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홍조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검객이 되겠다며 죽도를 들고 수련 다녔던 시기만 빼면 얼굴도 늘 하얀 편이었기에, 흰 얼굴 위 유난히 잘 보이는 붉은 홍조는 내 트레이드 마크였다. 홍조 하면 박지민, 박지민 하면 홍조였으니 말 다 했지.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내 얼굴에 홍조가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을 딱히 가지고 있지 않았다. 조금 불그스름하긴 하지만 얼굴에 핏줄이 보일 정도로 심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얼굴에 있는 붉은 기운이 자칫 창백하게 보일 수 있는 얼굴을 건강해 보이게 하기까지 했으니, 나는 오히려 발그레한 양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이건 지난 16년 동안의 이야기일 뿐이다. 김태형을 만나고 2년. 나는 내 양볼이 끔찍하게도 싫어졌다.
딸기초코초코
오렌지
태형이는 고등학교 1학년, 내 첫 짝꿍이었다.
새 학기가 되면 보통 번호 순서대로 앉는 다른 반들과 다르게 1학년 때 담임은 첫 조회시간에 프로그램을 돌려 프로그램의 결과대로 학생들을 앉게 했다. 3번 김태형과 13번 박지민이 첫 짝꿍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나는 조금 이른 등교 때문에 교실의 가장 앞자리에 앉아있었고, 김태형은 가장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짝꿍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명찰을 보던 열일곱의 박지민이 김태형을 바로 찾지 못한 이유는 이것에 있었다. 그리고 정해진 자리는 오후부터 앉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전 시간 동안 나는 김태형의 머릿카락 한올조차 볼 수 없었다. 태형이의 얼굴을 본건 조회시간 다음으로 이뤄진 입학식이 끝난 후였다.
김태형의 첫인상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무서웠다. 태닝을 한 것처럼 어두운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 피어싱으로 이리저리 뚫려있는 귓불, 그리고 넥타이 없이 풀려있는 와이셔츠를 몸에 걸치고 있던 김태형은 온몸으로 '나는 날라리에요.'를 외치고 있었다. 오죽하면 김태형과 처음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눈을 바닥으로 숙였겠는가. 물론 지금은 태형이가 날라리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첫 만남 바로 그 순간은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마저도 김태형이 입을 열면서 곧 깨지게 되었다.
"어, 짝지? 그니까 그 이름이 지민이! 그래 지민이! 지민아 인제, 내가 대구에서 전학을 와가지구 친구가 없는데... 잘 부탁해."
내가 옆에 앉기까지의 모든 행동들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김태형은 이내 곧 사투리가 섞인 억양으로 ^ㅁ^(정말 이렇게 웃었다) 이모티콘처럼 웃어 보이며 자신의 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김태형은 첫인상과 말투의 갭 차이에 병 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내 손을 멋대로 붙잡고 힘차게 악수를 했다. 그랬다. 김태형은 그냥 얼굴만 무섭게 생긴 바보였다. 추가하자면 사람 속 긁기의 일인자, 착한 놈, 그리고 더럽게 잘생긴 놈 정도였다. 날카롭다고 생각했던 눈매는 사실 웃으면 반달이 되는 예쁜 눈이었고, 피어싱은 김태형의 작은누나 손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넥타이가 없었던 것은 김태형 바보가 아침에 깜빡했기 때문이었고 입학식 다음날부터는 꼬박꼬박 차고 다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리저리 풀려있던 와이셔츠는 더위를 많이 타는 녀석이 아마 갑갑함을 참지 못하고 풀어헤쳤을 것이 분명했다. 한마디로 김태형은 날라리의 'ㄴ'자하고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첫 만남부터 미주알고주알 자신의 생애에 대해 설명하던 김태형은 대뜸 내 휴대폰을 가지고 가 자신의 번호를 저장했다. 그리고는 내 붉은 얼굴을 향해 친히 '딸기'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불과 만난 지 10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녀석의 극한 친화력에 한 친화력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얼굴은 순해도 한 성깔 한다는 내가 김태형의 이런 모든 행동들_특히 홍조인을 딸기라고 부르는 그런 행동_을 넘기며 김태형의 친구 클럽에 순순히 가입한 이유는 김태형이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지독한 얼빠인 나는 미남의 장난과 농담,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문제가 되었다.
