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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

헤드비스

   나, 김태형. 드디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다. 어찌 어찌하다보니 박지민과 같은 대학을 오게 되었다. 우리 둘 다 입시할 때는 정말 앞만 보고 달렸으니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졸업식 날 나는 눈물이 났다. 그동안 입시를 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내 옆에 앉아있는 박지민을 보니 더 눈물이 났다. 박지민은 정말 입시하는 데 저러다 사람이 죽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공부를 했다.

   그 안쓰러움과 함께 졸업이라는 감정이 흘러들어오면서 눈물이 자연스레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내 감정 그대로 쏟아내고 있었지만 박지민은 로봇인 것처럼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박지민도 나름 감격하고 있을 거라는 것을 그의 목울대를 보고 알았다. 자식, 눈물이 나면 그냥 울지, 왜 참는 건지.

 

   졸업식이 끝나고 박지민은 나와 길을 걷고 있었다. 집도 옆집이었고 마지막 하교 길이었다. 박지민은 한참 걷다가 갑자기 우뚝 걸음을 멈췄다. 나도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추고 박지민을 보았다. 박지민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입을 조심스레 열었다.

 

    “김태형, 졸업 축하해. 이 말 전하고 싶었어.”

    “네가 그런 말 아무렇지 않게 하니까 어색해, 인마!”

    “그동안 감정표현 못한 것 같아서, 사람도 없고 지금 여기서 말해야 할 것 같았어.”

    “그럼, 우리 입학식 때 입학 축하한다는 말 하자. 서로 해주는 거야. 물론 너도 졸업 축하해, 지민아.”

    “우리 과가 달라서 만나기 어려울 거야. 난 이공계건물이고 넌 예체능 건물이잖아.”

    “시간은 만드는 거지! 네가 바쁘면 내가 찾아갈게.”

 

    박지민은 내 마지막 말에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빨간 장미처럼. 그리고 박지민은, 아니 지민이는 가방에서 꽃을 꺼냈다. 압화 된 벚꽃 책갈피였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는 내 얼굴도 붉어지게 만들었다.

 

    “그 벚꽃 네가 고1때 잘 떨어진 벚꽃이라며 나 준거야. 내가 잘 보관해서 책갈피로 가지고 있었어.”

    “그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던 거야?”

    “네가 준 거니까. 나도 꽃 좋아해. 이공계 애들 감정 없는 로봇이라는 편견이 많지만 난 좋아해.”

    “내가 그럼 이 꽃 줬을 때 했던 마지막 말도 그럼 기억..해?”

    “고등학교 졸업식 날 이 꽃을 다시 내게 주면 고백 받아들인 거라 생각할게.”

    “기억, 하고 있었네.”

    “나는 그때 이미 네게 마음이 있었어. 하지만 우리 서로 목표가 있었으니까, 3년 동안 참느라 힘들었어.”

 

    지민이의 마지막 말에 나는 걸음을 옮겨 바로 지민이를 안았다. 그리고 지민이의 귀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랑해, 박지민. 사랑해, 지민아. 나랑 사귀어줘.”

    “그래, 김태형, 그래, 태형아. 우리 사귀자.”

 

    2월의 벚꽃이 피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서 우리는 1일을 맞았다. 그때만 해도 우린 정말 행복했고 사랑했었다.

 

   3월, 지민이와 나는 입학식을 위해 서둘러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과별로 앉아야하는 순간 나는 너무 아쉬운 나머지 지민이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지민이는 내 손을 조심스럽게 빼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입학식 끝나고 연락해. 같이 집 가자. 지금은 과별로 앉아야 하잖아. 반이 다르다고 생각해.”

    “그래도..아쉬워서 그러지! 넌 안 아쉬워?”

    “아쉬운데 우리가 최대한 빨리 앉아야 입학식도 빨리 끝나지 않을까?”

    “..맞네. 역시 똑똑해, 우리 지민이~~”

 

   피식- 지민이는 웃으며 자신이 속한 과로 걸음을 옮겼다. 나도 목걸이를 건네받고 내가 속한 과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지민이가 있는 곳을 찾았다. 저 멀리 지민이는 입을 앙 다문 채 입학식을 보고 있었다. 나도 다시 집중하고 입학식을 보려고 했지만 지민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멀리 떨어져도 분리불안증세가 나타나는 걸 보면 정말 나는 전생에 개였을까? 아, 물론 주인은 지민이.

