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ing
수화
1
<BGM : Jeremy zucker-comethru >
起(기)
역사 한편에 혹은 사람들의 기억 저편에 길이길이 남을 정도로 대단했던 사람을 조상으로 모시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 자랑스러울까? 내가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우쭐거리며 으스댈까? 아니, 천만의 말씀. 그것만큼 또 고역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었다.
선조가 이순신 장군처럼 왜놈들로부터 나라를 지켰다든지, 무당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의 무리들로부터 선을 구했다든지 뭐 그런 듣기만 해도 까다로운 업을 짊어진 인물이라면, 후세들은 고통스러움에 상당히 몸서리쳤다. 나라나 세상을 구한 건 구한 거고, 그 반대편의 입장에서는 무자비하게 목숨을 앗아간 극악무도한 죄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로부터 온갖 원성과 악랄한 저주가 퍼부어지기 마련이었다. 왜, 무협 드라마나 삼국지 만화에서 악역이 죽기 전에 단골로 내뱉는 대사가 있지 않은가. 대대손손 너희들의 자손을 멸하겠다고. 태어나는 즉시 죽이거나, 희박한 확률로 살아나더라도 평생을 병마에 시달리다 저세상 가게 만들겠노라고. 그 노기 어린 분노가 선조들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으니 아무런 힘도 없는 자손들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겠다는 고약한 심보였다. 죄라고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무가 뿜어대는 산소를 갉아먹은 죄밖에 없는 자손들은 도대체 무슨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래서 영웅이라고 추대 받은 자들의 후세들은 제 선조들처럼 사람들에게 우러러 보아지는 삶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죽기까지의 제 삶이 제발 평범하고 평탄하게 흘러가기만 한다면 소원이 없었다.
그리고 여기, 오늘도 극심한 가위에 짓눌리느라 잠을 자면서도 신음을 내지르기 바쁜 태형이 그 비운의 후손이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간 계절 탓에 이제는 밤에도 쌀쌀한 바람이 불지 않았건만, 태형의 잠옷은 땀이 스며들다 못해 흠뻑 젖어 있는 상태였다. 오른쪽으로 휘젓다 왼쪽으로 꺾었다 고개를 마구 비틀며 끙끙거리던 태형이 중얼거렸다.
“아오. 이 자식들 또 기어올라왔어......”
어제는 웬일로 얌전한가 했더니 오늘은 더 지랄맞네, 이 개노무 자식들.
일 년에 딱 한 번, 제사를 지낼 때마다 웃어른들 사이에서 오가는 전설 비슷한 게 있었다. 태형의 옛 조상, 그러니까 태형의 할아버지의 고조 할아버지께서ㅡ할아버지의 고조 할아버지라니 생각만 해도 까마득한 조상이었다ㅡ 명성이 자자한 퇴마사였다는 그런 소문이. 살아있는 인간을 유린하고 괴롭히는 것들, 흔히 ‘귀신’이나 ‘요괴’, ‘영물’이라고 통칭되는 존재들을 퇴치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셨다고. 그래서 그 선조께서는 훗날 퇴마의 능력을 전수받지 못한 제 후손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당신이 밟는 땅 곳곳마다 결계를 치고 명을 다하셨다고. 복잡한 신경다발의 집약체인 뇌도 없는 기계 따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들을 한사코 믿지 않은 태형이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헹, 코웃음 치기 바빴다. 귀신이니 요괴니, 영물이니 퇴마니. 조선시대라면 모를까. 불가능할 것 같던 우주 비행까지 가능해진 21세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코웃음 치던 태형을 되려 비웃기라도 하듯 태형이 재작년 겨울, 서울에 합격한 대학으로 상경하면서부터 그 기이한 것들로 치부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현실로 일어난 것이 아니겠는 가. 살아가는 동안 주변을 거닐면서 단 한 번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존재들을 돌연 인식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보게 되었다면, 진작 심장마비로 승천했거나 어느 산골짜기에 처박혀서 제 조상처럼 퇴마의 길을 수련했을 테니까. 항상 작렬하는 태양이 지고 은은한 달이 떠올랐을 때가 문제였다.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늘 무언가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그냥 꿈자리가 사납네, 하고 말았던 것이 하루가 다르게 제 몸을 짓누르는 정체 모를 것들의 무게가 묵직해지는 것을 실감하고, 나중에는 손가락도 까딱하기 힘들어질 정도라서 깨닫고 만 것이었다. 이게 소위 ‘가위’라고 불리는 증세였음을. 믿고 싶지 않아도 제 몸을 더듬는 손바닥의 촉감이라든지, 천인공노한 죄인 찢어발길 듯 노려보는 시선이라든지 그런 게 너무 강렬하고 선명해서 착각이라고 치부할 수가 없었다. 가끔은 아침에 벌떡 일어났을 때 손목이나 목을 억세게 조른듯한 흔적도 남아 있었으니까.
“아, 환장하겠다......”
오늘은 또 얼마나 코끼리 같은 게 올라와 있길래 이따위로 무거운 거야.