태형이는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었다. 태형이의 말을 듣고 있으면 누구나 태형이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마성의 능력을 자랑했다. (물론 거기에 김태형의 얼굴이 한몫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김태형의 말을 웃으며 받아들이던 나 또한 김태형의 매력에 빠져, 이제는 김태형을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박지민이 김태형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나는 사랑은 특별한 순간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랑은 당사자도 모르게 찾아오는 감정이었고 흔히들 사랑에 빠지는 계기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은 그냥 사랑의 감정을 깨닫게 되는 것일 뿐이었다. 나의 사랑 자각의 계기는 그냥 그랬다. 인기 많은 김태형이 또 고백을 받았고 그걸 내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었던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고, 고백한 이름도 모를 여자애가 미웠으며, 김태형이 혹시나 긍정의 반응을 할까 봐 초조해했던 것.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보니 그냥 '아, 내가 김태형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저절로 깨닫게 되었다.
감정을 깨닫게 되었다고 해서 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거 없었다. 자각 시기는 시린 겨울이었는데, 곧 있으면 1학년도 끝이 나는 시기였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학년이 올라가며 반이 갈라지게 될게 분명하니 자연스럽게 마음 정리가 될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시기에 다시 김태형 곁의 딸기 박지민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믿었다. 멍청한 건지, 순진한 건지. 17살의 첫사랑을 겪는 박지민은 그랬다.
간단히 정리되던 머릿속과는 다르게 마음은 쉽사리 정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을 닮아 드센 심장 놈은 간단히 생각해 버리는 머리가 얄미웠는지 상사병이라는 이상한 병을 내 몸속으로 불러들였다. 지독한 짝사랑의 열병에 나는 방학 내내 앓아누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겨울방학 보충도 빠지게 되어 김태형의 얼굴을 한동안 보지 않아도 됐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내가 아픈 이유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참 괴롭고 힘들었다. 그래도 병상을 털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다 끝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열이 내리면 저절로 마음도 식지 않을까라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것이 모두 내 뜻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참 웃기게도 2학년 때도 나와 김태형은 같은 반이 되었다. 그리고 열과 함께 식어버린 줄 알았던 심장은 김태형을 보자 다시 힘차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10대 소년의 첫사랑을 내가 너무 쉽게 보았다.
"짐나! 우리 또 같은 반이야. 너무 좋다. 그치?"
반 배정이 나오던 날,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방긋방긋 웃는 김태형 덕분에 나는 조금 곤욕을 치렀다. 가끔 김태형은 자기가 너무 잘생겼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자신의 웃음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치명타를 입히는 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다행히 홍조 덕분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티가 나지 않았지만 거세게 뛰는 심장소리는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들릴 것 같았기에 나는 태형이의 얼굴을 밀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내 손에 밀어진 고개에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생글거리는 김태형의 모습에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응,좋네."
날뛰는 심장 덕분에 정신이 반쯤 없었던 나는 무의식중에 '좋다'라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물론 문맥상 같은 반이 된것이 좋다는 의미로 들렸겠지만 속뜻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너무 짧은 말에 혹시나 김태형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같은 반 된 거 좋다고!"라고 바로 다시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곁눈질로 김태형의 반응을 살피는데, 태형이는 딱히 내말에 신경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김태형은 나와 같은 반이 된 게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헤헤 거리며 웃느라 좋다는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날을 계기로 나는 태형이 앞에서 3번 생각하고 말하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다. 무의식에 흘러나온 말이 혹여나 고백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2학년 담임은 자리를 번호 순서대로 앉혔다. 덕분에 태형이와 나는 멀리 떨어져 앉게 되었다. 그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친화력 좋은 김태형은 또 금세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들과 웃으며 잘 지낼 것이 분명했다. 태형이가 다른 사람과 웃으며 잘 지내는 모습을 상상하니 속이 쓰리기도 했다. 이제 박지민이 미쳐서 반 친구한테까지 질투하다니... 자괴감과 부끄러움 때문에 이불킥도 수차례 했다. 그러지 말아야지, 속으로 수십 번을 다짐해도 태형이가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모습을 목격하게 될 때면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찌질함의 극치였다.
