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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가는 열차

Calw

 

 

 

 

   우리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알기 시작한 후부터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시간, 특이하다고 부를 수 있는 쪽은 오히려 지민이었다.

 

 

   지민이는 정글짐에 올라갈 때부터 다리가 쭉쭉 찢어지고 매달리는 힘이 남달랐는데, 어느 날엔가 집에 놀러왔던 친구분이 얘는 무용을 시켜 보라고 적극 권해서 건널목 너머 연습실에 레슨을 다니기 시작했다. 무용을 시작하고 나서는 놀이터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애가 됐지만 우리 엄마와 지민이네 엄마는 각별한 사이였기 때문에 지민의 근황을 챙겨 들을 수 있었다. 어린 지민은 상냥하고 순둥한 얼굴이 귀여웠었다. 성격은 또 얼마나 다부지고 깡이 셌는지, 초등학교 육학년 때 처음 간 수학여행날 진실게임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말해 보자는 순서에서는 너도나도 박지민의 이름을 수줍게, 그러나 걜 좋아하기 시작한 건 내가 먼저다, 라는 듯이 분명한 목소리로 외쳤다.

 

 

   — 야, 박지민은 너랑 사귀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한 성지는 누구보다 지민에게 가진 관심이 컸는데, 동갑 친구들을 몇 살 아래 동생처럼 후리며 잘나가기는 했어도 당시 유행하던 깻잎 모양 앞머리와 군데군데 넣은 노란 브릿지, 중학생인 친언니에게 물려받은 최신 유행하는 옷을 입어도 외모로는 크게 뒤쳐져 남자애들 사이에선 그저 학기초부터 슬리퍼로 거슬리는—아마도 저보다 예뻐서—여자애의 싸대기를 때린 무서운 애에 지나지 않았다. 반장보다 실세라는 부반장 자리까지 맡고 있던 지민이는 그 무서운 성지와도 친근하게 장난을 치고 잘 놀았다. 우리는 그 부질없고 흔한 웃음에 설레버린 성지의 감정을 다 알면서도 감히 너도 좋아하잖아, 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것이 언제라도 신발을 들어 나를 후려칠까 두려워, “사귀긴 무슨, 미쳤냐” 라고 얼버무리고서 무릎을 꼭 끌어안았다.

 

 

   우리 동네 여자애라면 한 번쯤 간질간질 마음에 품어봤음직한 박지민은, 누구에게랄 것 없이 공평하게 친절했기 때문에 결국 우리들 사이에서 의미있는 겨루기는 지민이가 누구한테 제일 잘해주느냐가 아닌, 누가 얼마나 지민이를 오래 알았고 누가 지민이와 제일 친하느냐였다. 승자는 매번, 당연히 나였다. 어릴 때는 베란다에 꾸민 조그만 풀장에서 벌거벗고 놀고, 여름마다 서해로 동해로 두 가족이 같이 여행을 갈 정도로 친한 나를 당해낼 여자애는 없었다.

 

 

   — 나는 박지민 말고, 태형이가 귀엽더라.

 

 

   간만에 지민과 함께하지 않는 하교길에 건널목 너머 2단지에 사는 지혜와 나란히 아이스크림을 물고 걷고 있었다. 나는 야무지고 예쁜 여자 부반장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이름에 너무 놀라서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릴뻔 했고 기민한 여자 부반장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걔가 웃으면서 왜? 하는데, 나는 “어, 어, 그냥……”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 진짜 잘생긴 건 태형이야.

 

 

   걔는 묻지도 않은 말에 그렇게 다짐하듯 대답했다. 열차가 다 지나간 건널목 차단기가 댕댕 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내일 봐! 하고 손을 흔들고 건너갔다. 나는 왜인지 복잡해진 머릿속을 식히느라 기찻길 옆을 한참 걸었다. 잘생긴 건 김태형이라고……. 김태형이, 잘생겼다고?

 

 

   ― 김태형이 잘생겼나?

 

 

   부반장의 말을 인정하지 못해서였나, 아니면 그저 인정하기 싫어서였나. 우리 엄마와 지민네 아줌마가 마주 앉아 재개발이 어떻니, 이쪽 동네는 저놈의 기찻길 때문에 글렀네, 따위의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지민이와 공기놀이를 하면서 엄마가 다 마시고 난 찻잔 밑의 유자 껍질을 긁어먹을 차례를 기다리다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지민은 대답없이 그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손등에 있던 공기알을 허공에 띄우고 후려쳐 잡고는 말했다. 오 년. 그로써 지민은 나보다 십사 년을 앞서버렸다. 그건 단순한 놀이에 불과했지만 실제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산만하게 여기저기 공기알을 건드리거나 후두두 떨어트리며 멈춰있는 동안 지민이는 오 년, 오 년, 사 년, 성큼 성큼 나아갈 것 같았다. 박자까지 타며 실컷 스퍼트를 올리다가도 3단, 4단쯤에서 일부러 죽고 내게 차례를 넘긴다는 것도 알았다. 너무 차이가 벌어지면 내가 재미없어할까 봐.

 

 

   ― 야, 지혜가 김태형 좋아한대. 잘생겼다고.