 

   지루한 입학식이 끝나고 선배들에게 이끌려 OT를 가게 되었다. 내 상황과 다르지 않게 멀리서 지민이도 끌려가는 것 같았다. 서로 눈 한 번 마주치고는 다시 헤어지게 되었다. 아, 벌써부터 지민이가 보고 싶었다. OT를 가자마자 자기소개를 시켰다. 선배들은 군기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내 차례가 다가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2학년 과대 목소리가 들렸다.

 

    “자, 다음 새내기 인사~!”

 

   그 말에 나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일어났다.

 

    “19학번 패션디자인학과 김태형입니다.”

    “그게 끝이야?”

    “네.”

    “태형아, 우린 그런 자기소개를 원하는 게 아니야~ 장기자랑 하나라도 해.”

    “장기자랑 없습니다.”

    “노래 한 곡이라도 불러~ 그리고, 태형아. 계속 그렇게 빼면 선배 화난다?”

 

   정말 끈질긴 선배들이었다. 유독 지민이는 내가 노래를 남들 앞에서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자기만 듣고 싶다는 고집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정말 그 뒤로 노래를 일절 부르지 않았다. 물론 지민이와 있을 때는 불렀다. 다시 일생일대의 고민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문자가 울렸다. 나는 서둘러 폰을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나도 오늘 장기자랑 춤 췄으니까 너도 노래 불러도 돼. 우리 쌤쌤하자. 선배들이 하도 재촉해서 거절하기 힘들었어. 미안해, 태형아.’

 

   지민이가 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면 나는 지민이가 남 앞에서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래서 서로 약속했었는데 지민이가 먼저 그 약속을 깼다. 물론 지민이 성격 상 거절하기 힘들 거 알았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서운했다. 그리고 나는 숟가락 낀 술병을 잡아들고 한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노래를 부르려니 부끄럽기도 했지만 1절이 지나니 긴장이 풀렸다. 노래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들렸다.

 

   아, 이런 반응 오늘은 왜 이리 듣기 싫은 건지.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선배들에게 의도치 않게 노래 하나 불렀다고 좋은 인상을 남겼는지 빠르게 환영회에 나올 수 있었다.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지민이에게 갔다. 지민이의 환영회는 우리 과 보다 좀 더 수위가 센 것 같았다. 술을 먹인다거나 하는 정도가 우리 과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과가 더 셌다. 지민이는 게임을 정말 못했다. 그런 뜻은 술게임을 하는 즉시 타깃은 지민이가 되기 쉬웠다. 저번에 같이 술 마셨을 때 불행 중 다행인거지 굉장히 잘 마셨다.

 

   나는 노파심에 지민이에게 적당히 먹고 취한 척 하라고 했지만, 지민이는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은 것 같지 않았다. 지금 식탁에 머리박고 누워있는 걸 보면. 소주가 무슨 맥주 3000cc잔에 담겨있고 양재기에 술이 있는 이 상황 신고해도 되는 건가. 정말 너무들 했다. 이건 뭐 한 명 죽이겠다는 전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선배들에게 인사를 꾸벅하고 지민이를 일으켰다. 많이 마셨는지 지민이는 전혀 몸을 가누지 못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지민이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다시 선배에게 인사하고 나가려는 순간, 선배 한 명이 나를 불러 세웠다.

 

    “우리 과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지민이가 마셔야 되는 거 친구가 마셔야 되는 거 아닌가?”

    “지민이가 마셔야 되는 잔이 뭡니까?”

 

    선배는 말없이 양재기 담겨진 술을 내 앞으로 밀었다. 속에 참았던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지민이를 내려놓고 내 앞에 놓인 술잔을 보았다. 성격 같아선 뒤엎고 지민이만 데리고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는 내가 관련된 과가 아니라 지민이가 계속 마주쳐야 할 사람들이다. 한참을 고민하다 그 담겨진 술잔을 먹으려는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내 앞에 있던 선배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우르르 단체로 일어나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지금 언제 적 신입생 환영회를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졸업반이라고 개 무시하는 거야?”

    “아닙니다!”

    “그럼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양재기는 뭘까? 너 2학년 과대지? 설명해.”

    “저, 그게..”

 

   나는 이때가 기회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다시 돌아보면 최대 실수였다.

 

    “선배님께서 이거 안마시면 집으로 못 간다고 하셨습니다.”

    “새내기?”

    “네. 여기 학과는 아니고요. 친구 케어 하러 왔습니다.”

