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도 한철
국화도 한철
델로
나는 봄을 꽤나 많이 증오한다.
사실 이러해서 그러했다 할 큰 이유도 없었다. 인생을 바꿔놓았어도 충분한 큰 계기가 있었더라면 차라리 덜 억울하기라도 했다. 그러나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벚꽃나무 잎이 흩날리는 게 지독히 싫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른한 춘곤증 때문에 그 계절마다 매일같이 꾸벅 조는 것은 반갑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렇게 봄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봄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입어야 할 옷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날씨며 흐드러지듯 만개했다가 하루나 이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져버리는 벚꽃도 좋았다. 또 생각해 보면 벚꽃 때문에 싱숭생숭했던 마음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맘때 한창 쓰던 일기장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 봄만 되면 생각나서 펼쳐보던 것을 잊고 그냥 내버려둔 게 벌써 오 년쯤 전이었다. 일기장을 펼쳐보니 1978년이었다. 1978년이라면 그래 내가 열다섯 살이던 때에 그 사달이 났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애 이름은 김태형이었다. 그때의 내 복잡하고 묘한 심리들이 여기 다 적혀 있었다. 그 마음들은 죄다 김태형에서부터 비롯되어 나 박지민을 거쳐 다시 김태형으로 향했다.
우리 마을에는 붉은 벽돌집이 하나 있었다. 당시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 그 집을 처음 본 사람 중에 하나는 지나가다 거길 보고 웬 시골에 박물관 건물이 생기었나 했다고 그랬다. 집주인은 도심에서 온 김 씨 아저씨였다. 붉은 벽돌 그 집은 예전부터 휴가를 보내려고 지어놓은 아름다운 별장 비슷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거기서 한 철 동안 지내기로 한 것이었다. 우리 집 어른들은 그 집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했다. 그것이 바로 내 신경을 거슬린 것이다. 김 씨 아저씨야 평판이 좋은 사람이니 둘째 치고 나는 그 집 막내아들이 싫었다.
김태형. 나랑 동갑이었던 영 딴판인 도심의 아이. 그 애는 열일곱의 형 하나가 있었다. 아직 도심에서 공부를 하느라 여기로 오지도 못한다던 그 형님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전해들은 바로는 일본산 시계를 차고 미국산 신발을 신고 다닌다고 했다. 내 생각으로는 그 형도 김태형만큼 어쩌면 더 부리부리하게 생겼을 것 같았다.
좌우지간에 내가 왜 김태형을 싫어했느냐면, 그 고급스러운 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 졸졸 따라다니며 이따금씩은 온갖 촌스러운 행위들을 같이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옆자리에 앉아 수업은 듣지 않고 걸상까지 돌려서 나만 빤히 쳐다봤다. 정말 싫었다. 그래서 나는 지우개똥만 굴려대며 매일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었다. 동글거리던 덩어리가 잠깐 사이에 둥글거리게 될 때까지. 동그랗고 구불거리는 글자들이 빼곡한 책은 한 번도 쳐다보지 않던 동그란 김태형은 꼭 발표를 시키면 곧잘 일어나 대답했다. 그 애가 하는 그것이 괜히 날 골리는 것 같아 싫었다.
매일같이 알짱거리는 것만 해도 방해됐는데 하교하는 길에는 잠시의 쉴 틈도 없이 말을 걸어대니 또 싫었다. 부모님은 그걸 보고 내가 김태형과 친해 보인다며 좋아하셨다.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라고도 하셨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속으로 김태형이 절대 친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차라리 일면식도 없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그는 사람을 귀찮게 하는 놈이고 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피해자였을 뿐이었다.
부모님이 김씨 아저씨한테 매번 먹을 것을 가져다 드리라고 나에게 시키는 것도 싫었다. 그 집까지 가는 길에는 꼭 그 애가 있었다. 김 씨 아저씨네 집에 가려면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조금 걸어가다가 이용원과 약초방을 끼고 왼쪽으로 돈 후에 보이는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그 애는 꼭 그 중간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민아!”