"딸기야! 매점 가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김태형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였다. 이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랬다. 지금처럼 아까 영수가 매점 가자고 할 때 거절하던 김태형은 다음 쉬는 시간에 굳이 나를 찾아와서 물어보는 자상함을 보였다. 사람 설레게 말이다. 태형이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웃겼지만 뭐, 짝사랑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나 숙제 덜 했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숙제는 조금 이따 해도 괜찮았지만, 사소한 것을 거절하면서 태형이랑 가까이 있는 시간을 줄여 심장을 진정시키려는 박지민의 최선의 노력이라고 해두자.
"그럼 형아가 니꺼까지 사 올게. 엉아 믿지?"
하마터면 응-,이라고 대답할 뻔했다. 안되지, 안 돼. 이럴 때 평소 친구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침착하게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긴 보고 있는 눈이 너무 많고, 또 은근 눈치가 빠른 김태형이 이상한 대답을 한다면 내 마음을 눈치챌지도 몰랐다. 숙제하는 척 김태형의 말을 곱씹던 내가 마침내 적당한 말을 찾아 대답을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태형이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고얀 딸기 놈. 형님 말씀하시는데 듣지도 않고. 오빠 믿냐고, 지민아."
태형이의 얼굴이 얼마나 가까이 들이밀어졌냐면 잘빠진 김태형의 콧대와 내 콧볼이 맞닿을 정도였다. 멀리서 보면 꽤 이상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 분명했다. 깜짝 놀란 내가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옆에서 불쑥 나타난 손이 김태형의 얼굴을 옆으로 밀었다.
"오빠는 무슨 오빠. 매점 가자면서여."
갑작스럽게 등장한 손의 주인공은 정국이었다. 정국이는 1학년으로 이번에 태형이가 새로 개설한 '게임 창작부'의 부원이었다. 태형이의 권유(라 쓰고 얼굴 공격이라 읽는다)로 나도 강제 가입된 그 동아리는 김태형의 사촌 형인 석진 형까지 더해 총 4명의 부원이 전부인 조촐한 동아리였다. 정국이는 태형이와 하는 게임이 같다더니 어느 순간 김태형의 절친 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다.
"지민이 형, 하이."
예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정국이를 향해 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와의 간단한 인사를 끝낸 정국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박수를 두어 번 치더니 김태형을 이끌고 반을 나갔다. 순식간에 정리된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 멍하니 있자 옆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짝꿍이 내 어깨를 흔들었다.
"박지민. 정신 차려."
어, 어. 허둥거리며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교과서 속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아까 가까이 다가왔던 김태형의 얼굴이 반복되었다. 순간 마주쳤던 김태형의 깊은 눈동자가 눈앞에서 계속 아른거렸다. 속눈썹도 뭐 그리 긴지 짧은 순간 얼굴을 간지럽혔던 것 같기도 하다. 태형이 입술 위치는 어땠더라. 내가 조금만 더 앞으로 고개를 들었다면 내 입술과 부딪히지 않았을... 뭐!!!
"아씨, 깜짝이야."
계속되는 망상에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옆에서 휴대폰을 하고 있던 짝꿍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미안."
짝꿍을 향해 대충 사과를 한 뒤 급하게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화장실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다행히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붉다 못해 터지기 직전이었다. 맞닿았던 코가 화끈거렸고 김태형의 코가 닿은 자리는 그대로 자국이 난 것 같았다. 미쳤어, 박지민. 키... 키... 뭐? 손을 들어 양 볼을 내리치며 고개를 흔드는데도 마음이 진정이 안됐다. 이럴 땐 냉수마찰이 약이다. 나는 세면대의 물을 틀어 무식하게 세수하기 시작했다. 옷과 머리가 젖어들어가는 것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한참을 찬물로 세수를 한 뒤 고개를 들자 그 앞에는 웬 물에 빠진 생쥐가 한 마리 서있었다. 그래도 아까 홍당무보다는 나은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이 꼴로 교실로 돌아가는 것은 '나 김태형 좋아해요'라고 광고하는 꼴인 것 같아서 만만한 보건실로 도망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다음 시간은 들어도 그만 안 들어가도 그만인 수업이었기에 짝꿍에게 내가 보건실에 갔다는 것 좀 선생님께 대신 말 해달라는 문자를 보내고 화장실 문을 열려는 데, 바로 앞에서 태형이와 정국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하필 화장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거야. 반투명한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나는 본의 아니게 둘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놀랍게도 둘 대화는 '박지민'이 주제였다.
