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rgo 秋
포크
*친해지길 바래*
친하지 않거나 서로 잘 모르는 사이면 모를까. 태형과 지민은 사귀게 된 이후, 어색함에 질식사 할 것만 같았다. 서로 크게 변하는 것이 없음을 아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문자와 전화로는 내일 꼭 이야기하자, 어색해 하지말자 약속하면서도 정작 만나면 손가락만 빠는 상태였다. 결국 바뀌어버린 사이를 적응하지 못한 둘은, 남은 일주일을 어디 한번 놀러가지도 못하고 어색함만 남긴 채 끝냈다.
지민은 태형으로부터의 문자에 답변하곤 침대에 털썩 누웠다. 내일이 개학이라는 사실에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선생님이든 학생이든 학교 가기 싫은 건 만국공통이니까. 그래, 조금 좋은 점이라면 어색함을 느끼지 않고도 태형을 자주 볼 수 있단 점일 것이다. 지민은 앓는 소릴 내며 돌아누웠다. 태형과의 삭막함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막막했다.
태형은 또한 그야말로 우중충함 그 자체였다. 개학하는 날 낯빛이 좋은 학생이 어디 있겠냐만은, 태형은 유독 심했다. 오죽하면 학교 앞에서 학생들을 반기던 교장 선생님께서 어디가 안 좋냐 며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저기 빈자리 누구야?”
지민이 반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첫날부터 지각이라니. 지민은 혀를 쯧쯧 차댔다. 그 이후론 형식적인 인사들이었다. 잘 지냈느냐, 어디 놀러갔다 왔느냐, 아프진 않았느냐.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나누니 어느새 개학식이 시작되었다. 전교생이 강당에 들어가는 건 당연히 불가능이었기에 3학년은 영상으로 볼 뿐이었다. 애초에 보는 사람이 있나 싶긴 하다만.
그렇게 시작된 개학식은 벌써 20분이나 이어진 교장의 연설에 모두가 지칠 데로 지쳐있었다. 지민은 엎드려 자는 애들을 굳이 잡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자신도 엎드려 자고 싶었으니까. 그러던 도중 엎드려 자던 태형이 비몽사몽하며 고개를 들었다.
‘잘 잤어?’
지민이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입모양으로 물었다. 대부분은 자고, 떠들었기에 지민을 본 사람은 태형밖에 없었다. 태형은 눈을 급하게 비비며 입모양으로 되물었다.
‘네?’
‘피곤해?’
지민이 입모양을 또박또박 내었다. 덕분에 머리까지 들썩였고. 태형은 그런 지민의 모습에 킥킥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엔 또다시 할 말이 없어졌기에 서로 눈을 피했다. 지민은 애써 출석부를 뒤적였고 태형은 엎드려서 그런 지민을 힐끗 쳐다보았다. 둘 다 어떻게 이 어색함을 이겨내야 할까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개학식은 어느새 끝나있었다. 마지막까지 TV를 본 학생은 없었기에 그 끝은 알 수 없었지만. 지민은 갑작스레 찾아온 방송부 학생들에 의해 교실에서 나가야 했다. 태형만이 그런 지민을 아쉬운 듯 쳐다보았다.
♬
“쌤 이거 마셔요.”
태형은 방송실에 지민이 혼자 남길 기다리다가 바나나우유를 건넸다. 지민은 피곤한 눈을 꾹꾹 누르던 도중 찾아온 태형에 환하게 미소 지었다.
“뇌물이면 못 마시는데?”
지민은 장난으로 말했다. 순간 당황한 태형이 멍 때리자 지민은 웃음을 터뜨렸다. 지민은 괜찮으니 옆에 두고 가라고 말했다. 태형은 조금 고민하더니 같이 가져온 얇은 빨대를 우유에 꽂았다. 그리곤 우유를 한 번 쭉 마셨다.
“마시던 건 괜찮겠죠? 아니면 입대서 싫어요? 빨대 하나 더 가져올까요?”
“아냐. 진짜 고마워.”