춘분 근처의 절기 그 길목의 풍경이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 징검다리 끝에 있는 커다란 벚꽃나무에서 잎이 떨어지고, 한쪽 구석에 있는 진달래밭 뒤로 김 씨 아저씨네 집이 보이고, 바람에 날아 징검다리를 건너는 벚꽃의 잎이 김태형의 코앞에도, 내 눈앞에도 흩날렸다. 김태형은 부잣집 아들다운 옷을 입고 손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은 채로 서 있었다. 그 애는 언제나 입 안에서 커다란 왕사탕을 굴리느라 양 볼이 번갈아서 볼록하니 튀어나왔다 옴폭해지기를 반복했다.
"우리 집 가지?"
"무슨 상관이야? 저리 가. 어서 집에 가 할 일이나 해라."
“너 데려오라고 하셨어, 아버지가.”
물론 나는 머리가 좋아 그 애가 하는 말이 새빨간 순 거짓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때 아주머니께서는 당신의 막내아들 뒤에서 나오는 나를 보고 당황하며 그릇을 받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맙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미리 연락을 했었더라면 아주머니는 그렇게 반응할 리가 없었다.
김태형은 그 후로도 나를 모르고든 알고든 마주칠 때마다 제 아버지 핑계를 대었다. 아저씨께서 날 초대했다면서. 그때는 김태형을 미워하지 않고 모른 체하며 그 자식을 따라갔다. 김 씨 아저씨네 집에 가면 매번 외제 과자를 얻어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동생 민지를 주려고 몰래 두어 개 집어서 주머니에 넣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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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 지나고 사월에도 똑같았다. 모르는 척 김 씨 아저씨네 집에 찾아가 같이 만화책도 보고 김태형이 앞에서 까부는 양에 질색하는 하루를 보낸 뒤였다. 아침부터 어둑어둑했던 하늘이 점점 새까맣게 되자 나는 현관문을 나섰다. 김태형은 얼른 뒤에서 쫓아와 내 등에다 대고 말했다.
“우리 집에서 숙제 하고 가.”
“아까 다 했어.”
“그짓말.”
그러면 나는 대답했다.
“안 돼. 오늘 어머니가 맛있는 반찬 해 주신댔어.”
“그럼 나도 갈래.”
우리는 현관문 앞에 서 있었지만 김태형은 나를 제자리에 있으라고 일렀다. 쿵쿵거리며 집안으로 뛰어간 그 애는 얼마 떨어진 이웃집까지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지민이네 집에 가겠다며 소리를 지르고 나왔다. 다시 쿵쿵 나오는 기척을 듣자마자 나는 징검다리 쪽으로 뛰어갔다.
생각도 하지 못한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나는 한참을 도망질하다 징검다리 앞에서 멈춰 섰다. 숨을 몰아쉬는 그 순간까지도 등 뒤에서 지민아이, 하는 김태형의 신난 뜀박질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봄바람이라고 하긴 조금 차가운 바람이 볼을 훑고 지나갔다. 하늘이 퍼렇게 어두워진 채로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처럼 굴었다. 여전히 나를 부르는 김태형의 목소리가 우르릉거리는 구름 소리에 묻혀 작아졌다. 그리고 정수리와 볼, 앞으로 내민 손바닥에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어두컴컴하더니 기어코 우리의 술래잡기를 망치고 말았던 거다. 김태형의 목소리가 갈수록 더 가까워졌다.
나는 벚꽃나무 아래로 몸을 피했다. 바로 근처까지 다가온 김태형이 고스란히 맞은 빗물을 털어내며 아이, 씨, 했다. 벚꽃나무와 등을 맞대고 서서 마치 내가 첩보라도 된 것처럼 머리를 조금만 내밀어 두리번거리는 김태형의 뒤통수를 지켜봤다. 비가 와서 그런 건지 몰라도 원인 없는 신바람이 빗물만큼이나 내 주위를 감돌았다.
“분명히 여기까지밖에 안 왔는데.”
숨을 들이마신 채로 참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냥 훨씬 조그마한 우리 집까지 김태형이 쫓아오는 게 싫었던 것뿐이었는데도 꼭 도둑질을 하다 들키기 일보 직전인 도둑놈처럼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감기 들까 봐 그래, 지민아….”
“아이… 치!”