 

 

   나는 지민이 야무지게 공깃돌을 놓고 던지고 잡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말했다. 지혜는 그저 박지민보다 김태형이 귀엽고 잘생겼다고 한 것뿐인데 그건 심술궂은 과장이었고, 잘 하지 않던 짓이라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그런데 지민의 반응이 더 의외였다. 손이 바닥을 헛짚고 옆에 있던 돌을 두 개나 건드려버렸다. 실수인 척과 진짜 실수는 그렇게 달랐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지민은 입술을 꼭 깨물고 한참을 있다가, 겨우, “걔네 둘다 김 씨라서 안 돼.” 라는 유치한 소리를 짜내듯이 했다. 뭐가 안 된다는 건지. 너 김지혜 좋아하냐? 하고 깔깔 웃어제낄 수도 있었지만, 지민이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서 나는 조용히 내 차례를 놀다가 내가 졌다고 치워버렸다.

 

 

   지금 둘을 나란히 놓고—그럴 수만 있다면—굳이 비교해 본다면 단연코 키도 크고 골격이 굵은 태형이 단연 미남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뿌리깊게 자리한 어린 태형은 좀 다르다. 놀이터에서 우리가 노는 것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고 있던 애, 여자애들끼리 소꿉장난 하면 옆에 와서 조용히 구경만 하니 조금 성가시고도 가엾었던 애, 시비가 붙어 다투다 모래를 뒤집어 쓰고 서럽게 소리도 못 내고 끅끅 울던 애, 오학년이 되며 바짝 마르고 키가 크기 시작하면서 입까지 닫은 애. 그리고 나와는 쌍두마차 격으로 지민의 절친이었지만, 둘만 있으면 좀 서먹한 그런 애였다.

 

 

 

 

 

 

 

   우리 셋의 본격적인 우정은 지민이가 예중으로 진학하고 김태형과 내가 같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시작됐다.

 

 

   예중에 간 후로 각종 콩쿨을 휩쓸면서 지민은 승승장구했다. 무용 천재라고 동네 넘어 구 단위, 시 단위로 소문이 다 났다. 지민의 엄마는 뒷바라지를 하느라 회사까지 관뒀지만 신바람이 나셨다. 학교와 연습실에서 살다시피한 지민이는 2학년에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국내 최연소로 호두까기 인형 역을 따냈다. 크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호두까지 인형 박지민’을 치면 내가 보기엔 약간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지민의 프로필 사진과 짤막한 뉴스 기사가 몇 개 나오기도 했다. 지민은 그 역을 따내기 전에 무수히 연습하고 넘어지고, 발레리노들의 영상을 수백번 돌려보았다. 오디션 합격 소식을 듣던 날 얼마나 기뻐했는지, 나와 태형을 꼭 끌어안던 가녀리고 세찬 팔의 느낌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래, 태형과 나를. 언제부턴가 우리 셋은 당연하게 한 무리가 되어있었다. 태형과 나는 딱히 서로를 거리끼지 않았고 지민은 그 바쁜 일상 속에 틈이 조금이라도 나면 가장 친한 친구인 나와 태형을 모두 봐야 했으니.

 

 

   태형은 나와 비슷한 때에 이차 성징을 겪었다. 나는 젖꼭지 부근이 붓고 아프다 가슴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처음으로 브래지어를 차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체육복에 묻은 핏자국을 친구가 가려 주어, 약간 요란스럽게 초경을 맞았다. 태형은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고 목이 두껍게 길어졌다. 살이 붙을 여유가 없이 먹는 족족 키로만 가서 턱선이 또래답지 않게 날렵했다. 표정이나 눈빛이 매우 예민해서 가끔은 처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변성기를 거쳐 목소리까지 완전한 남자의 것이 됐을 때, 나는 김태형이 잘생겼음을 비로소 인정했다. 물론 나만 느낀 것은 아니라, 점점 전교에 김태형 하면 모르는 애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가정 시간에 배운 그대로 우리의 몸은 착실하고 평범하게 자라고 있었다. 부풀고 커지는 몸 안에 아직도 어리고 작은 정신이 다 채우지 못한 공간 속을 어떻게든 메우려 우리는 다 큰 척을 했다. 나는 고독을 즐긴다고 했으나 어떻게든 달라 보이려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2학년이 되면서 나는 태형과 같은 반이 되었다. 우리가 친한 걸 다 아는 반 애들은 그저 재밌자고, 혹은 샘이 나서, 우리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리를 서슴지 않고 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면서 민감하게 구는 나와 달리, 태형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가끔 그 농담 수위가 높아지면 그 커다란 눈을 치켜 올렸는데 그것으로 저질스런 입을 다물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어릴 때는 소꿉놀이 하는 데 와서 껴달란 소리도 못하고 쭈뼛쭈뼛 서있던 애가 언제 이렇게 됐는지. 가장 위태로웠던 시절, 나는 태형을 동갑 친구보다 한두살 연상처럼 의지했다. 태형은 쉬는 시간에 공을 차고 놀기보다 노트에 그림 그리는 걸 더 좋아했다. 샤프펜슬이나 플러스펜 같은 흔한 도구로 슥슥 잘 그렸다. 그림은 물론 미술시간에 찰흙으로 뭘 빚는 것도 잘했다. 태형이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외로워졌다. 얼굴만 좀 많이 잘났지 나와 비슷하게 평범한 길을 갈 것이라 믿었던 태형마저 남다른 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니.