지민은 안절부절 못하며 물어보는 태형에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태형은 지민의 확답을 받아내고 나서야 웃으며 방송실을 나갔다. 지민은 태형이 나간 뒤 바나나 우유를 입 한 번 떼지 않곤 빨대로 쭉 들이켰다. 분명 바나나 우유는 시원했는데 얼굴은 홧홧했다. 속이 술렁거리는 느낌에 배까지 아플 것만 같았다. 지민은 배를 감싸곤 책상에 머리를 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에어컨도 지민의 열기를 없애주지 못했다. 지민은 고개를 돌려 텅 빈 플라스틱 통을 바라보았다. 연애가 복싱이었다면, 어퍼컷이라도 한 대 맞은 기분. 지민의 기분이 딱 그러했다. 온 몸이 얼얼해선 넉 다운 직전이었다. 이렇게 예고 없이 훅 치고 들어온 태형은 지민에게 좋은 쪽으로 해로웠다.
학교가 끝나고, 태형은 한동안 지민과 함께 하교할 수 없었다. 방학 전부터 예고된 수행과 입시 준비로 빠듯했으니까. 거기다가 교내외 대회까지. 태형은 눈 코 뛸 새 없이 바빴다.
[내일 봬요!]
[그래. 내일 보자.]
태형은 지민에게서 온 답장을 보곤 미소 지었다. 입추가 지난 건 이미 한참 지났으니 가을이었지만, 더운 날씨에 태형의 입 꼬리는 자연스레 다시 내려갔다. 나날이 올라가는 불쾌지수를 막을 것은 지민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연신 옷을 펄럭이던 태형은 지민을 생각하며 버스에 올라탔다. 에어컨 냄새는 어지러웠지만 태형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학원으로 향했다.
태형은 지겹게도 본 악보를 피며 한숨을 내쉬었다. 슈만의 Meine Rose(나의 장미) Op. 90, No. 2. 계이름을 달달 외울 정도로 연습하여 귓가에 노래가 계속 맴도는 것만 같았다. 태형은 가사가 번역된 프린트를 유심히 보더니 반을 접고, 또 반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이런 오글거리는 노래는 자신과는 너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베토벤의 ‘입맞춤’이 더 좋았다. 익살맞고 짓궂게 부르는 노래라니. 꼭 자신에게 어울리는 노래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민은 자신이 부르는 입맞춤에 어떻게 반응할까? 물론 잘한다며 칭찬하겠지만 귀까지 시뻘게질 것이라 생각하니 태형은 킥킥대며 웃었다.
“왜 혼자 웃고 그래.”
“안 웃었다.”
“아 몰라. 집 가고 싶어.”
친구가 학원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태형의 앞에 자연스레 앉은 그 친구는 자신의 입시 곡 악보를 꺼내었다. 슈베르트의 ‘마왕’. 태형은 보고 싶지도 않다는 듯 친구의 악보를 뒤집었다. 그야 자신도 연습해야할 곡 중 하나니까. 그리곤 태형은 한숨을 쉬며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농땡이를 피웠다며 원장에게 혼나고 싶은 마음은 쥐뿔만큼도 없었으니 말이다. 비어있는 연습실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태형은 선생님과 마주쳤다.
“태형아 일로 와봐.”
태형은 어기적거리며 상담실로 들어갔다. 방학 때부터 유학을 가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던 선생님이었다. 태형은 또 시작된 똑같은 이야기에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사실 태형도 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외국에서 적응하는 것도 어렵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뭘 할 수 있겠냐는 마음에 가고 싶지 않았다. (유학을 전적으로 지지하던 태형의 아버지는 태형의 말에 이민을 제안했다. 태형은 농담이 아닌 듯해 식겁했다. 물론 정말 농담이 아니었다.)
대충 대답하고 나온 태형은 연습실에 들어서선 노래 부르기를 시작했다.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오자 큼, 하고 목을 가다듬은 태형은 입을 열었다. 완주한 뒤 태형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지민이 부족했다. 사실 다 핑계고 지민이 보고 싶었다. 서로 어색해하기 바빠선 손 한 번 못 잡은 게 한이었다. 만약 태형은 지금 지민을 만날 수 있다면 쪽, 쪽하곤 뽀뽀세례를 퍼부어주고 싶었다.
순간 울린 핸드폰 진동에 설마 했던 태형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뒤로하고 핸드폰을 집었다. 친구의 문자임을 알아챈 태형의 표정은 짜게 식었다. 핸드폰을 뒤집어 놓고 다시 연습에 임하려던 때, 문자가 여러 번 연달아 울렸다. 무음모드로 바꿔놓아야겠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다시 집어 올리자 상단에 지민의 문자가 3개나 와있었다.
