 몽우리 져 있던 꽃은 꽃밥을 보이며 활짝 피었다.

"태형아 좋…."

좋아해. 지민은 그리 말하려 했다. 그때 지민의 휴대폰이 울렸다. 매일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지민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전화였다.

"내일 얘기하자, 지민아. 나는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아. 내일 날 밝으면 오래 얘기하자. 기다려줄 수 있지?"

태형의 얘기에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생인 꼬맹이 박지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셈이었다. 태형과의 첫 키스. 집으로 돌아온 지민은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도 다음 날만 꼬박 기다렸다. 주말에는 늘 독서실에 늦는 태형이란 걸 알면서도 지민은 이른 오전부터 독서실을 향했다. 태형도 딱 지민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밤을 새우고 일찍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공부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저녁이 됐다. 지민은 태형에게 밥을 먹고 8시쯤 오겠다는 포스트잇을 붙이고 집에 다녀왔다. 그리고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른 채 마구 퍼먹고는 8시가 되기도 전에 독서실에 돌아왔다. 지민은 태형의 지정석부터 확인했다. 태형의 자리는 여전히 불이 꺼져 있었다. 아무리 늦어도 저녁 늦게 오는 녀석은 아니었는데. 스멀스멀 피워 오르는 불안한 생각을 애써 지우며 지민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집중이 안 되는 공부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잠들고 말았다. 밤을 새워 태형 생각을 한 덕분이었다.

[밥 먹으러 감. 아무리 늦어도 8시 전에 돌아올게.]

지민이 적은 쪽지가 차게 식어 있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태형은 독서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났을 땐 독서실 총무가 버리려는 태형의 짐들을 전부 제 자리로 가져 와 펑펑 울던 지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좋아하는 척이나 하지 말지. 수업을 빠지고 태형의 학교에 가서 진을 치고 기다려 보기도 했지만, 태형은 하늘로 증발해버리기라도 한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지민에게 태형의 집 주소를 알려줄 담임 선생님도 없었다. 개학하고는 허구한 날 태형의 학교를 찾는 지민에게 친구들은 그 학교에 시비 건 애라도 있으면 잡아서 족쳐줄 수 있다고도 했다. 지민은 울음을 참으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정말 잡아서 족칠까 봐 무섭기도 했지만, 더 무서운 건 찾을 수도 없을 만큼 먼 곳으로 떠났을까 봐 그랬다.

태형이 사라진 뒤에도 지민의 시간은 얄궂게 흘렀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태형과 함께했던 한 달 남짓 되는 시간이 지민에겐 전부처럼 느껴졌다. 지민에게 태형이 없는 시간은 필요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지민은 점점 집중력을 잃었고 9월 모의고사까지 완전히 망치자 담임 선생님은 지민을 앉혀 놓고 최저 등급만 맞추면 합격이니 제발 좀 집중하라고 타이르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지민은 공부에 도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려고 분위기를 잡으면 자꾸 태형의 입술이 닿았던 날이 떠올랐다. 10월 모의고사에서는 전 과목에서 4등급 이하로 나와 부모님 상담까지 진행했다. 예전처럼 독서실도 가지 않고 집에만 붙어 있는 지민을 보며 부모님은 다시 지민의 정서를 걱정했다. 성적도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지민의 마음과 정신이 가장 소중했으니까.

"지민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

학교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캠페인을 보면 학생들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땐 언제든지 부모나 교사에게 손을 내밀라고 한다. 하지만, 지민이 태형의 일을 어른들에게 털어놓기란 쉽지 않았다. 키스라도 안 했으면 죄책감 없이 말할 수 있었을까? 지민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어 오는 부모님께 아무 일도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수능 전날이 되었다. 사회 탐구 과목을 제외한 두 과목에서 3등급 이상만 나오면 합격이 확정되는 가운데 지민의 성적은 어느 과목에서도 3등급 이상이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져 미친 듯이 문제 풀이를 하기도 한 지민이었지만, 한 시도 빼먹지 않고 공부하는 경쟁자들을 제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지민아! 박지민!"