 

 

   태형과 나는 방과 후 매일 영어, 수학을 보충하러 보습학원에 다녔다. 그 당시 동네 애들이 다 가는 보습학원이었는데, 다행히도 지민이 연습하는 스튜디오가 옆옆 건물 3층이어서 수업이 끝나면 바로 놀러갈 수 있었다. 학원 수업이 8시 조금 안 되어 마치면, 태형과 나는 컵닭강정을 하나씩 사서 그 한 컵을 다 먹을 때까지 빙글 빙글 돌거나 온 몸을 일자로 펼치며 허공으로 튀어오르는 지민의 모습을 건물 밖에서 구경했다. 지민이는 한창 클 때인데도 식단을 제한해야 했다. 공연 때문도 있고, 살이 조금이라도 찌면 무겁다며 철저하게 굴면서도 닭강정을 뚫어지게 보는 게 안쓰러웠다. 물론 지민이 앞에서 아무 것도 먹지 말자고 제안한 건 태형이었다. 지민에 대해서라면 워낙에 끔찍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했다. 나하고는 곧잘 주먹으로 어깨도 퉁퉁 치고 야, 야, 하면서 거칠게 말하면서도, 지민이한테는 흡사 내외라도 하는 듯 했다. 지민이는 우리 둘 모두를 스스럼없이 대했다. 모든 게 어릴 때 그대로였다. 사춘기도 오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일찍이 아무도 모르게 찾아왔던 것인지.

 

 

   지민의 연습이 끝나면 우리 셋은 건널목까지 함께 걸어갔다. 그곳을 건너 지민과 나는 왼쪽으로, 태형은 오른쪽으로 갈라졌다. 건널목에는 자주 열차가 지나갔다. 댕댕댕댕.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역무원 아저씨의 뒤에 숨어서,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열차는 맹렬하게 달려와 곧 저편으로 사라졌다. 지나간 자리에는 세찬 바람이 남아, 건널목에 선 우리를 구석구석 헤집었다. 지민의 머리가 나풀나풀 흩날릴 때가 제일 좋았다. 지민이는 여자애인 나조차 두발 규정 때문에 머리를 귀밑 5센티로 자르는 와중에 예쁜 머리길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민이의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성별도 다른 나를, 여전히 이 무리에 끼워 주고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해 주어 고맙고 황송하기까지 했다. 지민이는 나와 태형이 닭강정 냄새를 채 다 날리지도 못하고 연습실에 들어가면, 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계속 춤을 췄다. 지민이 우리를 신경쓰지 못할 정도로 열중하고 있을 때면 태형은 가방 속에서 공책과 연필을 꺼내들고 뭘 열심히 그렸다. 구경 좀 하자고 해도 잘 보여주지 않았지만, 슬며시 훔쳐보면 지민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 태형아, 뭐해?

 

 

   하루는 지민이 턴을 하다 말고 우뚝 멈춰 이쪽을 보며 물었다. 알룬제 자세의 손끝을 마무리하던 태형이 화들짝 놀라서 연필을 놓쳐버렸다. 지민이는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다가왔다. 신기하게도 냄새는 나지 않고 후끈한 열기만 끼쳐왔다. 태형은 눈이 커다래져서 공책을 얼른 가방속에 넣어버렸다. 지민이 웃으면서 태형의 머리를 헝클었다.

 

 

   ― 뭔데 숨겨. 나도 보자, 응?

 

   ― 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 아무 것도 아닌데 왜 숨겨. 보여 줘.

 

 

   지민의 팔이 태형의 어깨에 마구 엉기고 끌어안고 얼굴이 가까워졌다. 태형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 아, 안 된다고!

 

 

   그러다 태형이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지민은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내팽개쳐지고, 나도 덩달아 헉,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끝까지 벌게져서 태형은 씩씩대고 서있었다. 지민의 앞에서는 늘상 순한 강아지같던 태형이, 어째서 그깟 낙서 하나 못 보여 준다고 이렇게 화를 내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인지 바닥에 넘어진 그대로, 지민이는 위를 올려다보면서 “태형아” 했다. 태형은 이름이 불리자마자 가방을 휙 챙겨들고 큰 걸음 걸음으로 연습실을 나가버렸다. 지민이와 내가 뒤쫓아 갔지만 계단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가 이미 저 밑이었다. 붙들기를 포기한 지민이 포옥, 한숨을 쉬며 말했다. 김태형이 나한테 숨기는 게 다 있네.

 

 

   물론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김태형의 멱살을 쥐고 끌고 가다시피 데리고 갔고, 지민은 차마 아무 말도 못하는 태형을 아무렇지 않게 맞아주었다. 제일 좋은 자리로 구해놨다면서 공연 티켓을 내밀었다.

 

 

   ― 첫 무대인데. 꼭 왔으면 좋겠어서.

 

   ― ……어.

 

   ― 올 거지?

 

   ― ……

 

   ― 태형아, 올 거지? 나 보러 올 거지?

 

 

   간다고 말해 등신아. 나는 등짝을 치면서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태형은 전날과 다름없는 모양으로 귀까지 빨개져서 티켓을 받아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 하나로 애들이 무섭다고 슬금슬금 입 다물게 하는 그 김태형이 맞나 싶게 순진했다. 지민이 “으이구, 내 새끼” 하면서 태형의 볼을 톡톡 두들겼다. 중학생 특유의 불량한 태도로 태형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래도 지민은 좋다고 웃었다.