하필이면 이렇게 귀신 같이 딱 들어맞는 때에 재채기. 소리도 볼품없이 작고 치사하게 들렸다. 김태형의 터진 웃음소리가 세찬 빗소리를 뚫고 나에게까지 왔다. 한창 피어 있던 벚꽃이 빗물에 씻기듯 떨어지고 있었다. 귓바퀴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더 볼 것도 없이 김태형일 것 같았다. 오싹하게 닭살이 돋는 젖은 팔을 문지르며 고개를 돌리니 역시였다. 나를 따라서 벚꽃나무 줄기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김태형은 몸을 돌려서 내 코앞으로 다가왔다. 조금만 바깥쪽으로 나가면 비를 맞을 것 같다고 해서 우리는 딱 붙어 섰다. 또다시 조금 전처럼 식은땀이 삐질거리며 솟아나왔다.
“야, 쫌, 떨어져 봐….”
“비 맞을 것 같애. 그치려면 멀었나 봐. 그치?”
조곤조곤 말하는 김태형의 따뜻한 숨이 이마 끝을 자꾸 쓸고 지나갔다.
비가 차츰 잦아드는 기색이 보였다. 나는 김태형을 옆으로 치워냈다. 조금 떨어져 밀렸던 숨을 천천히, 그리고 한꺼번에 뱉어냈다. 우리를 잡아먹을 것처럼 내리던 봄비는 어느새 물러가고, 다 떨어진 꽃잎들만 수북했다. 징검다리 위에 있는 바위들이 반짝였다.
“너는 무슨 재채기하는 소리가 그렇게 우습냐?”
“남이야. 우습든, 말든.”
“감기 들었지?”
“안 들었어.”
“들어두 내 잘못 아니야.”
치사한 놈. 너나 감기 들어라, 하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내 뒤를 또 졸졸 따라 오는 김태형을 가만히 두고 징검다리 돌을 밟았다.
“씨이…….”
바위가 반짝인다는 것의 신호는 ‘내가 미끄러우니 다가오지 말고 나중에 오너라’ 하는 뜻이었음을 아주 느리게 깨달았다. 나는 발을 딛자마자 허둥거리며 물에 빠졌다. 무릎께까지 오는 높이였는데도 드러누운 내 몸 위를 다 잡아먹었다. 물 밖에서 머뭇거리던 김태형은 나만큼이나 허둥거리며 바지를 걷어붙이고 물에 들어왔다. 바로 옆에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겨우 일어서는 와중에도 쏴아 하는 소리가 났다. 여기저기 튀는 물방울들이 소매로 닦아내어 보송했었던 김태형의 얼굴 위에 고스란히 다 튀었다.
“조심하라고 말했었는데.”
“언제!”
“속으로….”
깜빡 속아 넘어가 줄 수 있었는데도 김태형은 거짓말을 못 했다. 우리는 물을 헤치고 건너 척척 소리가 나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걸어갔다.
“물에는 왜 일부러 들어간 거냐?”
“네가 빠지길래?”
“너두 돌덩이에서 자빠지지, 그랬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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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는 며칠 동안 학교엘 가지 못했다. 김태형의 예언대로 감기를 실컷 앓았다. 그날 우리 집에 와서 수 시간은 눌러앉아 있을 줄 알았던 김태형은 그냥 엄마에게 인사만 하고 다시 제 집으로 갔었다. 용케 길을 기억해 냈었는지 지난 며칠 사이에 우리 집에 왔다 갔었다고 엄마가 그랬다. 하필이면 가족들에게 옮길까 봐 방 안에서 미음과 약만 먹으며 틀어박혀 있었던 그 사이에. 홀쭉해진 볼을 문질거리다가도 투덜거림이 나왔다. 김태형의 난만한 그 얼굴을 못 봐서 그랬을 것이라고는 당시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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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가는 길목이 이상하게 썰렁했다. 등교하느라 왁자지껄 떠드는 학생들 사이에도 썰렁한 오월의 봄기운이 가득했다. 봄 소나기가 내렸던 며칠 전하고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따스한 기온에 등줄기가 촉촉해질 지경이었는데도 교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을 때까지 공기는 썰렁했다.
“지민아. 어제 자리 바꿨어.”
“으응, 그, 김태형은?”
“김태형? 전학 갔다.”
“어?”
“좋지? 다행이지?”
내 옆자리에 그 자식 대신 앉게 된 전교 회장은 평소에 내가 김태형에 질색팔색을 하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날씨가 따뜻해져서 좋다며 안경을 한 번 미간으로 추켜올리고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한영사전을 폈다.
마침내 윗입술 맨 끝에 배우지도 않았던 상욕이 대롱거렸다.