[태형아 학원이지?]
[나올 수 있나?]
[너네 학원 밑에 잠깐 들렀어.]
태형은 원장 선생님께 문화생활을 하러 갔다 온다며 뛰어나갔다.(원장선생님은 문화생활이라고 하면 외출을 허락해주신다.) 발을 동동 굴리며 몇 초 동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결국 계단으로 내려갔다. 혹시 지민이 돌아 가버리기라도 할까 태형은 급하게 타자를 쳤다.
[쌔ㅁ.저 ㅈㅣ금 내러거요,!]
그 시각 지민은 핸드폰의 시간을 보곤 답이 없는 태형에 돌아갈까 싶어 문자를 남기려던 참이었다. 누가 봐도 급하게 보낸 문자에 지민은 실실거리며 웃었다. 그 순간 태형이 흩날린 앞머리를 이리저리 만지며 지민을 불렀다.
“쌤!”
“저녁 먹었어?”
초저녁의 시간대였지만 아직 여름이 채 가시지 않은 탓에 꽤나 밝았다. 지민은 정말 무계획으로 태형을 찾아왔기에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밥은 먹었냐고 물었다. 태형은 점심 먹고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사실은 출출한 탓에 학원에 구비된 젤리를 집어먹었다. 그 탓인지, 배도 고프지 않았고.) 그런 태형에 지민은 웃으며 먹고 싶은 것이 있냐. 물었다.
“전 아무거나 좋아요.”
“그 대답이 제일 어려운 건 알지?”
지민이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말했다. 태형은 그런 지민을 보며 그저 실실 웃을 뿐이었다. 태형은 근처의 분식집을 가자며 지민을 이끌었다. 지민은 더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었지만, 시간상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태형을 따라갔다.
“맛있어?”
“쌤이 사주셔서 더 맛있어여.”
태형이 입에 떡을 잔뜩 넣곤 오물거리며 답했다. 지민은 태형이 먹는 것을 보곤 깨작댈 뿐이었다.
“우리 되게 적응된 것 같지?”
“뭐가요?”
태형이 음식물을 꿀꺽 삼키며 답했다. 동그랗게 커진 눈이 그의 궁금함을 대변했다.
“우리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엄청 어색했잖아.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지민이 킥킥대며 말했다. 태형은 지민의 말에 동의했다. 물론 그 전에도 자연스러운 관계가 아니었음은 서로 알고 있었다. 근데 막상 입 밖으로 내뱉고, 바뀐 관계를 실감하니 괜스레 어색해진 건,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가 다시 편해졌으니 상관없지만 말이다.
“우리 새 학기에 막 친해진 친구 같았어요. 그죠?”
“친구라니까 되게 상상이 안 돼. 나이도 그렇고, 우리가 친구끼리 할 만한 걸 하는 건 아니잖아?”
지민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태형은 순간 귀 끝이 뜨거워져 대충 대답하곤 김밥을 급히 입에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급하게 분식을 먹은 태형 덕에 둘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태형도 지민도 아쉬웠지만 그저 묵묵히 학원으로 향했다.
“아이스크림 사드릴까요? 밥 얻어먹었잖아요,”
“그래. 날씨가 너무 덥다.”
태형은 학원 앞의 편의점에 다다르자 지민에게 물었다. 지민의 대답에, 태형은 부리나케 뛰어 들어가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왔다. 둘은 편의점 옆 골목에 기대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진짜 가을이 아닌 것 같아.”
“그죠? 너무 더워요.”
“근데 또 나무 보면 다 물들어있단 말이지.”
지민은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을 보며 말했다.
“나도 다시 입시하고 싶다.”
정적 속에서 지민이 입을 열었다. 태형은 지민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정말,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니까. 새벽에 일어나서 학원에 들러 연습하고, 학교를 마치면 다시 학원으로 가는 생활은 정말 힘드니까. 학교에서 연습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 힘들다는 거 알잖아요.”
“당연히 알지.”
“쌤. 저 엄청 좋아하시네요.”
“당연하지.”
태형은 새삼 지민이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 가 깨달았다. 입시를 다시 하고 싶은 정도라니. 상상도 못한 이야기에 태형은 잠시 멍을 때렸다.