"형은 왜 지민이 형을 딸기라고 불러여?"
"지민이 볼이 발그레한 게 꼭 딸기같이 귀엽잖아."
정국이의 질문에 태형이는 0.1초의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딸기'라는 별명은 홍조인들에게 꽤 자주 붙는 별명이라서 나는 태형이가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저 처음에는 잘생긴 놈이 무례하네?라고 생각했었고 친해지고 난 이후로는 딸기라는 별명이 재밌게 다가왔으며 김태형이 좋아지고 난 이후에는 특별한 애칭인 것 같아서, 태형이 입에서 딸기가 나올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나를 딸기라고 부르는 이유가 귀여워서라니. 애써 가라앉힌 얼굴에 다시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친구 사이에 낯간지럽게 시리. 연인 사이의 애칭도 아니고 뭐예요."
정국이가 장난스럽게 툭 던진 말에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지만 설마...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태형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 반으로 들어갔나 싶었지만 유리문에 희미하게 비치는 두 그림자가 아직 두 사람이 문 앞에 서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태형이의 침묵이 길어지자 입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아직 3월의 쌀쌀한 공기도 이상하게 후덥지근하게 느껴졌다.
"그냥 친하니까 별명으로 부르는 거지... 사내새끼들끼리 애칭이 뭐꼬. 이상하게 시리. 어디 가서 그딴 말 하고 다니지 마라."
태형이의 느릿하지만 묵직한 말은 내 혹시나 하는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장난기 하나 없는 진지한 말투가 태형이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정국이가 무슨 말을 더 한 것 같았지만 이미 그건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후덥지근 하게 느껴졌던 공기는 다시 3월의 차가운 공기로 돌아와 있었고,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적신 물들이 냉기를 불러일으켜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등신같이 무슨 기대를 한 건지... 김태형은 날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상처받을 것도 없지만 혼자 또 상처받았다. 눈에서 눈물이 끝없이 떨어지는 걸 보면 꽤 많이, 상처받았나 보다.
보건실까지 무슨 정신으로 갔는지 모르겠다. 비틀거리며 보건실로 들어서자 보건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내게 수건을 건넸고, 멍한 나를 침대로 데리고 갔으며, 잔잔히 틀어져 있던 클래식의 볼륨을 높여주었다. 작년 겨울 처음 짝사랑을 자각하고 상사병에 힘들어했을 때 종종 보건실을 찾아온 덕분에 보건 선생님의 이 모든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쾅쾅 울리는 트럼펫 소리가 주위의 모든 소리들을 차단해 주는 것 같은 편안함을 제공했다. 나는 그 편안함 속에서 한참을 더 울었다.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에 정신이 돌아왔다. 울다 지쳐서 잠들었던 것이 분명했다. 어느새 클래식의 볼륨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줄어들어 있었고 축축했던 앞머리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너무 운 탓에 작은 현기증이 일어나 몸을 일으켰지만 쉽사리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고 있는데 별안간 침대를 가리고 있던 커튼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종종 이렇게 꾀병 아닌 꾀병으로 보건실을 찾아와 잠이 들 때면 내가 깨어나는 타이밍을 귀신같이 알고 보건실에서 쫓아내는 신속함을 보이는 선생님이었기에, 나는 당연히 커튼을 연 주인공은 보건 선생님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하지만 놀랍게도 커튼을 연 주인공은 김태형이었다. 예상치 못한 목소리, 그것도 지금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주인공의 등장에 현기증도 잊어버린 채 고개가 급하게 들어졌다. 갑자기 마주하게 된 내 얼굴에 놀란듯한 김태형의 두 눈이 눈물로 퉁퉁 부은 내 두 눈과 마주쳤다.
"너, 왜, 여기."