    “와, 이 새끼들 봐라. 지금 다른 과 애들도 술 맥이려고 지랄했냐?”

 

    나는 잘생긴 얼굴에 비해 욕이 찰지게 나오는 걸 보고 멍하니 서있었다. 그때 그 사람이 나에게 와서 손을 내밀었다.

 

    “미안. 학회장 김석진이라고 해. 우리 과 애들이 장난이 지나쳤다. 전화번호 줄 테니까 이새끼들 또 이러면 연락해. 이름이 뭐지?”

    “패션디자인학과 김태형이라고 합니다. 제 친구는 박지민이고요.”

    “그래, 태형아. 오늘은 이만 가라. 지민이도 많이 취했으니까. 여긴 내가 알아서 할게.”

    “감사합니다.”

    “다음에 나 만나면 형이라 불러. 친해질 것 같은데.”

    “네, 형.”

   나는 지민이를 업고 다시 나오려는데 그 2학년 과대의 목소리가 내 귀에 톡톡히 박혔다.

 

    “박지민이다, 그 새끼 학교 잘 지내는 꼴 만들지 마.”

    “뭘 잘 지내지 못하게 해, 새끼야. 내가 풀어주니까 네 세상 같지? 3학년 과대 김남준은 어디 있어?”

    “남준 선배 환영회 알아서 하시라고, 자기 도서관에서 과제해야한다고..”

    “하여간 선배들이 풀어주면 이 사단이 나는데. 너희 박지민 건들면 내가 가만 안 있는다. 화풀이 했다는 거 내 귀에 들리면 뒤져.”

    “네!!!!”

 

    나는 안심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찬바람이 씌이니 지민이는 술이 좀 깨는 것 같았다. 자신의 상태가 파악이 되었는지 내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내가 몇 번 기침을 하니 힘을 조금 풀어주었지만 지민이는 기분이 좋은 듯 했다.

 

    “태태~!!”

    “네가 취하긴 취했구나.”

    “취했지. 네가 나 데리러 올 줄 알았어.”

    “당연히 데리러 오지. 네가 이럴 거 뻔히 보이는데.”

    “아니~~ 선배들이 계속 술을 주시니까아..”

    “알겠으니까 힘 좀 빼. 무거워, 인마.”

    “무거워? 무거워~~!!!??”

    “농담이지! 그리고 나 너희 과 4학년 선배 봤어. 학회장이신 것 같더라.”

    “설마 김석진 선배님??”

    “너 얼굴 안 봤는데 어떻게 알아?”

    “네가 그 선배 때문에 이 학교 들어오려고 이를 갈았으니까!! 아, 역시 술이 문제야아아.. 술 먹어서 못 봤잖아..”

    “나한테 전화번호 있어. 내일 술 깨고 감사하다고 인사드려. 안 그럼 오늘 너 빠져 나오지도 못했어.”

    “태태, 화났어?”

    “화난 거 알면 술 적당히 마셔. 물론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미안해에..”

 

    나는 지민이의 옹알이를 들으며 지민이 집에 도착했다. 벨을 누르니 지민이 어머님이 나오셨다. 지민의 상태를 보더니 많이 놀라신 듯 했다.

 

    “아니, 얘 얼마니 마신거니?”

    “오늘 신입생 환영회라 조금 많이 마신 것 같아요. 중간에 나온 건데 그래도 좀 취했어요.”

    “정말 못살아, 내가. 데려오느라 고생했어, 태형아. 물이라도 마시고 갈래?”

    “아, 아니에요. 내일 지민이 아침 수업 있으니까 꼭 깨워주세요. 술 마시고 난 날에는 잘 못 일어나요.”

    “그래그래, 고맙다, 태형아. 조심히 들어가고!”

    “네, 안녕히 계세요.”

 

   지민이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지민이와 나는 고3졸업식 날 사귀기 시작했지만 양가 부모님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다. 물론 공개도 지민이의 의견을 따라 비밀로 한 거지만. 굉장히 기분은 좋지 않았다. 주변에는 지민이를 노리고 있는 늑대들이 너무 많이 보였으니까. 모른 척을 하고 싶어도 눈에 보이는 걸 어떻 하라는 건지. 나는 당장 내일도 지민이가 보고 싶고 걱정되는데. 지민이는 지금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겠다. 그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집에 도착하고 나는 그대로 뻗고 잠에 들었다. 마음도 몸도 피곤한 하루였다.