“니 옆에서 수업도 같이 듣고. 떠들기도 하고. 입시 준비도 같이 하고. 정말 힘들 때는 서로 도와주고. 무엇보다도 같이 있을 시간이 많을 거 아냐.”
지민은 태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입에 물고 있으니, 지민의 입에서는 나무 맛이 맴돌았다.
“졸업하고 그만큼 더 같이 있으면 되죠.”
태형이 미소 지으며 지민에게 말했다. 태형의 낙천적인 모습에 지민은 절로 웃음이 났다. 지민은 태형의 말에 동의하곤 뽀뽀했다. 늦은 시간대는 아니었지만 한적했다. 그 후 지민은 태형에게 어서 학원으로 돌아가라며 재촉했다. 태형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질질 끌며 건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흔들던 태형을 뒤로 하고, 지민은 편의점으로 가 태형이 먹던 아이스크림을 샀다. 아이스크림에서는 진한 초코 맛이 났다. 지민이 아이스크림을 산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태형과 입맞춤을 했더니 달달한 맛이 나서. 그 뿐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가던 지민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의자에 앉자 왠지 모르게 얼굴이 홧홧했다. 자신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마치 태형과의 입맞춤을 다시 회상하려는 모양새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꼭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점에서 지민은 더욱 고개를 숙였다.
*감기*
어느 샌가부터 아침과 저녁이 쌀쌀해지기 시작한 덕분에 지민은 감기를 달고 살아야했다. 어김없이 코를 훌쩍이며 등교한 지민은 교무실에서도 겉옷을 벗지 못한 채 덜덜 떨었다. 병원에 갈 정도가 아니라며 계속 미룬 탓에 이러난 참사였다.
“쌤 감기 걸렸어요?”
조례를 하는 도중, 한 아이의 질문에 다들 웃으며 동의했다. 며칠 째 빌빌거리는 데 왜 병원을 안 가냐는 다른 학생의 말에 지민은 내일 가겠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서 제가 가라고 했잖아요. 그제부터.”
조례가 끝난 뒤, 반 아이들이 음악실로 향했을 때 태형이 말했다. 복도는 다른 반 아이들과 태형을 기다리는 학생들로 인해 시끄러웠다. 지민은 태형에게 뭐라 했냐며 되물었다. 사물함 앞에 있던 태형은 심통한 표정으로 지민에게 손짓했다. 태형의 가까이 간 지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할뿐이었다.
“제가 그제부터 가라고 했는데 왜 병원 안가냐구요.”
태형은 계속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민이 병원 가라는 말도 안 듣고, 간다고 대충 둘러대기 바쁜 탓이었다. 지민은 태형이 잔소리를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기분이 미묘했다. 덕분에 태형의 말은 흘려들었고. 문득 태형은 감기가 걸려선 안 된다는 생각에 지민은 입을 가린 뒤 어서가라며 재촉했다. 태형은 실눈으로 지민을 쳐다보았다. 태형은 뒷걸음질 치며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키곤 그 손가락으로 다시 지민을 찍었다.
‘감시할 거예요.’
태형이 입모양으로 말했다. 지민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와 진짜 죽어 이러다가...”
다음 날. 지민이 눈을 뜨자마자 곡소리를 내었다. 다행히 주말이었기에 출근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텁텁한 목에서 나오는 갈라진 목소리에 지민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지민은 어지러움 탓에 벽을 짚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와 거실에 앉자 더 어지러웠다. 지민은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최대한 생각했다. 병원을 가기엔 귀찮지만 집에는 약이 없었다.
잠을 자면 낫겠지 싶던 지민은 침대에 다시 누웠다. 누워서 눈을 끔벅거리자 어지러운 게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양쪽 코가 꽉 막힌 탓에 숨을 쉬기 힘들었다. 지민은 옆으로 돌아누웠다. 덕분에 한쪽 코는 조금씩 뚫리는 듯 했지만 콧물이 흐르는 탓에 잠에 들기 힘들었다. 코를 7번 정도 풀었을까. 코는 얼얼했지만 지민은 아까보다 좀 더 편하게 누워 잠에 들 수 있었다.
띵-동. 지민은 눈이 번쩍 떠졌다. 누군지 몰라 겉옷을 걸치곤 느릿느릿 나가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태형의 목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지민이 허둥지둥대며 급하게 문을 열자 그 앞엔 당연하게도 태형이 있었다.