 

 

   지민의 초연일에는 눈이 내렸다. 나는 지민이네 부모님과 우리 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갔고, 태형은 같이 가자는데도 한사코 알아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부모님들을 먼저 보내고 나는 1층 카페 앞에서 태형을 기다렸다. 나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태형은 교복같은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왔다. 손에는 어디서부터 사왔는지 눈발에 꽁꽁 언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이미 엄마가 다 준비해 놨으니 꽃 살 생각은 아예 못한 나는 괜히 민망해서, 꽃이랑 옷이 이게 다 뭐냐고 타박을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줄 알았는데, 태형이 갑자기 사색이 되었다.

 

 

   ― 그렇게 별로야?

 

   ― 어.

 

   ― 어디가 어떻게 별론데?

 

   ―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별로야.

 

 

   그랬더니 그만 얼굴이 잿빛이 되어버렸다. 더 놀릴 수도 없을 만큼 축 처져버려서, 나는 다 농담이었다고 태형을 달래줘야 했다. 태형은 공연 시작전까지 굳은 얼굴로 나한테 대꾸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연말에 가장 유명한 공연답게 객석이 가득 찼다. 오케스트라며 무대장치, 배우들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었지만, 내가 지민의 친구여서가 아니라 정말 모든 것이 지민보다 못했다. 지민이의 수려한 몸짓에 반한 우리 엄마가 억지로 무용을 시킨 덕택에 기본 동작 정도는 볼 줄 알았다. 지민은 누구보다 멀리 보고 높이 뛰었으며 가볍게 돌았다. 손끝은 그냥 널어놓은 듯 하면서도 끝까지 생기가 넘쳐 보는 사람이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무대 조명을 반사하면서 어느 때보다 하얗고 매끄럽게 빛이 났다. 공연이 끝나고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지민이 나와서 인사할 때 나는 손가락을 말아 입술에 물고 휘파람을 불었다. 태형은 가만히 서있었다. 얼른 응원 안 하고 뭐하냐고 툭툭 치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지민은 손을 길게 뻗었다가 무릎을 굽히며 우아하게 인사했다. 넌 그저 세상을 무대 삼아 춤을 추면 된다고 하늘에서 다 가꾼 후에 보내준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하늘이, 온 세상이, 모든 사람들이 지민의 편이라고 믿었다.

 

 

 

 

 

   지민의 인대가 망가진 것은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2년만에 복귀한 ‘호두까기 인형’ 무대에서였다. 지민이가 명실공히 국내 1위인 예고에 수석 입학하자마자 갑자기 늦둥이가 들어섰고, 그 늦둥이가 여자애라 곧 오빠가 될 것이라고 좋아한지 몇 달 안 돼서였다. 초연은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두 번째 공연에서 사고가 났다. 날씨가 추워 그런지 다리가 유난히 뻣뻣하게 느껴진다고 했을 때만 해도 나는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슬슬 입시 압박이 느껴져 첫 공연만 갔던 나는 지민이가 마지막에 그랑 줴떼 후 착지 자세를 잘못 잡아 넘어질뻔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바로 넘어지지는 않았으나 곧 쓰러져서 한바탕 난리였다는 소리를 듣고도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 엄마는 며칠이라도 지나고 좀 진정이 되면 가보라고 했지만 나는 메시지에 답장도 없고, 전화도 받지 않는 지민이가 처음이라 견딜 수 없었다. 태형이와 방과후에 만나서 병원에 함께 갔다.

 

 

   태형의 학교와 우리 학교는 버스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문과를 거쳐 인문대 어디든 인서울하는 것이 목표라 영어학원, 수학학원을 전전했고, 태형은 1학년 2학기부터 미술 특기자로 정규 수업만 마치면 화실로 곧장 가서 입시 미술 준비를 했다. 각자 다른 길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두고 준비하면서 중학생 때만큼 학원이 끝나고 매일같이 지민의 연습실에 모이진 못했다. 오히려 지민이 연습을 마치고 태형의 화실이나, 우리 학원 앞에 나를 데리러 온 적도 많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이미 다 커놨던 태형이나 나는 변한 게 별로 없었고, 지민이는 키가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목소리도 예전보다는 두꺼워졌다. 몸에는 탄탄한 근육이 잡혔는데도 체구가 작아서, 밤이 늦어 집에 데려다 주려고 왔다고 하면 사실 미안한 소리지만 귀엽기까지 했다. 어쩌다 셋이서 같이 걷는 날이면 우리는 그다지 오래 살지도 않은 주제에, 옛날이 좋았지, 하면서 추억을 이야기했다. 건널목에 열차가 없어도 우리는 일부러 열차 하나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못다 한 수다를 떨고는 했다. 이미 성공 궤도에 올라선, 옛날 공기놀이 할 때처럼 나보다 몇 년은 앞서간 지민을 축복하고 동경하면서.

 

 

   ― 지민아.

 

 

   병실에 앉아있는 지민은 창백하고 수척했다. 손도 안 댈 게 분명한 과일 바구니가 작고 초라한 환자의 모습에 비해 너무 크고 화려해서 나는 울고 싶어졌다. 나는 가까스로 이름 한 번을 부르고 더는 입을 열지 못했고, 태형은 잠자코 지민을 보기만 했다. 지민은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푸스스 웃었다. 왜 웃어. 울지. 나는 이와중에도 어른이려고 하는 지민이가 속상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 어떻게 찾아왔어.

 

   ― ……

 

   ― 사랑아.

 

   ― ……

 

   ― ……태형아.