 

 

 

 

 

 

   알람소리에 화들짝 깨며 자리에 일어났다. 다행히 지각은 아니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지민이에게 연락을 했다. 연락하니, 아직 잠에 잠긴 목소리인 지민이가 들렸다.

 

    “아..왜..”

    “너 9시 수업 아니야?”

    “으..응..”

    “지금 8시야.”

    “.....??????”

    “정신 차렸으면 일어나서 준비해라. 아침 빵 사들고 너희 집 앞으로 갈게.”

    “알겠어!!!!”

 

    전화상에서 우당탕 거리는 소리와 지민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한참을 끊지 않고 들었다. 그리고 빵집에 들러 빵을 사들고 지민이 집에서 기다렸다. 곧 헐레벌떡 뛰어나오는 지민이의 모습이 내 눈으로 들어왔다.

 

   “아, 김태형!! 지금 8시잖아!! 왜 거짓말하는데!!”

   “그래야, 네가 일어나지 ㅋㅋㅋ”

    “그래, 뭐..틀린 말은 아니지.”

    “자, 아침이나 먹어.”

    “감사.”

 

    지민이가 빵 봉지를 뜯고 한 입 먹고 묻은 입을 나는 한참을 보았다. 그렇지만 지민이가 좋아하지 않을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시선이 느껴졌는지 지민이는 빵을 먹다가 나를 보았다.

 

    “왜, 뽀뽀하고 싶어?”

    “하게 해주면.”

    “허, 이제 거절도 안하네.”

    “내가 왜 거절 하냐, 이제 너랑 사귀는데.”

    “그럼 하자. 나도 하고 싶어.”

 

   지민이의 마지막 말은 내 귀를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지민이는 스킨쉽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손잡는 것도 망설이고 포옹하는 것도 망설였는데, 지금 발언은 굉장히 위험했다.

 

    “막상 하라고 하니까 못하..읍!!”

 

    지민의 말을 끊고 나는 바로 지민이 입으로 직행했다. 도톰한 입술과 맞춰지고 촉촉했다. 그리고 입을 떼고 지민이의 얼굴을 보았다. 지민이의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안아주려고 할 때 지민이가 손으로 막았다.

 

   “너, 내 얼굴 보지마!!! 나 혼자 갈 거야!!!”

   “왜, 귀여워!!”

   “뭐가!!”

   부끄러워 앞장 서 걸어가는 지민이의 뒤를 따라가며 학교에 도착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모두 나에게 시선이 집중이 되었다. 나는 무슨 상황인 거 싶어 살짝 당황했지만 애써 무시한 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내 옆에 앉은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너, 유명인사야~ 알고 있어?”

   “네?”

   “너 어제 금융공학과 환영회 가서 개판치고 왔다며. 아니야?”

   “그런 적 없는데요. 거기 간 건 맞지만 개판은 치지 않았어요.”

   “거기 학회장도 왔었다며! 근데, 이미 소문은 그렇게 퍼졌는걸..?”

   “네?”

   “그래서 네 친구! 걔보고 조심하라고 해. 2학년 과대 개 빡쳤다고 하더라.”

   “아..소문은 누가 낸지는 아세요?”

   “글쎄, 그걸 알면 내가 알려줬겠지. 오늘 오니까 쫙 퍼져있더라. 아무래도 2학년 과대 짓인 것 같아.”

   “아, 감사합니다. 패디 선배님이시죠?”

   “아, 나 기억해?”

   “그럼요. 3학년 과대 정호석 선배님 아니세요?”

   “맞아 맞아! 자식, 귀엽네. 아무튼, 그 친구 조심하라 그래. 그 2학년 과대 질이 좋지 않다더라. 물론 남준이가 잘 할 것 같긴 하지만. 전해줘, 그 친구한테.”

   “네, 선배.”

 

   호석선배의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민이의 안부가 가장 걱정 되었다. 혹여나 나 때문에 지민이가 해를 당하지 않을까. 나는 개새끼라고 불려도 괜찮은데, 나쁜 놈으로 불리어도 상관없는데, 지민이는.. 보기에는 강해보여도 여린 아이니까. 결국 나는 지민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교양수업이 끝나는 시간까지도 지민이에게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교수님이 나가자마자 나는 지민이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목에서 피맛이 날 때쯤 도착했을 때는 지민이는 그 곳에 없었다. 나는 서둘러 아무나 붙잡고 지민이의 행방에 대해서 물었지만, 아무도 몰랐다. 걱정되는 마음에 지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걱정과는 다르게 바로 연결이 되었다.