“쌤 병원 안 갔죠?”
태형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지민이 대답하기도 전에 태형은 지민의 이마를 들춰 미리 뜯어 놓았던 쿨시트를 탁, 붙였다. 지민이 당황해하자 태형은 그마저도 예상했다는 듯 지민을 집 안으로 밀며 같이 들어갔다. 태형은 재빨리 지민을 침대 위로 눕힌 뒤 화장실로 가선 손을 씻었다.
“감기 걸릴 텐데 왜 왔어...”
지민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태형에게 말했다. 태형은 방금 막 약국에서 사온 마스크를 지민에게 씌워주며 답했다.
“저도 감기 걸리긴 싫어서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했잖아요. 쌤이 감기 걸린 채로 저랑 있으면 그것도 저한테는 안 좋잖아요?”
태형은 자신도 마스크를 쓰곤 자신이 사온 약들을 탁자 위에 주르르 쏟았다.
“열 있어요?”
“어.”
“코 막히죠?”
“응.”
“감기 걸리면 배도 같이 아플 수 있대서 복통약도 사왔는데, 배 아파요?”
“그건 아냐...”
태형이 증세를 묻자 지민은 갈라진 목소리를 답을 했다. 그 순간에도 흐르는 콧물에 지민은 뭉텅이로 뽑아뒀던 휴지 중 하나를 주워 코를 풀었다. 태형은 그런 지민의 침대 근처에 쓰레기통을 놔주었다.
“이거 먹고 약 먹어요.”
어디서 찾았는지 태형이 작은 상을 지민의 침대 위에 올려 둔 뒤 자신이 사온 죽을 꺼내었다. 지민은 죽을 보자마자 경악했다.
“버섯 죽..?”
“버섯 몸에 좋잖아요. 남길 생각 마세요.”
태형이 단호하게 말했다. 버섯이 몸에 좋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지민은 버섯이 싫었다. 하지만 태형의 호의를 생각해서 한술 뜨자,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야 코가 막혀서 맛이 안 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드는 거부감에 지민은 천천히 입에 넣었다. 태형은 생각보다 잘 먹는 지민을 보며 웃었다.
“맛없죠?”
“그냥, 맛이 안나.”
태형은 지민의 답에 킥킥대며 웃었다.
“니가 해준 요리도 먹어보고 싶다.”
“감기 낫는 대신 입 버리고 싶으셔요?”
태형은 놀란 표정으로 지민에게 말했다. 지민은 태형의 말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피식 웃었다. 맛이 얼마나 없으면 그렇게 말하나 싶어서.
태형은 지민이 열심히 죽을 퍼먹는 사이 물을 지민의 곁에 놓았다. 지민이 배부르다며 그만 먹자 태형은 상을 치우곤 지민에게 물을 건넸다. 물을 마시는 둥 안 마시는 둥 대충 마시던 지민은 설거지를 하려는 태형의 옆으로 이불을 질질 끌고 가 앉았다.
“설거지 할 필요 없는데...”
“죽 그릇이랑 플라스틱 쪼가리 몇 개뿐인 데요, 뭘.”
태형은 설거지를 금방 끝내고 체온계를 찾으러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38도가 넘는 열에 태형은 식겁해서 지민을 다시 침대 위에 올렸다.
“식후 30분 뒤에 약 먹어야 해요. 약 먹고 다시 30분 동안 누우면 안 되고.”
지민은 태형의 말에 침대 위에 앉아 멍 때렸다. 생각보다 병간호를 잘해주는 태형에 다시 보게 됐달 까. 태형이 분주하게 지민의 약을 챙기던 도중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들. 병간호는 잘하고 있어?”
“엉. 알려 준대로 했어.”
“여자 친구 생긴 줄은 몰랐네.”
“여자 친구 아니야.”
“어쨌든 병간호 잘하고 있나 전화해봤어.”
“나 잘하고 있으니까 끊어도 돼.”
태형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사실 어젯밤부터 태형은 어머니를 달달 볶아 병간호하는 법을 배웠다. 지민이 병원을 가지 않을 거라고 8할 정도 확신했으니까. 덕분에 오늘 지민을 잘 챙길 수 있었다. 태형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확신했다. 갑자기 공부하고, 피아노 연습하고. 더군다나 병간호까지. 태형은 여자 친구를 소개해달라며 집요하게 묻는 어머니께 지민을 데리고 갈까 고민했다.