얼마나 놀랐는지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잠을 잤는지 갈라진 목소리가 듣기 흉하게 느껴졌다. 김태형도 내 목소리가 별로라고 느껴졌는지 인상을 찌푸리더니, 물을 건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태형이가 건넨 물을 마시고 있었지만 여전히 얼떨떨했다. 시원한 물과 함께 차츰차츰 정신이 돌아 오고 나서야 그제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태형은 가방을 메고 있었으며 태형이의 손에는 내 가방이 들려져 있었다. 뭐야. 지금 학교 끝난 거야?
"지금 몇 시, 아니 나 얼마나 잔 거야?"
"4시 40분. 수업 끝나자마자 담임한테 말하고 니꺼까지 챙겨왔어."
4시 40분이면 모든 수업이 끝난 시간이다. 한 교시만 빠진다는 것이 너무 깊게 잠들어 버렸나 보다. 아, 새 학기부터 박지민 이미지 망했어. 급 몰려오는 두통에 이마를 짚으며 휘청거리자 태형이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감쌌다. 얇은 옷 위로 느껴지는 크고 단단한 손의 느낌에 흠칫 몸이 떨렸다. 녀석은 내가 몸이 떨린 게 오한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심각한 표정을 하며 큰 손으로 자신의 이마와 나의 이마를 번갈아가면서 열을 쟀다.
"열은 없는데... 우리 딸기 많이 안 좋아?"
다정한 김태형의 행동에 또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딸기 소리에 아까의 상황이 떠올랐다. 지독히 차갑고 단호하던 김태형의 말투. 울컥 감정이 다시 올라오려는 것을 입술을 깨물며 애써 가라앉혔다. 침착하게 말해야 한다. 김태형은 내가 그 말을 들었는지도 모르니까. 감정에 휩싸여 말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언성을 높이는 대신 김태형의 두 팔을 내 어깨에서 떨어뜨리며 아까의 태형이처럼 차분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를 더 이상 기대하지 만들지 말라고.
"너, 나 딸기라고 부르지 마."
갑작스러운 딸기 금지령에 김태형은 당황한 듯 보였다. 떨궈진 손을 다시 본인에게도 가져가지 못하고 굳어버릴 걸 보면 꽤 많이 놀란 듯 보였다. 김태형이 이유라도 물어본다면 아까 본인이 정국이한테 했던 말을 해줄 요량이었다. '친구끼리 이상하잖아.'라고 말이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 둘 사이의 특별함을, 적어도 나는 있다고 생각했던 특별함을 이제는 그만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사이의 진전은 앞으로 쭉 없을 것이다. 우리는 친구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슬프게도 그게 현실이었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서있던 김태형은 이내 싫다고 대답했다. 단호한 말투였다. 내 말을 거절하는 태형이의 눈빛에서 언뜻 첫인상 때 보였던 날카로움이 느껴진 것 같았다. 나는 태형이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유도 묻지 않고 무작정 거절할 줄은 몰랐기에 당황했다. 굳은 태형이에게 무작정 핑계 아닌 핑계를 이유로 제시할 수는 없었기에 말문이 막혔다. 숨 막히는 침묵에 잔잔히 배경음으로 깔리던 클래식이 도드라지게 들렸다.
"지민아, 너도 나 초코라고 불러."
태형이 쪽에서 영원할 것 같았던 침묵을 먼저 깨트렸다. 느닷없는 초코 타령으로 말이다.
"아니다. 초코초코, 2배로 늘려서 불러. 그게 공평하네. 그니까 인제, 내 콤플렉스가 피부가 까만 거니까 너도 나 그렇게 불러. 그럼 되잖아."
김태형은 내가 딸기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는 것의 이유를 콤플렉스에서 찾고 있었다. 콤플렉스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김태형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이유였지만, 안타깝게도 정답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김태형의 단순한 생각은 나를 더 화나게 만들 뿐이었다. 초코초코 같은 소리 하네.
"김태형."
"박지민."