 

 

   “지민아? 너 어디야!!”

   “어디보자, 김태형인가?”

   “누구세요.”

   “나 봤잖아. 2학년 과대야.”

   “지민이 전화를 왜 선배가 받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지민이 지금 전화 받기 힘들거든. 워낙에 선배들이 예뻐해줘야지, 안 그러니 얘들아?”

 

   전화상에서 대답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는 더욱 초조해졌다. 이러다 정말 지민이가 잘못될까봐. 나는 더 이상 전화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끊으려 했다.

 

   “너, 박지민 있는 곳으로 오고 싶어?”

   “네.”

   “그럼, 너 혼자 와. 장소는 찍어줄게.”

   “알겠습니다.”

   2학년 과대의 협박을 들은 나는 조용히 호석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혹시 바쁘세요?”

   “아니, 아직 과제 시작 안해서 괜찮아. 무슨 일?”

   “김남준 선배님 전화번호를 얻을 수 있을까요?”

   “남준이 전화번호는 왜?”

   “다름이 아니라 제 친구가 지금 화풀이 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도움 요청하고자... 부탁드리겠습니다.”

   “? 남준이가 교육했다고 했었는데, 아닌가보네. 알겠어. 흠, 아니면 여기로 올래? 지금 남준이도 여기로 오기로 했거든.”

    “네! 거기로 갈게요!!”

 

   나는 호석선배가 찍어준 곳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한시가 급했다. 호석선배가 미리 연락을 다시 넣었는지 김남준 선배로 추측되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호석선배가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태형아, 여기!”

 

   나는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호석선배가 먼저 말했다.

 

   “여기가 김남준! 3학년 과대.”

   “안녕하세요, 선배님.”

   “그래, 뭐 그렇게 딱딱하게 말할 필요 없어. 그래서 위치는 보냈어?”

   “아, 네. 실습실 j205호 라고 보내왔어요.”

   “금융공학과 짓인 거 안 들킬려고 발악을 하는 꼬락서니는..”

   “김남준, 석진 형한테 연락했어?”

   “그 형 오늘 좀 많이 바빠서 아직 연락만 넣어놨는데, 기다려봐야지.”

   “그, 석진 형님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와, 태형이 나한테는 선배라고 하고 석진 형은 형이야?”

   “아..”

   “정호석, 애 기죽이지 마 ㅋㅋ”

   “알겠어~! 그리고 태형아, 석진 형은 학회장이야. 알아야 할 사안이야.”

   “네.. 사실 그 2학년 과대 선배님이 저 혼자 오라고 했는데..”

   “그거 원래 다들 그래. 그럼 김남준 너 혼자 가는 거야?”

   “석진 형한테 방금 연락 왔다. 같이 가자.”

   “감사합니다!!”

   나는 석진 형이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천년과 같았다. 멀리서 석진 형이 걸어오는게 보이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석진형이 나를 보고는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그 2학년 과대 네가 관리했다고 하지 않았어?”

   “관리했는데 이호영 그 새끼가 말 듣는 새끼인가요, 뭐.”

   “하긴. 가자, 서둘러야지.”

 

   이호영, 그 망할 개자식 2학년 과대가 알려준 장소로 도착했다. 이미 근처로 걸어갈 때부터 소음이 들려왔다.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켜서 동영상 녹화버튼을 눌렀다. 석진 형이 먼저 문을 벌컥 열었다. 안의 상황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가관이었다. 지민이는, 지민이는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무릎만 꿇으면 다행인 것을, 이미 몸에 멍이 내 눈에 뚜렷하게 보였다. 주먹을 꽉 쥐고 동영상을 녹화했다. 여기서 이성을 잃어버린다면 지민이만 위험해질 테니까. 석진형의 등장에 이호영은 눈에 띄게 당황스러워했다. 석진형은 이호영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자, 네 입으로 직접 말해보자! 내가 저번 신환회때 박지민 건드리면 어떻게 한다고 했지?”

   “...”

   “우리 과에서 대답안하는 룰도 있었나?”

   “아닙니다.”

   “그럼 대답해, 새끼야.”

   “건드리지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왜, 건드렸을까?”

   “하지만 저희 과대가 신환회 때 그렇게 가는 건..”

   “자, 더 말할 거 없고. 3학년 과대가 대신 벌 받을 거거든. 연좌제 한번 가보자. 단, 1학년 제외.”

   “선배님!!”