“태형아. 나 이제 약 먹어도 돼?”
하지만 들려오는 지민의 목소리에 태형은 고민하던 것을 바로 잊었다.
“해열제만 물약이네...”
지민은 태형이 가져다 준 약을 보곤 인상을 썼다. 보기만 해도 써서 입 안에 침이 말랐다. 태형이 가져다준 물을 입에 머금은 뒤 알약을 입에 넣길 3번 반복했다.
“쌤은 물 먹고 약 먹네요. 전 약 먹고 물 먹는데.”
“쓰잖아.”
“알약도 하나씩 먹고.”
“목에 걸려. 여러 개씩 먹으면.”
태형은 지민이 툴툴대며 말하는 게 귀여워 킥킥대었다. 마지막으로 해열제까지 마신 지민은 벽에 기대어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먹어도 약의 쓴 맛은 적응되는 것이 아니었다. 태형은 그런 지민에게 초콜릿 하나를 건넸다. 지민은 초콜릿을 먹고 나서야 찌푸린 미간을 폈다.
약을 먹은 뒤 30분은 앉아있으라는 태형의 말에 지민은 하는 것 없이 앉아있었다. 태형은 그 옆에 앉아 지민이 심심해하지 않도록 했다.
“쌤 생일 언제에요?”
“10월 13일.”
“다음 달이네. 전 12월 30일이에요.”
“진짜 연말이다.”
태형은 지민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동시에 지민에게 무슨 생일 선물을 주어야 좋을지 고민했다. 조금 고민하던 태형은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생일 선물은 뭐가 좋아요?”
“음. 이번 교내대회에서 일등? 시험 잘 봐도 좋고.”
“아 재미없어. 시험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뭔가를 사주는 건 내년부터 해줘.”
지민은 킥킥 웃으며 답했다.
“넌 진짜 언제 어른 되니.”
“약 2개월 후요.”
태형이 심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형은 어린애 취급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지민에게 어서 누워 자라며 재촉했다. 지민에겐 그마저도 투정으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태형은 지민의 머리맡에 물을 한 컵 떠다놓곤 겉옷을 입었다.
“가게?”
“네. 내일 모레 봬요.”
태형이 마스크를 쓴 채로 지민의 이마에 입 맞추며 말했다. 지민은 그 모습에 크게 웃었다.
“너무 병균 취급 아니야?”
“감기가 옮는 건 안 좋은 거니까요. 감기 나으시면 입이든 어디든 많이 해드릴게요.”
태형은 지민이 웃으며 묻자 마스크를 살짝 내리곤 말했다. 태형은 지민의 쿨시트를 새 것으로 바꿔준 다음 지민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지민은 태형이 바라보고 있어 부담스러웠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잠에 들었다. 약 기운이 돌은 탓이었다. 지민은 지민의 목에 손등을 대어 간단히 열을 재었다. 확실히 아까보단 괜찮은 듯했다. 잠든 지민을 한참 바라보던 태형은 밖이 어둑어둑해져서야 집 밖으로 나섰다.
*친구에요. 친구*
“대회에서 뭐 부를 거야?”
지민과 태형이 버스정류장에 앉아 함께 버스를 기다렸다. 지민은 벌써 다음 주에 있을 축제가 생각나 태형에게 물었다. 대부분 자신이 연습하는 입시 곡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대 마지막에 할 합창 연습 같은 경우는 벌써 시작된 참이었다.
“베토벤의 ‘입맞춤’이요.”
“생각해보니까 내가 연습 도와주기로 했었는데. 기억나?”
지민은 지난번에 한 약속이 떠올라 말했다. 태형도 지민이 말하고 나서야 그 약속이 떠올랐는지 아, 하고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구교사는 공사 중, 연습실은 꽉 찼고, 음악실도 연습하는 애들이 모여 있었다. 태형도 바빴다. 오늘은 교수님을 만나 연습할 계획이며, 내일과 내일 모레도 학원에 찌들 예정이고. 주말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여태까지 반주는 누가 해줬어?”
“친구가 자진해서 도와준다고 하더라구요.”