더 이상의 짜증과 분노 그리고 씁쓸함을 참을 수 없었던 내가 참지 못하고 김태형의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멀리서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건 선생님이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있는 곳을 자각하게 되었다. 여긴 학교였다. 그것도 보건실이었다. 뜨겁게 열이 올랐던 머리에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김태형의 손에 들려있던 가방을 낚아채듯이 집어 든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의 행동을 모두 지켜보는 태형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비슷해진 눈높이에서 바라본 태형이의 눈동자는 어딘가 상처받은 것 같아서 입이 썼다. 왜 니가 그런 표정을 지어? 질문이 턱 끝까지 올라왔지만 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삼켜내렸다. 입안에서는 피맛이 돌았다.
"하지 마. 난 말했어."
더 이상 태형이를 마주 보고 있을 자신이 없어진 나는 태형이를 지나쳐 황급히 보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혹시나 김태형이 쫓아올까 앞으로 계속해서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서 괴로울 때까지 그냥 달렸다. 학교에서 꽤 멀어졌다고 생각되자 그제야 발이 서서히 멈췄다. 그리고는 울었다. 모르겠다. 괜히 서러워진 마음에 눈물이 나왔다.
그날은 유난히 추웠던 3월이었다.
***
그게 벌써 2주 전 일이었다.
호된 추위 속에서 한참을 펑펑 울었던 나는 지독한 감기에 걸리게 되었고, 주말 내내 앓아 누었다. 그리고 그동안 김태형에게선 그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다. 병상을 털고 일어나 겨우 학교에 갔을 때도 김태형은 멀리서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내게 다가오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나도 부러 김태형을 찾아가지 않았다. 가끔 순간순간 김태형의 변한 태도에 서러움이 느껴질 때에는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마스크를 지켜올리고 엎드려 잠자는 척을 하며 몰래 눈물을 훔쳤다.
갑자기 변한 우리 둘의 사이에 당황한 건 그 누구도 아닌 전정국이었다. 1학년 주제에 우리 교실을 밥 먹듯이 들락거리던 정국이는 이제 우리 둘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나는 알고 싶지 않은 김태형의 감정을 다시 일깨워준 정국이가 괜히 미웠다. 전정국과 나이를 뛰어넘은 베스트 프렌드라며 좋아하던 김태형의 정국이를 향한 무시는 나조차도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요즘 매점도 잘 안 가고, 학교에서 말도 잘 안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2주동안 급식실에서 김태형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하, 김태형은 지금 온몸으로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일부러 걱정할 짓만 쏙쏙 골라서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지게 되어 있다는 말은 맞는 말이었다. 김태형에 대한 걱정으로 내가 결국 2주 만에 백기를 들게 되었으니 말이다.
[기ㄷㅏㄹ!!!] 1
종례가 끝나면 말을 붙여보려던 내 계획이 무색하게 김태형은 종례가 끝남과 동시에 재빠르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도 황급히 김태형의 뒤를 쫓았지만 이미 태형이는 계단 밑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김태형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1은 사라지지 않았다. 휴대폰을 보고 있던 모습을 분명히 목격하였기에, 김태형이 내 톡을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김태형은 팝업창으로 뜬 내 톡 내용을 읽고 무시해버린 게 분명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말도 안 걸고, 다가오지도 않고, 이젠 카톡을 읽지도 않는 건지... 내가 먼저 사과하려고 했는데... 힘이 빠졌다. 그리고 서러웠다. 고개는 저절로 바닥을 행해 숙여졌다. 누군가 나를 손가락으로 살짝만 찔러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빠져나가고 복도가 한산해 질 때 쯤이 되서야 나는 겨우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개는 들 수 없었다. 열심히 참은 덕분에 눈물이 얼굴로 흐르지는 않았지만 눈망울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기에 적어도 학교에서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비틀거리는 몸이 감당이 되지 않아 난간을 잡으며 천천히 내려가고 있는데 계단의 끝에서 익숙한 신발이 보였다. 남고생이 신기에는 조금 많이 튀는 핑크색 운동화. 그 운동화를 따라 고개를 드니 김태형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집에 가자, 짐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담담히 뻗어진 김태형의 손은 꼭 첫 만남을 연상시켰다. 나는 어쩌면 김태형에게 첫눈에 반한 걸지도 모른다. 김태형의 거침없는 행동에도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지 않았던 건, 그런 태형이의 모습조차도 좋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두근거리는 내 심장을 애써 모른척하며 친구로서 태형이와의 관계를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 나에게 태형이는 단 한순간도 사랑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구나. 너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친구였던 적이 없구나.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눈물이 밑으로 떨어졌다.