   “왜, 두려워? 두려웠으면 김남준이 말로 할 때 듣지 그랬어. 근데, 김남준 빡치면 나도 못 말리는 거는 과 사람들이면 다 알지? 그래서, 그 빡치는 것에 도움을 약간 줄까해. 김남준!”

 

   남준 선배가 석진 형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석진 형은 바로 남준의 머리를 치고 무릎을 꿇렸다. 그리고 석진 형은 남준 선배에게 조용히 말하되 이호영이 들리도록 말했다.

 

   “김남준, 빡친만큼 쟤한테 풀면 된다.”

   “형이 보장해준다고 했죠?”

   “그럼, 걱정마라.”

 

   남준 선배가 이호영 앞으로 성큼 성큼 걸어가셨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지민이 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지민이를 일으키려 했지만,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던 것인지 잘 일어나지 못하고 곧 고꾸라졌다.

   “지민아!”

   “태형아,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뭐..?”

   “신환회 때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고!”

   “난 너 술 무리해서 못 마시게 하려고 한 것 밖에 없어!”

   “그래서 내가 지금 과대선배한테 찍힌 거잖아! 안 그래, 태형아?”

   “지민아, 너 지금 많이 힘들어서 그래. 일단 병원가자. 병원 가서,”

   “됐어. 병원 갈 필요 없어. 도와주러 온 네가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 만 같아서 너무 기분이 좋았는데, 내가 대학 온 이후로 네가 나타날 때마다 나한테서 너무 힘든 일만 생겨. 태형아, 나 너무 힘들어.”

   “지민..”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지민이 눈에서 눈물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도 같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야 지민이와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나는 왜 지민이에게 불안한 존재가 되는 걸까. 왜 두렵게 만드는 놈으로 밖에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걸까. 나는 지민이의 무릎을 몇 번 아무 말 없이 주물러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지민이의 얼굴에 남아있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지민아, 그렇게 힘들다면 내가 더 노력할게. 내가 너한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할게. 하지만 우리한테도 아니, 너에게 너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네가 마음이 안정이 되면 그때 연락 해줘. 먼저, 갈게. 치료 잘하고.”

   “김태형..”

 

   나는 곧바로 뒤를 돌아 나갔다. 석진 형님의 눈길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고는 집으로 서둘러 향했다. 너무 찝찝했고 지민이의 얼굴만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내 침대에 눕자마자 석진 형님에게 전화가 왔다.

 

   “형님?”

   “그렇게 먼저 가니까 좋더냐?”

   “좋지 않습니다..”

   “지민이 병원 보냈다. 걱정할 것 같아서 내가 특별히 연락했지. 그리고 이호영 그 놈은 곧 징계위원회 보내질 거니까 걱정 말고. 앞으로 지민이 괴롭힐 놈 없다는 얘기를 지금 너한테 친히 얘기하고 있는 거라고.”

   “....감사합니다. 그래도, 알려주셔서."

   “너희 둘 사귀는 거 맞지?”

   “사귀었죠.”

   “사귀었죠의 그 애매한 대답은 뭐야? 지금은 안 사귀는 거야?”

   “지민이가 많이 힘들어해서 지민이 에게 시간을 줬어요. 정리할 시간이요. 저는 지민이 포기할 수 없거든요. 근데, 지금 제가 지민이 앞에 나서면 지민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연애문제는 끼어들게 아니지만 한마디만 할게. 아주 둘 다 땅굴을 파라. 내일 학교에서 밥이나 같이 먹자. 너 1학년 과대지?”

   “네, 연락주세요.”

   “참고로 금융공학부 1학년 과대 박지민이야. 그럼 끊는다.”

 

   마지막 말을 듣자마자 나는 다시 내 머리를 쥐어 뜯어야했다. 오늘 겨우 시간을 갖자고 얘기했는데 당장 만날 일이 너무 많았다. 양치를 하는 순간에도 떠오르는 박지민 얼굴 때문에 결국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퀭한 얼굴로 호석선배에게 인사를 하니, 호석선배의 눈이 두배로 커졌다.

 

   “아직 과제 본격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왜이래?? 어제 일이 심했어?”

   “아, 잠을 잘 못자서 그래요. 오늘 과대 모임 석진 형님이 정하신거죠?”

   “어, 원래 몇 번 안하는데 자주하네.”

   “오늘 왜 모이는지 아세요?”