“나랑 그 친구랑 치는 게 달라서 힘들진 않을까?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걸지도 몰라.”
지민은 망설이듯 작게 말했다. 하지만 태형은 괜찮다며 지민의 손을 잡았다. 물론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태형은 일요일에 자신의 학원으로 와도 된다고 했다. 물론 평소라면 일요일에도 이어질 연습에 다들 좀비처럼 등원하겠지만 이번 주는 달랐다. 원장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한 탓에 일요일에는 열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쌤들은 일요일에 나와서 연습하라며 다그쳤지만 그걸 들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미 태형과 태형 또래의 친구들은 나오지 않기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태형은 주말을 반납하면서 연습한다는 사실보다 지민과 연습한다는 것에 들떠있었다. 그렇게 둘은 일요일에 만나기로 약속한 뒤 서로 다른 버스에 올라탔다.
지민은 집에 도착한 뒤 책장을 이리저리 뒤져 ‘입맞춤’의 반주 악보를 찾아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큰일이었다. 물론 친 기억도 있고 칠 줄도 알지만 하도 오래된 탓에 잘 칠 자신이 없었다. 지민은 급히 연습하기 시작했다. 도와주기로 약속했으면서 자신이 더 못하는 경우는 말도 안 되니까.
♬
태형은 지민과 만나기로 30분이나 일찍 나와 학원 문을 열었다. 자신이 주로 쓰는 연습실이 말하기 힘들 정도로 더러웠으니까. 가사 종이나 악보는 피아노 위에 이리저리 놓여있었고, 저번에 먹은 젤리 비닐도 그 위를 장식했다. 쓰레기를 버리고 악보를 좀 정리하니 깨끗해 보이긴 했다. 태형은 청소기로 먼지를 치운 뒤 1층으로 내려가 지민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속시간이 되기 전임에도 지민이 걸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태형은 제자리에서 손을 열심히 흔들다가 지민을 맞이하러 뛰어갔다.
지민은 집에서 열심히 피아노 연습을 하다오던 길이었다. 똑같은 부분을 계속 틀리던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더 연습하다가는 늦겠다는 생각에 급히 집에서 나왔다. 지민은 학원에 들어서자 왠지 못된 짓을 하는 것 같은 기분에 불안했다.
“오늘 진짜 아무도 안 오지?”
“그럼요.”
태형이 장담하며 말했다. 지민이 피아노 앞에서 손을 푸는 동안(물론 집에서 다 풀고 왔지만.) 태형은 물을 들이켰다. 태형이 춥지 않도록 원장실에서 작은 난로를 가져오고 나서야 연습은 시작되었다. 지민은 성악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으니 그저 태형이 잘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순간 지민은 태형의 음정이 약간 틀린 것 같다는 생각에 연주를 멈추었다.
“너 틀렸는데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
“알아채셨어요?”
태형이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지민은 틀린 부분을 다시 연습하자며 다시 반주를 시작했고, 다시 노래 부르기 시작한 태형은 이번엔 틀리지 않고 넘어갔다. 태형이 계속 틀리지 않은 덕에 곡은 끝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은 지민이 반복해서 틀리는 부분이었다. 이번에는 틀리지 말자고 되새기며 연주를 이어갔지만 결국 또 틀렸다.
“이번엔 쌤이 틀리셨네요?”
“미안. 다음번엔 안 틀리게 할게.”
지민은 태형의 장난스런 물음에 시무룩하게 답했다. 태형은 그런 지민의 모습이 귀여워 킥킥대며 괜찮다고 말했다. 실수 안하는 건 사람도 아니라며. 지민은 태형의 능청스런 말에 웃음보가 터졌다. 그 뒤로 연습을 이어가는 도중 지민이 입을 열었다.
“너 점점 빨라지는 거 알지?”
“이게 잘 안 고쳐져요.”
“근데 또 듣긴 좋다? 틀렸는데도 노랠 잘 불러서 그런지 별로 신경이 안 쓰여.”
지민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태형은 지민의 칭찬에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전 선생님 피아노 치는 게 더 좋아요.”
태형이 지민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애초에 태형은 지민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곤 관심을 가졌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어느 날은 친구에게 지민이 피아노 치는 걸 보면 두근거리지 않느냐고 물었다가 이상한 취급을 받은 적도 있으니 말이다.