할아버지의 고조 할아버지께서는 왜 그런 세상 좋은 일을 해서는 날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거야. 굳이 당신이 하지 않으셨어도 대신 퇴치해줄 사람 한 명쯤은 있었을 텐데.
결론만 말하자면 해결책이 없어 절망스러웠다. 아니, 정확하게는 탈출구가 ‘아예’,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고향으로 귀향하면 자연히 해결될 일이었다. 명절 때가 아니면 안부 인사 한 번 건네지도 않던 친척들에게 거의 애원하다시피 이 잡듯 정보를 캐낸 결과, 그 우스갯소리로 넘긴 선조의 결계가 허구가 아니고 정말 실재했던 거다. 그래서 제가 그 집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멀쩡하게 잘 수 있던 거였고. 아무런 방해와 원망 없이. 태형은 별안간 분노가 치솟았다. 아오, 그럼 애초에 믿을 수라도 있게 집구석에 요상한 부적 하나라도 붙어있던가. 무슨 노란 종이에 새빨간 피로 막 어려운 한자 적혀 있는 거, 뭐 그런 것도 없고. 대체 결계를 어떻게 친 거야? 땅이라도 파서 뭐 결계석 같은 거라도 심어놨어?
태형은 거창이 싫었다. 보다 명확하게는 시골이라고 봐도 무방한 외지고 외진 곳에 처박혀있는 제 집이 싫었다. 한창 앞날이 창창한 스물두 살이다. 얼마나 노는 게 좋은가.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거리에서 대형견처럼 혀 헥헥 내밀며 얼마나 신나게 뛰어다니고 싶겠느냔 말이다. 게다가 서울은 배움의 기회도, 그 배움을 전수해주는 교수들의 식견도 거창과는 차원이 달랐다. 폭발하는 젊음도, 그 젊음의 열정으로 폭발시킬 수 있는 재능도 어느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태형이었다. 때문에 태형은 편안하겠지만 지루하고 고루할게 분명한 삶 대신 잠을 포기하기로 선택했다. 살아생전 무료 급식 먹게 해줄 때 말고는 발을 들이지도 않던 교회로 가서 하나님께 기도도 드리고, 험한 산행길 끝에 부처님 동상 영접해서 108배도 올리고, 하다 하다 그렇게 신기가 뛰어나다는 무당까지 찾아가서 굿도 해봤지만 다 무용지물로 마땅한 탈출구가 정말 없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인간은 규칙적으로 잠을 자는 동물이다. 인간의 대표적인 욕구 세 가지를 꼽으라면 식욕, 성욕, 그리고 수면욕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잠이라는 것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다. 아주 필수불가결한. 수면을 제외한 삶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인간이 수면을 취하는 이유는 낮 동안 소모된 에너지를 보충시키고 손상된 디엔에이를 복구시키기 위해서라던데 그 어떤 것도 회복되지 못하는 태형의 지난 이 년은 단어 그대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너무 밝아서 문제라고 지적받았던 성격은 저승사자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세상 그렇게 음침하며 음산하게 뒤바뀔 수 없었고, 반지르르하게 빛나던 낯짝도 퀭하게 찌들어갔다. 서울로 상경했을 때만 해도 제2의 반 고흐가 되겠다며 당차게 포부하던 지난날의 모습은 더 이상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냥 학업에 찌들고, 과제에 찌들고, 하다 하다 귀신에게까지 찌드는 평범하지 못한 예대 삼학년이었다. 순수미술 회화과를 전공하는.
제 명에 못 살고 깨꼬닥하면 승천하자마자 조상 멱살부터 잡아 올리리라. 너 이 새끼야.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어. 글러먹었다고. 왜 그딴 짓을 해서는. 이제는 조상에 대한 존칭도 날려버리고 이 새끼, 저 새끼를 부르짖던 태형은 급격하게 차단된 숨통에 컥컥거렸다.
“아이고. 나, 나 죽는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평소처럼 눌리는 가위라고 간주하기에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무게감이었다. 뭔가, 이건 꼭...... 그래. 실제 사람에게 압사당하는 듯한. 언제나처럼 누군가가 뒤에서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앞에서 몸을 제압하며 생고문하는 것 같은 감각과는 달랐다. 그냥 누군가가 제 몸 위로 철퍼덕 올라탄 느낌이었다. 특유의 원망 가득한 시선도 느껴지지 않았고. 태형이 눈을 파드득 치켜떴다. 그리고 그대로 꼴까닥 기절하는 줄 알았다.