 

 

   지민이 우리의 이름을 번갈아 불렀다. 나는 우다다 걸어가 지민의 손을 움켜쥐었다. 태형은 여전히 목석처럼 서있는 그대로였다. 나는 지민의 윤기라곤 없는 마른 손을 꼭 잡고 얼굴에 부볐다. 어릴 때 자주 하던 버릇이었다. 지민이 나를 끌어당겨 안고는, “고마워” 했다. 호두까기. 그 빌어먹을 호두까기. 무대에 서게 됐다고 기뻐하며 끌어안던 팔이 생각나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는 그렇게 주책이었다. 태형이라도 냉정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끄윽 끄윽 숨을 삼켰다. 지민의 포옥, 포옥, 내쉬는 숨이 어깨를 타고 전해져왔다.

 

 

   ― 나 혼자 있고 싶어. 당분간.

 

   ― ……

 

   ― 괜찮아질 때까지. 알았지.

 

 

   아니라고, 우리라도 매일 너와 함께 있겠다고, 설득해 보라는 눈빛으로 태형을 돌아보았다. 태형은 여전히 그 거리를 유지한 채로,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참담한 눈빛으로 이쪽을 보고만 있었다. 지민은 “이제 그만 가” 하며 나를 살짝 밀어냈다. 어떤 심정일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헤아릴 수가 없는데 다만, 지민이 너무 지쳐 보여서 나는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지민은 끝까지 흐릿하지만, 애를 써서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계속 그렇게 서있기만 하던 태형을 잡아끌고 나왔고, 조금 화가 난 상태였다. 어떤 말이라도 위로를 해 주지. 지민이는 그 와중에 네 이름까지 불러 줬는데. 하지만 말을 보태서 더 상황을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조용히 복도를 걸어 엘레베이터를 타고, 승강기를 타고 내려왔다. 출구로 향하는데 태형이 갑자기 멈춰섰다.

 

 

   ― 태형아, 김태형. 어디 가, 너!

 

 

   뒤를 돌아 저벅 저벅 걸어가는 태형을 따라갔다. 병원이라 큰 소리를 낼 수 없어 나중에는 한참 느린 걸음이지만 겨우겨우 쫓아갔다. 비상구 계단을 다 올라와 돌아 섰을 때, 태형은 이미 병실 안에 들어간 뒤였다. 나는 병실문에 기대서서 귀를 바짝 붙였다.

 

 

   ― 혼자 있고 싶다고 했……잖아.

 

 

   지민의 갈라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애써 참던 눈물이 터진 모양인지 끝에는 목이 매였다. 안에서는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괜히 숨을 죽이고 입을 틀어막았다. 한참 뒤에, 태형이 입을 열었다.

 

 

   ― 하지…… 마.

 

   ― 지민아.

 

   ― 놔. 그냥…… 나 좀. 어?

 

   ― 박지민.

 

   ― ……

 

   ― 나는 너 혼자 안 놔둬. 절대.

   다행히 부상은 재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편은 아니어서, 예전처럼은 아니어도 몇 년 조심해서 관리하면 춤은 계속 출 수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조차도 엄마에게 전해 들은 것이었다. 지민은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다. 물을 수도 없었다. 나는 좋은 것만 믿으려는 버릇이 있어 그러리라 막연히 믿었다.

 

 

   지민의 동생은 예정일보다 한 달 정도 일찍 나왔으나 건강했다. 천만다행이었다. 늘 순우리말이고 부르기 쉬워 좋다며 내 이름을 부러워하던 지민이네는,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한 번의 부상으로 그동안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지고 주저앉은 와중에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와 동시에 약간은 뒷전이 되어버릴 지민이의 아픔이 더 신경쓰여 그 상황이 별로 달갑지만은 않았다. 지민이는 다시 학교를 나가고 연습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2학년만 되면 지민을 영입해 가려던 발레단 입단은 물거품이 됐고, 공연이나 콩쿨을 준비하지는 못해도 감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가끔 학원을 마치고, 돌아서 가는 길이라도 지민의 연습실 건물까지 가 보면 그 늦은 시간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을 때가 많았다. 예전처럼 빙그르르 돌고, 높이 뛰어오르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나는 지민이 의지를 잃지 않고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가끔씩 누구라고 그림자만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어도 익숙한 실루엣이 지민의 곁에 보이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연습실에 뛰어올라가 "야, 너네 나 빼놓고 뭐하냐?" 라고 웃으며 껴들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다가도 왠지 모르게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발길을 돌려 혼자 건널목까지 걸어갔다.

 

 

   언제부터였을까. 나와 지민이, 지민이와 태형이. 이렇게 둘둘씩 친하다가 어느날 아무도 모르게 함께하게 된 우리 셋의 우정처럼. 다시 나와 지민이, 태형이와 나. 그리고 태형과 지민. 이렇게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 건.

 

 

   우리는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와 예전처럼 지냈지만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와 열일곱살이나 차이가 나는 동생 희망이는 유일하게 마음이 밝아지는 대화 주제가 됐다. 지민이가 찍어오는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면서, 너랑 어딘 닮고 어딘 안 닮았다는 큰 의미없는 비교를 하고 지민이가 진심으로 웃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이나마 안도했다. 희망이가 백일잔치를 하고 돌이 되고, 옹알옹알 알 수 없는 소릴 하고, 두발로 우뚝 서서 걷기 시작하는 동안 우리는 성인이 될 준비를 숨가쁘게 마쳐가고 있었다. 갑갑한 틀처럼 느껴지던 미성년이라는 위치가 없어선 안 될 울타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민이는 고민하다 한 학년을 미뤘다. 이대로 졸업만 기다려서는 아무 소용도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재활치료를 하고 연습실에 꾸준히 나갔다. 겉으로 보기에나 평소 걷는 모습은 멀쩡했는데 "조금 더 해야지" 라고 말하는 얼굴은 씁쓸해보였다. 이 길 하나만 보고 달려왔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무너졌을 땐 어떡해야 하는지, 뭘 해야하고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그 노력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배운 적이 없었다. 어둡고 막막한 생의 한가운데서 지민은 방향도 모르고 걷고 쉬고 걷고 쉬고를 반복했다.