전교 회장은 박물관 건물이 텅 비어서 꼭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믿을 수가 없었던 몇 시간이었다. 학교가 끝날 때까지 김태형은 결국 보이질 않았다. 나는 종이 치자마자 징검다리 쪽으로 뛰어갔다. 벚꽃이 다 지던 날 술래잡기를 했던 때보다 더 빨리 뜀박질을 했다.
볕에 허옇게 메마른 바위들 옆으로는 맑은 물이 흘렀다. 징검다리 건너에는 다 져버리고 붉은색 뿌리 같은 것들밖에 남지 않은 벚꽃나무가 서 있었다. 맨 밑에 있는 가지는 내가 정성껏 까치발을 서야만 손끝이 겨우 닿는 높이에 있었는데, 거기에 어떤 흰색 꼬리 같은 게 매달려 있었다. 빳빳한 그것이 날더러 오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나는 순식간에 바위들을 뛰어 건너 벚꽃나무 아래로 갔다. 힘껏 발뒤꿈치를 들고 꼬리 모양을 한 종이를 잡아채어 나뭇가지를 당겨 내리고, 묶여 있는 종이를 풀었다.
[꼭 놀러 올게 감기 빨리 나아]
꼭 벚꽃잎이 빗물에 우수수 떨어지던 그때 같았다. 나는 김태형을 향해 쌓여 있던 미움을 한껏 떨궈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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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스물다섯이다. 1978년 당시 겨우 한철에 불과했던 미움, 또는 그리움이 겨우 한 점만큼 작게 되었다. 내가 다시 그 날을 떠올린 이유는 어젯밤에 어머니에게서 전해들은 김 씨 아저씨네 집 소식 때문이었다. 그 집 아주머니와 줄곧 친하게 지내셨던 줄은 알았지만 여태껏 연락을 하고 지낼 줄은 몰랐었다. 이사 간 이웃은 곧 남남이라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예전 이웃 김태형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때 순식간에 사라진 태형은 도심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가 돌아간 지 한참 만에 들은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태형과 그의 형님은 이틀 전에 데모를 나갔다가 이름 모를 다리 밑까지 끌려가서는 어제가 되어서야 겨우 귀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께서는 그 말을 전하시며 날더러 김 씨 아저씨네 아들 같지 않아서 좋다고 하셨다. 나는 꾸준히 몰래 하던 활동들을 앞으로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또 다시 오월이었다. 여름 문턱의 마지막 봄만 되면 그 날씨가 싫었다. 태형의 소식을 늦게나마 듣고 나서야 증오하던 날씨가 태형 때문임을 알게 된 지가 얼마 안 됐다. 그만큼 소년 시절의 나에게 태형은 꽤나 크나큰 부분을 차지했던 거다. 그때의 미움은 그리움과 허전함이었고, 허전함이 그리움을 만나 태형을 향한 치기 어린 미움과 한철의 애정이 되었었다.
복잡하게 왁왁거리는 태형의 생각을 겨우 흘려보내고 나는 책방으로 갔다. 감명 깊은 시들이 거기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자주 가는 편이었다.
구석에 있는 책장 끝 바닥에 편히 앉아 무릎에 책을 올려놓았다. 오후의 강한 햇볕이 창문으로 사각형을 그리며 구석까지 샅샅이 비추었다. 나는 안경 너머로 활자 위에 머무른 주홍빛 반짝이들을 보았다. 순식간에 감겨오는 눈을 이기기는 쉽지 않아 고개를 수그렸다. 단단하게 뒷목이 당겨왔다.
“아직 그대루다. 안경 산 건 빼고.”
낯선 목소리 속에는 개구진 어투가 섞여 있었다. 놀라지 않게 서서히 햇볕을 타고 들어오는 목소리에 어디서 라디오를 틀었나 보다, 했다. 이어 한 마디가 더 들렸다. 코앞에서 지민아이, 하는 김태형.
그제서야 삼사, 또 오월 긴긴 해는 유한한 그의 시간을 달리하며 지는 듯했다. 매화도 한철 국화도 한철, 또 벚꽃도 한철인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십여 년 전에 김태형을 향한 의미 없는 미움이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러나 깨닫고 난 뒤, 이 애의 난만한 표정만은 광채 있는 얼굴만큼 선명했다. 그때 그 한때의 얼굴.
또 다른 한철이 느지막해서야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