"밥 안 먹는다고 했잖아! 소화 안 된다니까."

"친구가 너 보러 왔대, 좀 나와 봐!"

관심 없다 신경질을 부리며 거실로 나간 지민은 현관에 서 있는 태형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태형이 아닌 듯한 태형이 서 있었다. 단정한 머리와 항상 입고 있었던 교복이 아닌, 처음 보는 밝은 갈색의 머리에 흰 남방을 입는 태형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눈사람 아저씨…."

태형은 당황해서 멀뚱히 서 있는 지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가까이 다가간 지민은 부모님께는 잠깐 얘기하고 들어온다고 하고 태형과 밖으로 나갔다. 지민과 밖으로 나오자마자 태형은 지민을 붙잡고 비상구로 나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일언반구의 설명 없이 다짜고짜 지민의 입술에 키스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긴 얘기는 못 해. 사랑해 지민아. 보고 싶었어."

태형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태형은 하고 싶은 말을 횡설수설 그러나 빠짐없이 내뱉었다. 자신에게는 시간을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 그러나 현재로선 자신이 시간을 통제하는 게 아닌 자신이 시간에 통제당하고 있어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말. 미안하다는 사과와 사랑한다는 말.

태형의 섬섬옥수 같은 손가락이 지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릴 적에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눈사람 아저씨>의 손길과 비슷했다. 하고 싶은 말이 밀물처럼 밀려들자 지민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몰라 말을 더듬어댔다. 어느 순간 지민의 인생에서 사라져버린 태형을 탓하고도 싶었고, 그런데도 보고 싶었다는 말도 하고 싶었다. 태형에게 저 역시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 싶었다. 지민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대는 사이 지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태형의 몸에선 빛이 나기 시작했다.

"기다릴게."

그리고 영화 장면이 페이드아웃 되듯 제 눈앞에 있던 태형이 서서히 사라졌다. 지민은 태형이 서 있던 곳에 손을 뻗어 보았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다는 듯 차가운 공기가 손에 닿았다. 수능을 하루 앞둔 그 날, 지민은 밤새 앓았다. 다음 날 시험을 제대로 치를 몸 상태가 아니었던 건 당연했다. 아침이 되자마자 눈사람 아저씨가 왔었다고 부모님께 얘기했던 때처럼 태형에 대해서 떠들어대고 털어낼 수도 없는 지민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여태까지 봤던 태형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고민했다. 지민은 태형이 처음부터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릴 적에 있었던 일은 전부 공상이었으리라. 태형을 자신이 불러낸 <수호천사>라고 믿어 넘기기에 현재의 지민은 어린 지민의 말을 믿어주지 않던 어른들과 더 닮아 있었다.

 

지민은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재수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정시 성적으로는 지민이 원하는 대학에 원서도 쓸 수 없었다. 대신 지민은 쉬면서 어릴 적에 만났던 <눈사람 아저씨>와 관련하여 어른을 위한 동화를 썼다. 잠시 만났을 뿐이었지만, 지민의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의 상상이 존재했다. 분명하게 존재했던 태형이 한 줌의 재처럼 바람과 함께 사라진 이유에 관해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민은 수만 자의 글을 쓰면서도 수능 전날 겪었던 기묘한 일이나 태형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박지민 작가님 맞으시죠?"

예상치 못한 책의 흥행으로 출판사에 다음 작품을 써보라는 요청을 받은 지민은 차기작을 쓰기 위해 산을 찾았다. 자연을 주제로 쓰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노트북 하나만 가지고 떠난 길. 분위기 좋은 산장이 있다는 지인의 소개로 산을 찾은 지민이었다. 주차장 직원이 지민을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어릴 때처럼 여전히 낯을 가리는 지민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가 없는 직원은 달라는 주차권은 주지 않고 지민이 쓴 책 <Snowman>을 가지고 나와 지민에게 내밀었다.

"사인 좀 해주세요. 제가 책이랑은 등지고 사는 사람인데 자식 놈이 워낙 재밌다고 극찬을 해대서리. 제 아들놈이 작가님 엄청 팬이라 사인받아주면 좋아할 거 같아서요."