 

 

   수능 오십일을 앞두고 지민이 어디서 났는지 맥주 세 캔을 사왔다. 백일 때는 못챙겨서 미안하다는 말과 예쁘게 포장된 엿을 곁들여서. 나는 인생에서 가장 큰 시험을 앞두고 이게 맞는 짓인가 긴가민가해 하면서도 그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내 몫의 한 캔을 다 비웠다. 놀이터에는 사람 하나 없었고 여름이 물러간 공기는 서늘했다. 태형은 망설임없이 제 것을 벌컥 벌컥 마시고, 지민이 채 못 비운 캔을 뺏어들고 마저 털어넣었다. "인마, 욕심낼 게 없어서 술욕심을 부리냐" 지민이가 웃으면서 태형의 어깨에 매달렸다. 나는 태형의 얼굴이 또 어떻게 변하는지 궁금해하면서 바닥을 구르며 그네를 움직였다. 빛이 들지 않는 밤에 태형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 태형아, 사랑아. 내 걱정 많이 했지.

 

 

   우리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습관대로 건널목 앞에 멈춰섰다. 열차 하나가 지나갈 때까지 우리는 거기서 못다한 이야기를 마무리할 것이었다. 지민의 나직한 목소리가 눈가를 적셨다.

 

 

   — 이제 괜찮아. 정말로. 거의 다 나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

 

   — ……

 

   — 다 지나갈 거야. 이렇게 지금처럼. 열차 하나만 보내고 나면 나는 다시 또 걸어가면서.

 

 

   지민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차단기가 내려오고 저 멀리서 정말로, 열차가 달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지민의 왼쪽에 서있던 태형이 손을 잡았다. 둘 중 누구라도 울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지민이의 곁에 이렇게 서있고, 같이 걸어줄 수 있겠지만 그 손은 좀처럼 잡아줄 수 없겠다는 것을. 저쪽 손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자정을 넘긴 연습실에서 홀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던 지민의 곁을 묵묵히 지키고 종이 위에 아름답게 기록하는, 나보다 더 단단하고 커다란 존재가 있어서.

 

 

 

   태형이의 화실에 한 번 가 본 적이 있었다. 미대 지망생들은 수능이 끝나고 더 치열하게 입시 준비를 했다. 늘 나보다 시간이 넉넉했던 태형은 수능이 끝나고 화실에서 거의 하루의 반을 보냈다. 태형이에게 그동안 한 번도 따뜻하게 응원해 준 적이 없던 게 미안하기도 했고, 2차 수시로 목표했던 대학을 합격해둔 상태라 여유가 넘치기도 해서, 간식을 바리바리 사들고 놀러 갔었다. 입시로 그다지 유명세를 떨치는 것도 아니고, 공간이 협소한데다 일욕심이 별로 없는 원장 선생님 한명이 운영하는 화실이라, 태형이 거의 개인공간처럼 쓰고 있었다. 생전 처음 내가, 그것도 지민이도 없이 혼자 찾아가 당황했는지 태형은 허둥지둥 일어나 인사했다. 그바람에 무릎에 얹어놨던 스케치북이 떨어졌는데 얼굴은 동그란 원에 콧대를 그린 것이 전부였지만, 지민인 게 분명한 스케치가 가득했다. 나는 간식거리를 풀어놓을 생각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차례차례 스케치북을 넘겨보았다. 도약하기 전 무릎을 구부린 지민이. 허리와 고개를 한껏 뒤로 꺾으며 뒤로 넘어가는 지민이. 허공에 팔을 뻗고 그저 걷고 있는 듯한 지민이. 발목을 잡고 주저앉아있는 지민이. 창문에 비친 그림자도 지민이. 지민이. 지민이. 줄곧 겉으로 꺼내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의심을 얼굴에서 지우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태형은 의외로 덤덤했다.

 

 

   — 야, 너희 설마.

 

   — 나만.

 

   — ……

 

   — 나 혼자만 그래. 지민이는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게 뭔데. 그런 게 어때서. 나는 얼마든지 쿨해 보이는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태형이는 자신의 감정을 '그런 거' 라고 표현하는 사람같지 않게 평온하고 당당해 보였다. 그런 애가 지민의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굳이 알려 주지 않아도.