"좋아해."
눈물이 떨어지는데 입꼬리는 올라갔다. 이제 더 이상 김태형과 친구로 지낼 수 없겠지만, 지난 2주 동안의 김태형의 냉대가 앞으로 계속 이어지겠지만, 그럼에도 속은 이상하게 편안했다. 우린 처음부터 친구가 아니었더라, 태형아. 나한텐 네가 처음부터 친구가 아니었어. 뒷말까지 차마 내뱉진 못했다. 혹시나 김태형이 나와의 모든 순간을 혐오스러워하게 될까 봐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미쳐 잡지 못한 태형이의 손이 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충격이 많이 큰가. 태형이의 얼굴은 보지 못했기에 정확한 태형이의 감정을 알 수 없었다. 싸늘하게 식은 두 눈을 마주하게 되면 금방이라도 심장이 무너질 것 같아서 차마 고개를 들 수는 없었다. 떨리는 태형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다행히 태형이는 내 손을 내치지 않았다. 계단 끝에서 나를 얼마나 기다린 건지 손끝은 얼음장 같았다.
"태형아."
거절해도 괜찮다고. 아니 거절해달라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나를 너무 혐오스럽게 생각하지 말아달라고도 부탁하려 했다. 그러려고 했는데. 태형이가 내 손을 잡아당기며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내가 벗어나지 못하게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순식간에 태형이 품에 안기게 되었다.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 태형이를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해, 지민아."
그리고 귓가에 낮은 고백이 울렸다. 현실감 없는 상황에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온몸에 느껴지는 단단한 태형이의 몸과 코끝을 간지럽히는 태형이의 시원한 향기가 지금의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가까이에서 들리는 내 것이 아닌 심장소리가 방금의 고백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갑작스러운 태형이의 고백에 놀라 잠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태형이의 따뜻한 품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태형이의 품에서 벗어나 바라본 김태형의 얼굴 또한 눈물로 젖어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나왔다. 행복했기 때문이었는지, 서로의 얼굴이 웃겼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웃음이 나왔다. 너무 크게 웃는 바람에 보충을 하던 선생님께 걸려 혼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심장이 간지러워서 웃음이 멈추지 않는 걸 어쩌란 말인가.
쌀쌀하게만 느껴졌던 봄 날씨가 어느새 적당히 선선한 온도로 바뀌었다. 하지만 우리는 날씨가 춥다는 핑계를 대며 손을 마주 잡았다. 깍지가 끼고 싶다는 김태형 때문에 깍지까지 껴진 채였다. 아직 짧은 초봄의 태양은 벌써 땅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하며 세상을 온통 붉게 만들고 있었다. 하늘에 펼쳐진 노을까지 꿈같이 아름다워서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도 꿈이 아닐까 두려워졌다.
"나 고백 다시 해도 돼?"
그리고 귀신같이 내 두려움을 읽어낸 김태형은 타이밍 좋게 다시 현실을 자각시켜주었다. 그런데 고백을 다시 한다니.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태형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한테 고백하면 하고 싶었던 멘트가 있는데 못했어. 다시 하고 싶어."
귀여워. 내 눈치를 보며 고백을 다시 하고 싶다는 태형이는 대형견 같은 느낌이었다. 머리를 쓰다듬게 해주면 생각해 보겠다는 내 말에 재빨리 내 손을 자신의 머리 위로 가져가는 태형이의 모습은 사랑스러움의 극치였다. 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온 세상을 밝힐 것 같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 태형이가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뒤,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영화라면 아마 태형이의 손 위에는 반지 케이스가 있지 않았을까. 거창한 준비에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진지한 태형이의 얼굴을 보며 애써 웃음을 참았다.
"지민아. 나만의 특별한 딸기가 되어줘."
태형이의 입에서 오랜만에 들린 딸기라는 소리가 반가워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웃지 말라는 태형이의 째림에 힘겹게 입꼬리를 내린 나는 내밀어진 태형이의 손을 마주 잡았다.
" 당연하지, 내 초코야."
완벽한 첫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