   “음.. 그건 네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저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

   “아무래도 대외적으로는 과대들끼리의 친목도모겠지? 그 속사정은 석진 형만 알겠지. 아, 그리고 지민이 퇴원했어. 다행히 그렇게 크게 다치진 않았던 것 같고 많이 놀란 것 같아. 궁금했지?”

 

   나는 호석선배의 말을 듣고 지민이의 상태를 알게 되었다. 이제 상태도 어떤지 물어보기도 애매한 사이가 된 것 같아 한 쪽 가슴이 아려왔다. 겨우 표정관리를 하고 다시 과제를 하려 도서관으로 향할 때 멀리서 이호영, 그 개자식이 보였다. 그 옆에는 석진 형님이 계셨고, 나는 멈추어 그곳에 서 있었다. 그때 이호영이 나를 보더니 미친 듯이 달려와 내 멱살을 잡았다. 나는 말리지 않고 무슨 짓을 할까 싶어 내버려뒀다. 이호영은 내 멱살을 잡더니 소리쳤다.

 

   “너 때문에 내가 개고생해서 들어온 학교를 정학을 먹는다는 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게 왜. 저 때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네가 그때 조용히 혼자 왔으면 잘 해결될 문제를 지금 이렇게 만든 거 아니야!!”

   “선배님, 제가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그때 제가 혼자 갔더라면 지민이도, 저도 멀쩡히 보내주시지 않을 거 다 압니다. 제가 미쳤다고 혼자 갈까요?”

   “너 말 다했어?”

   “아니요, 하고 싶은 말 정말 많은데 여기까지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제 멱살 놓아주시죠.”

   “이 개자식이..!”

   “그만. 너 지금 징계 먹고 과대 자리도 박탈이야. 폭행죄로 아예 퇴학당하고 싶어?”

 

   석진 형의 말 한 마디에 내 멱살은 놓아졌고 이호영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조용히 이호영 귀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야, 적당히 해, 개새끼야. 지금 여기서 을은 너야.”

 

   나의 말에 이호영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며 도서관으로 다시 향했다. 머릿속은 온통 지민이로 가득 찬 채로. 도서관에서 한참을 과제를 하던 중 시간을 보았다. 석진 형님이 말해주셨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서둘러 정리해 식당으로 향했다. 멀리서 익숙한 머리통이 보였다. 연락 안 한지 하루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반갑다니, 참 중증이었다. 최대한 지민이에게서 가장 멀리 앉았다. 가까이 앉거나 마주 보면서 앉으면 지금 상태론 바로 체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석진 형님의 말에 나는 지민이 바로 맞은편에 앉게 되었다.

 

   “김태형, 지민이 앞에 앉아! 1학년은 1학년끼리 앉아야지.”

 

   사실 나만 움찔 거린 건 아닌 것 같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좋았다. 학식을 받고 다 앉자마자 석진 형님이 자리에 일어나 나를 보면서 말하셨다.

 

   “자, 주목! 우리 과대들끼리는 다 아는 사이긴 하지만 우리 1학년 과대들은 오늘이 처음이니까 다들 잘해주었으면 좋겠고! 그리고, 금융공학부 2학년 과대투표도 다시 할 예정이니까 다들 준비해줬으면 좋겠어. 아, 김태형! 일어나보자.”

   “..네?”

   “패션디자인 1학년 과대인데, 이번에 우리 학과 1학년 과대 살렸다. 익히들 알고 있지? 모두 박수!”

 

   나를 향해서 박수소리가 들려오는데 내 신경은 온통 지민이 에게만 있었다. 지민이가 이 상황을 나보다도 더 불편해하면 어쩌지라는 그런 생각들. 하지만 지민이는 그 분위기에 잘 스며들어 같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어쩐지 그 모습이 더 내 마음을 아리게 만든 것 같았다. 나는 형식적인 말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친한 친구기도 했고, 그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지민이도 한 마디 해보는 게 어때?”

 

   그 말을 듣고 나는 석진 형님이 일부러 나와 지민이 때문에 이 자리를 만들었다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나는 지민이가 곤란해 할까봐 미리 선수 치려는 순간 지민이가 먼저 말했다.

 

   “당연히 고맙죠. 태형이 아니었으면 제가 이 자리에 없고 병원에서 계속 있었을 테니까요. 고마워, 태형아.”