 

 

 

 

 

 

 

 

 

   지민이가 희망이는 아무래도 음악 신동인 것 같다고 할 때만 해도 어지간한 팔불출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예술적 재능은 종류가 달라도 한 집안에 몰아지는 것일까. 희망이는 다섯 살이 됐을 때 피아노 신동으로 TV에 출연했다. 처음 보는 선이 많은 악보도 수백번 연습한 어른처럼 한번에 연주했다. 하나를 알려 주면 열 군데에 응용하는 것이 꼭 어릴 때 지민을 보는 듯 했다. 지민이의 부상 이후 큰 실의에 빠졌던 집이 희망이로 인해 그야말로 다시 희망을 찾은 셈이었다. 아무리 잘났어도 제 자랑 한 번 시원하게 하는 법 없던 지민이는 만나기만 하면 찢어지게 동생 자랑을 했다. 나는 최대한 열심히 그 자랑에 맞장구를 쳐 주고 놀라워 하면서도, 열일곱에 입은 부상의 후유증을 군 제대할 나이가 되도록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지민이의 상황이 늘 속으로는 걱정이었다. 거기에 꼭 자기 어릴 때 모양으로 동생이 여기저기 칭송 받는 것을 보는 기분이 어떨지에 대한 걱정도 더해졌다. 한 번 방송을 탄 희망이는 콩쿨 참가를 제안 받고, 대상을 여러번 받았다. '박희망 피아노' 라고 검색하면 기사가 여러 개 나오기도 했다. 모든 것이 옛날 지민이와 똑같았다.

 

   지민이가 이겨내야 할 것은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재파열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겠지만, 희망이가 다섯 살이니 벌써 오 년이었다. 회복이 되고도 남을 시기였고, 예전처럼 천재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도 업으로 삼을 수준은 되고도 남았다. 나와 태형의 앞에서 지젤이나 백조의 호수 안무를 보일 때는, 눈이 내리던 지민의 초연일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잘했다. 아무리 다쳤고 예전같지 않다 해도, 지민은 지민이었다. 나는 도대체 예전과 무엇이 다른지를 몰랐다.

 

 

   ― 낯선 사람들 앞에만 서면 발목에 감각이 없어진대.

 

 

   대학교 3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마친 후에 태형과 어쩌다 동네에서 둘이 만났다. 지민이와 둘이 만나는 적은 많았어도, 태형과 단둘이 만난 적은 스무 살의 1월, 화실에서의 어색한 침묵으로 끝난 만남 이후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태형이의 마음을 알고 딱히 다르게 굴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징그럽거나 놀랐다거나 그런 감정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태형이 나를 불편해할까봐 걱정이 됐다. 태형이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괜히 나 혼자 그랬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아주 드러내지 않았을뿐, 세상이 옳다고 말하는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이나 가치관에 은근한 경계심을 품고 있던 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대한지 얼마 안 돼 꼭 고등학생처럼 밤톨 머리를 한 태형은, 그 외모하고는 영 거리가 멀어보이는 파인애플 소주를 시켜놓고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 어?

   ― 무서운가 봐. 안 그런 척은 다 하면서.

 

 

   나는 지민이 태형에게는 언제 그런 속을 터놓았는지 질투가 나기에 앞서, 그런 말이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자체에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소주잔을 건드리거나 내 쪽을 보고 말할 생각은 아예 없어 보였고, 그날 그까짓 파인애플 소주에 취해버린 쪽은 어이없게도 과에서 술 세기로 유명한 나였다.

 

 

   ― 야, 김태형.

   ― 왜.

   ― 미안해. 그때. 옛날에.

 

 

   나는 어릴 때 하던 것처럼 사내애 흉내를 내면서 태형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끝도 모르고 자라다가 백 팔십 즈음에서 멈춘 태형은 너무 높고 컸다. 더 빠질 것도 없던 젖살이 다 내리고 턱이 자라면서 완성형이 된 얼굴 덕분에, 무슨 학교 무슨 과 김태형이라고 꽤 유명했다. 지민이나 희망이처럼 기사가 나오진 않아도, 과에서 찍은 단체 사진이라든지 인터뷰 영상 같은 것으로. 그런 잘난 태형에게, 어쩌면 아주 오래전에 잠시 헷갈린 것뿐일지도 모르는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무리한 짓이었다.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냐, 혹은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정색하지 않을까 싶어 술이 다 깨려는 참에, 태형은 주르륵 미끄러지려는 내 팔을 붙잡아 제 어깨에 걸치고 말했다.

 

 

   ― 내가 좋아하는 건데 왜 니가 미안해.

 

 

 

 

 

 

 

 

 

   태형은 지민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 고민은 해 본 적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민이가 아무리 마음이 넓고 우리를 아낀다고 해도, 태형의 오랫동안 간직했던 감정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나도 전혀 모를 일이었다. 받아준다고 해도, 그러면 사귀는 건가. 사귀면 뭐가 달라지는 건가. 못 받아 준다고 하면, 둘은, 그리고 우리 셋은 어떻게 되는 걸까. 확신할 수 없는 일은 입밖에 내지 않는 게 맞았다. 그런데도 내가 태형을 종용한 이유는 그만큼 사태가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희망이가 여섯 살에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에 입학 허가를 받았다. 재능은 물론 야심차기가 어린애같지 않아서,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가려다가 정상을 찍은 것이었다. 지민이가 어릴 때부터 자식의 천재성이 주는 환희와 환상에 휩싸였던 지민이의 부모님은, 한 번 좌절한 후에 다시 찾아온 희망을 놓치기 싫어했다. 희망이를 데리고 모스크바로 갈 거라는 소식에 나와 우리 엄마는 난생 처음으로 지민이네 엄마 흉을 봤다. 흉이라기 보다는 내가 다 야속해서였다. 지민은 문턱이 많이 낮은 지방의 예대에 겨우 진학해 이제 일학년을 마친 상태였다. 힘겹게 회복해 가는 중에, 온 가족이 외국으로 떠난다니 내가 다 후끈하고 눈물이 났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지민이는 잘 된 일이라고 진심으로 기쁜 웃음을 보였지만.