지민은 시동이 꺼진 차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그리고 맨 앞에 자신의 사진이 있는 작가 소개란에 박지민이라는 이름 세자를 정자로 적어 주었다. 중년의 남자는 값 비싼 보물을 받은 듯 감사하다 여러 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자신의 팬이라는 말에 세웠던 벽을 조금은 허물은 지민도 조금은 풀어진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곧 눈이 온다니까 서두르세요!"

중년의 남자는 지민의 책을 품에 안고 주차 관리실로 뛰어가며 큰소리로 외쳤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크게 외칠 숫기는 없었던 지민은 살짝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지민의 목적지는 정상이 아닌 산 중턱에 있는 산장이었으니 예상보다 늦어진 산행에도 그리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겨울 산행은 준비할 게 많다는 엄마의 조언에 방수 스패츠와 아이젠, 방한 장갑까지 단단히 챙기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산행을 서둘렀다. 산장이 있는 산 중턱까지는 두 시간이 조금 안 되게 걸린다고 했다. 이미 점심 이후였기에 지민은 바쁜 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산을 반쯤 오르니 하늘에서 눈이 오기 시작했다. 함박눈은 아니었지만, 계속 내린다면 등산로를 구분할 수 없게 될 수도 있기에 지민은 조금 더 서둘러서 걸었다.

"말씀 주신 시간보다 늦어서 걱정했습니다."

산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눈이 신발 높이까지는 쌓였다. 거의 다 와서는 눈이 펄펄 쏟아졌는데 끝까지 길을 잃지 않고 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산 중턱에 올라오니 기온이 말도 안 되게 낮았고 지민은 몸을 벌벌 떨었다. 산장 초입까지 내려온 주인은 지민에게 담요를 내밀었고, 따뜻한 담요를 얼른 몸에 두른 지민은 몸을 최대한 녹이며 산장 주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저-기가 작가님 머무실 공간입니다. 제 집은 뒤편에 있으니 필요하신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 주세요."

게스트하우스처럼 여러 명이 공유할 수 있게 꾸며진 산장은 지민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운치가 있었다. 지민은 먼저 빈방 중에서 가장 아늑해 보이는 방으로 들어가 제 옷가지와 노트북 가방을 침대 옆에 두고는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올라오면 설경을 제일 먼저 구경하고 싶었지만, 눈이 오는 산의 경치를 즐기기엔 몸이 너무 피곤했고 얼어붙어 있었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산장에서 이불을 덮고 있으니 졸음이 솔솔 쏟아졌다. 더구나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몇 시간을 걸었더니 몸에 힘도 없었다. 그대로 잠이 든 지민은 새벽녘에나 눈을 떴다. 긴 잠에도 쉬이 떨어지지 않는 피곤과 졸음에 하품하며 방 밖으로 나온 지민은 처음 올 때보다 훨씬 따뜻해진 공기에 포근함을 느꼈다.

거실에서는 누군가 벽난로에 불을 때고 있었다. 실내 난방도 난방이지만, 벽난로 덕분에 공기가 전체적으로 따뜻해진 듯했다. 그러고 보니 방으로 안내할 적에 산장 주인이 다른 손님도 있다고 했던 것도 같았는데 아마도 다른 손님이 온 듯했다. 무사히 산장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정신이 없던 지민은 그제야 산장 주인이 했던 말을 떠올려내고 한동안 같이 머무를 동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김태형?"

장작에 불을 지피다 지민이 낸 인기척에 고개를 돌아본 사람은 태형이었다. 놀란 지민과 달리 태형은 그저 지민을 향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지민은 전보다 빠른 걸음으로 태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두 손으로 태형의 두 볼을 만졌다. 혹시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 떡 만지듯 주물러도 보았다. 사라지지 않고 지민의 손에 잡혀 마구잡이로 뭉개지는 얼굴을 보며 지민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기다렸어."

태형이 지민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떠날 거야?"

울음기 섞인 지민의 질문에 태형은 지민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니. 아주 오려고 멀리 돌아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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