 

   지민이의 말이 끝나고서야 겨우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민이의 말이 너무 아프게 들렸다. 그 병원에 안가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좀 만 더 신중했더라면.. 아, 이따가 활명수나 사먹어야지. 과제 생각하자, 김태형. 다른 생각, 하지, 말자.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도 헷갈리게 흡입을 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젠장, 내가 지민이를 기다려주겠다고 내 입으로 떠들었는데 도저히 버티는 게 불가능했다. 뼈를 깎는 기분으로 지금 지민이의 응답만을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현실인가. 그 후로도 지민이 에게는 연락이 일절 오지 않았다. 지민이의 연락이 오지 않을 때마다 내가 지민이의 소식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스타와 페북, SNS였다. 그마저도 내가 봤다는 게 뜨는 거라 인스타는 곧 접었다. 과제를 하려고 실습실로 오는 길에도 머릿속에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박지민으로 가득찼다. 교수님에게 오늘 대차게 까였는데, 큰일이었다. 이렇게 중증인데 무슨 자신감으로 기다려주겠다고 한건지... 한숨을 쉬며 원단을 꺼내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뒤를 돌아 문열린 사람을 보았다. 지민이었다.

 

   “지민..아?”

   “얘기하려고 왔어. 너 여기로 왔다고 하길래. 방해했어?”

   “아, 아니야. 아무데나 앉아.”

   “뭐하고 있었어?”

   “아, 이제 옷 만들어야 해서 준비하고 있었어.”

   “사과하려고 왔어.”

   “...어?”

   “네가 안 왔으면 나 거기서 더 맞고 다쳤을지도 모르는데 막무가내로 화내버려서..”

   “아니야! 충분히 그런 말 할 수 있어! 괜찮아, 지민아..”

   “미안해. 그동안 연락도 안했던 것도 무서워서 그랬어. 네가 더 이상 나랑 얘기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누가 그래!”

 

   나는 다급한 마음에 지민이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러자 지민이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연락 안한다고 진짜 안하는 애 아니잖아, 너.. 이번에 정말 연락이 없어서 나랑 연락하기 싫어하는 줄 알았어.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미안해서..”

 

   지민이의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민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민이는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얘기했다.

 

   “미안해...흐흡...미안해, 태형아. 나 근데 너 없이 못 지낼 것 같아. 내가 이렇게 너를 사랑하는지 몰랐어. 근데 이번에 알았어. 나..너 없이 못 살 것 같아. 네가 있어야 내가 살아가는 것 같아. 연락 못 하는 시간동안 하루가 십년 같았어. 보고..싶었어, 태형아.”

   “지민아, 나도 너무 사랑해. 나도 너랑 없는 시간동안 죽을 것 같았어. 네가 사는 이유가 바로 넌데, 내가 어떻게 너를 싫어하고 미워해. 나 너 없이 못 살아. 내가 너를 얼마나 생각하고 사랑하는데. 박지민, 이제 너 안놔줄거야. 내가 붙들어 놓을거라고.”

   “우리 이제 공식으로 연애하자.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정식으로 사귀자. 나 이제 너랑 연애 제대로 하고 싶어. 그동안 계속 튕겼 던 거 미안해.”

 

   나는 흐르는 지민이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고는 그대로 입술을 밀어 붙였다. 지민이도 거부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내 입술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지민이는 두 손을 내 목에 걸었다. 짧지만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갓 성인이 되서 빠르게 찾아온 권태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감정의 골이 지금 터진 게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할거다. 지민이와의 관계를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지민이의 마음도 나와 같으니까. 지민이가 싫다고 하더라도 절대 놔주지 않을거다. 지민이는 내 삶과 다름이 없으니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석진형님과 남준 선배가 지민이에게 내 상황에 대해서 알려주었다고 했는데 한 번 감사인사를 드려야할 것 같다. 아니었으면 우리 둘 다 계속 삽질 하고 있었을 테니까. 다시 돌아온 연애생활에 내 삶엔 활력이 다시 찾아오고 지민이도 다시 적응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2학년 과대 이호영은 퇴학이고. 그 과대에 불만이 많았던 사람들이 지민이에게 잘해주는 듯 싶었다. 안심이 되기도 하고, 질투도 났지만 못 지내는 것보다 낫다고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다.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 그때 한 번 일방적으로 지민이 와의 관계가 서먹해지고 난 뒤 우리의 진짜 속마음을 알게 된 건지 몰라도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계속해서 노력하며 사랑할 것이다. 지민이를 위해, 앞으로의 지민이의 행복을 위해, 지민이와의 같은 미래를 위해. 사랑해, 박지민.

© 2019 Season of VMIN, SPRING, for 1230X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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