 

 

   가족들을 배웅하러 모스크바에 갔다가 한 달을 보내고 돌아온 지민이는 식구 네 명이서 살던 집에 혼자 살았다. 혼자 있으니 조용하고 넓어서 좋다고 농담도 했지만, 점차 웃음이 줄어들고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사고 이후에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뜻밖에 태어난 아기와 그로 인해 더 끈끈하게 결속된 가족 덕분이었을 것이다. 언제까지고 내 편이고 내 옆에 있으리라 믿었던 가족이, 배신 아닌 배신을 하고 떠난 셈이었다. 지민이는 너무 착해서 아무도 원망하지 못했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으면 한없이 외로워진다. 나는 그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태형은 지민이 혼자 지낸지 삼개월 쯤 됐을 때 고백을 했다고 한다. 몸살을 심하게 앓는다기에 간호해 주러 갔다가 너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그만 그렇게 됐다고. 좋아한다고 말을 했는지, 순간 충동적인 마음으로 입이라도 맞추었는지, 김태형이 그러는 게 잘 상상은 안 되는데 울며불며 끌어안고 난 너밖에 없다 했는지 자세한 사정은 묻지 못했지만 두 가지는 확실했다. 지민에게 고백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태형의 말은 진심이었고, 그러므로 지민은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

 

 

   ― 야, 태형아. 미안해. 괜히 내가 그러라고 부추겨서……

   ― 니가 부추겨서 그런 거 아니야.

   ― 그래도.

   ― 말했잖아. 내가 좋아하는 건데 미안할 이유 없다고.

 

 

   나는 한결같이 자기 감정에 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태형이 대견한 한편 지민이 거절했다는 사실 자체가 잘 와닿지 않았다. 동시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 그러니까 이십 년 가까이 친구였던 애가, 그것도 같은 성별인 애가 다른 마음으로 좋아한다는 말을 하면 받아 줄 수 없는 게 당연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 스스로가 더욱 이해가 안 됐다. 나라면 받아줄 수 있을까. 같은 여자까지 가지 않아도, 이미 지민이나 태형이만 생각해 봐도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지민이에게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속에서 굳게 믿었던 걸까.

 

 

   지민이는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가족에게로 갔다. 혼자 반 년을 버텼으면 그래도 잘 버틴 셈이었다. 러시아는 음악뿐만 아니라 발레도 유명하니까, 가서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또 좋은 점만을 보고 믿으려고 했다. 지민이 떠나기 하루 전, 셋이서 모였다. 둘 사이의 문제 때문에, 그런 조합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나는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체 하느라 아무 말이나 떠들어댔다. 정말 나오는대로 지껄인 수준에 불과해서 대화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고, 지민이의 수척하고 창백한 얼굴, 화실의 조각상같이 굳어진 태형의 얼굴, 그리고 건널목 앞에서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겁게 짓누르던 침묵이 생각난다.

 

 

   ― 한국에서 그렇게 안 머니까, 나중에 놀러와.

   ― 야, 니가 오는 게 빠르겠지. 한국 아예 안 올 거야?

   ― 여기선 많이 봤으니까. 너희랑 다른 데서도 보고 싶어.

 

 

   지민이 그렇게 말하곤 팔을 벌려 우리 둘을 안았다. “나 이제 진짜 진짜 호두까기 인형 하는 거야!” 하고 끌어안던 팔이 또 생각났다. 빌어먹을 호두까기. 나는 호두를 싫어하게 됐다. 예술의 전당도 가지 않는다. 연말도 좋아하지 않는다. 지민이는 이런 나를 전혀 모를 것이다. 나는 지민이에게, 그리고 태형이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 우리는 자각하지 못한 채로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습관을 베이게 하며 살아가는 걸까.

 

 

   ― 보러 올 거지?

 

 

   몰래 그리다가 들켰다고 버럭 성질을 내고 가버렸던, 감정에 서툴렀던 어린 태형이에게, 자신의 초연 티켓을 건네며 “보러 올 거지?” 말하던 지민이는 이미 어른이었는데. 지민이는 그 순간에 아주 연약하고 어려서 손에 가두고 지켜줘야 할 어린 새처럼 보였다.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왔다. 태형이 지민을 당겨 안았다.

 

 

 

   ― 너만 허락하면. 언제든지.

 

 

 

 

 

 

 

 

 

 

   일주일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지민이는 어색하게 아무 말이나 늘어놓다가, 마지막에 태형이는 잘 지내느냐고 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친구의 역할에 충실하려 놀라는 척을 하고, 둘이 그럼 연락을 안 하느냐고 물었다. 지민은 한참이나 말을 고르다가 “응” 이라고 털어놓았다.

 

 

   ― 왜?

   ― 태형이가 나한테. 태형이가 뭘 물어봤는데.

   ― 응.

   ― 내가. 거짓말을 했었거든.

 

 

   태형에게 지민의 말을 전하면서 나는, 당장에 지민에게로 날아갈 태형을 알고 있었다.

 

 

   올해는 여름이 유독 더웠다. 가을은 밤부터 찾아온다. 창문을 열자 열차 지나가는 소리에 바람이 나풀 불었다. 북쪽으로 가는 열차다. 태형을 태운 비행기도 북쪽을 향해 날개를 펼쳤다. 앞날은 모르지만, 방향을 아는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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