태형의 말을 들은 지민은 과거의 자신을 때리고 싶어졌다. 진도도 느리게 나가자니 뭐니 했는데, 방금 태형의 말을 들으니 뭐든 하고 싶어졌다. 지민은 태형의 한쪽 손에 깍지를 끼곤 물었다.
“키스하자.”
“갑자기요? 아니, 애초에 뭐든 느릿느릿하게 하자고 했잖아요?”
“그래서 싫어?”
태형은 고민했다. 아니,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태형은 순간 고민하던 자신에게 의문을 가졌다. 당연히 좋은데 왜 고민을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든 태형은 깍지를 끼지 않은 손으로 지민의 뒷머리를 감싸곤 입술을 맞댔다. 뽀뽀와 키스는 혀의 유무로 갈린 다는 걸 태형은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런 태형을 본 지민은 속으로 킥킥대다가 태형의 입술을 핥았다. 태형의 입이 살짝 열리자 지민은 그 틈으로 혀를 넣었다. 태형은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눈을 꽉 감았다. 하지만 그런 모습과는 다르게 지민을 열심히 밀어붙였다. 지민이 계속 뒤로 젖혀지는 탓에 떨어지려는 찰나 태형이 벌떡 일어나 연습실에서 뛰어나갔다.
태형이 뛰어나간 이유는 도어락 소리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고 나가자 역시나, 학원선생님이 들어왔다. 다른 아이들은 오지 않았냐며 묻는 선생님에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태형은 꽤나 초조했다. 물론 밖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한 지민도.
다행히 선생님은 잠시 화장실을 간다며 밖으로 나갔다. 지민은 학원 문이 닫히는 소리에 부리나케 겉옷을 입고 소지품을 챙겨 연습실에서 나왔다.
“아 맞다, 태형아. 애들한테 오라고 문자 넣어..?”
화장실을 간다던 선생님은 다시 들어왔고 태형이든 지민이든 그 선생님이든 그 자리에서 모두 얼어붙었다. 태형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선생님은 지민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태형이 친구에요! 친구. (친구라고 강조할 때 태형과 눈이 마주친 지민은 웃음보가 터질 뻔했다.) 오늘 반주 쳐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잠깐 왔어요. 멋대로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지민이 고개 숙여 사과하자 태형도 분위기를 파악하곤 같이 고개 숙였다. 선생님은 지민의 말을 믿곤 괜찮다며 다음번에 또 와서 같이 연습해도 된다며 웃었다. 선생님이 화장실에 가고, 지민과 태형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둘은 1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크게 웃었다. 지민은 배를 잡고 웃었고, 태형은 몸을 가누지 못해 계단의 난관이 기대어 웃었다.
“와 쌤이 동안이긴 한가 봐요. 믿으셨어. 그나저나 거짓말에 능숙하시네요.”
“칭찬 고맙다.”
“와. 눈 마주쳤을 때는 진짜 웃겨서 부들부들 떨렸어요.”
“나 웃음 참으려고 고개 숙인 거잖아.”
태형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고 지민은 아직도 멈추지 않은 웃음에 배를 잡곤 답했다. 둘은 조금 웃음이 멈췄다 싶었더니 다시 눈이 마주치자 크게 웃었다. 그리고 혹시 위층에 들릴까 걱정되어 건물 밖에서 웃어댔다.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둘의 웃음은 멈췄지만 아까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와 학원 쌤 들어오는 타이밍 기가 막히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근데 오늘 아무도 안 온다 매.”
태형은 민망하게 웃으며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겉옷도 입지 않고 나온 태형은 추운지 팔을 쓸어댔다. 지민은 그런 태형을 뒤에서 안고 뒤뚱뒤뚱 걸어갔다. 태형은 이 모양새마저도 웃겼는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버스 곧 있음 오네. 너도 빨리 돌아가.”
“버스 타는 것만 보고요.”
버스정류장엔 지민과 태형 외에도 사람들이 많았지만 둘은 서로 속삭이며 킥킥대었다.
“연습 열심히 하고 내일 보자.”
“내일 월요일인 거 진짜 짜증나는데 쌤 보러 학교에 나가긴 해야겠네요.”
버스가 도착하고, 지민이 줄에 서며 인사하자 태형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물론 지민 또한 내일이 월요일인 게 굉장히 원망스러웠지만, 태형을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