아악!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
태형은 입을 떡 벌린 채 댕그랗게 커진 눈만 연신 깜박거렸다. 어찌나 크게 벌렸는지 침이 줄줄 고여 천연 폭포라도 이룰 기세였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들어 제 뺨을 가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상반신을 점령하고 있는 이 요상한 게 움직이기라도 할까 봐 완전히 얼어붙었다. 어둠 때문에 눈이 침침해진 탓에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인 실루엣이 달빛에 반사되었다. 복슬복슬한 밝은 색 머리카락. 웅크리고 있는 몸. 얼굴은 태형의 가슴팍에 폭 파묻고 있어 확인되지 않았다. 태형은 차라리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귀신처럼 피 철철 흘리는 입으로 히죽히죽 웃기라도 하고 있으면 진심으로 호러였으니까. 나 전설의 고향 진짜 싫어한다고. 오프닝 노래 듣기만 해도 경기 일으킨단 말이야. 아무리 봐도, 어떻게 생각해봐도 일말의 체온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건대 인간이 아니었다. 태형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신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옷자락이라도 건드려보려고 꿈틀거렸으나 무참히 통과되었다.
오, 신이시여. 오, 나의 조상님.
아무리 내가 천박하게 쌍욕 좀 날렸기로서니 이건 해도 해도 너무 가혹하잖아요. 이런 밴댕이 소갈딱지 같으니라고.
“......”
태형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속눈썹이 파들거렸다. 아직 마음의 준비도 못 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개안을 하게 되다니.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심각하게 갈등하기 시작했다. 이 귀신이ㅡ자꾸 귀신이라고 하면 안 그래도 무서운데 더 무서우니까 요괴라고 정정한다ㅡ이 요괴가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얌전히 떠나가주기를 믿고 기다리는 게 나을까, 아니면 그냥 혀 깨물고 자결해서 새로 환생하는 게 나을까.
그렇게 한 십 분 동안 벌벌 떨며 갈등했을까, 일단 목젖을 누르고 있는 주먹부터 어떻게 해결하고 싶었다. 이러다가 나 진짜 죽을 것 같아. 저승에 진짜 명단 올라갈 것 같다고. 나 이제 스물두 살 이란 말이야! 조상 새끼가 잘못했지 내가 잘못했냐? 숨이 넘어가기 시작하는 인간만큼 또 절박한 인간이 없을 것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태형이 저도 모르게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발버둥 쳤을 때, 아주 소름 끼치는 시선이 뇌리를 스쳤다. 섬뜩했다. 저도 모르게 슬금슬금 내려가는 눈동자. 태형은 공포영화에서 왜 주인공들이 멍청하게 뒤를 돌아보는지 골백번도 넘게 이해했다. 의지와는 다르게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으악!”
흉흉한 안광과 딱 마주쳤다. 그것도 정면으로.
“악! 아악!!! 무, 무, 물렀거라! 물렀거라!!”
언제 석고상마냥 굳어있었냐는 듯 펄쩍 뛰어올랐다. 개구리도 이보다 점프를 잘할 수는 없었다. 트램펄린 위에서 튀어 오르는 벼룩도 마찬가지였다. 뭐가 퇴마에 효과적이지? 소금? 팥? 마늘? 결단코 퇴마는 나의 길이 아니라면서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지난날이 이렇게 통탄스러울 수가 없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팥 따위 집구석에 있을 리가. 요리 재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데 마늘은 또 어떻고. 제발 소금이라도 효과 있길 바라면서 태형은 짚이는 조미료 통마다 집어던지고 흩뿌리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나미아미타불... 이런 씨부랄, 퇴마 주술이 뭐지. 흡사 무당이 굿이라도 하듯 노기는 실컷 내뿜으면서도 눈물 콧물이 다 나와서 살려주세요, 엉엉 오열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또 한 십 분 동안 발광했을까. 헥헥거린 태형이 허리를 숙이고 무릎에 손을 짚었다. 말하지 않았는 가. 지난 이 년 동안 회복될라치면 갉아먹히기 바빴던 가련한 삶이었다. 태형의 체력 또한 가련한 삶처럼 처참하기 그지없던 것이었다. 그런 태형에게로 여태 멀찍이 떨어져서 태형의 꼴값을 구경하던 무언가가 한 걸음에 척 다가왔다. 흠칫거린 태형이 벽에 달라붙어서 더 이상 뒤로 갈 공간도 없는데 계속 발돋움을 시전했다. 내 명은 여기까진가 봐. 그가 죽음을 예감하고 눈을 질끈 내리 감았을 때, 살랑거리는 목소리가 나풀나풀 날아왔다.
“이제 좀 진정이 됐어?”
태형은 이상함을 감지했다. 원래 귀신 목소리가 이렇게 나긋나긋하던가. 고약한 하수구 냄새라도 날 줄 알았건만 전혀 아니었다. 세상에, 요즘 귀신들은 향수까지 뿌리고 다니나 봐. 살아있지도 않은 주제에 뭔 놈의 향기가 이렇게 좋고 난리람.
“너가 하도 놀란 것 같아서 일부로 가만히 있었어.”
살아있는 인간 잡아먹는 기술도 발전했나 보다. 하긴, 시대가 얼마나 발전했는데 얘네들도 허구한 날 게걸스럽게 뜯어먹지는 않겠지. 요물처럼 꼬셔서 긴장 풀리게 한 다음 단숨에 잡아먹으려는 속셈을 누가 모를 줄 알고. 태형은 당할 때 당하더라고 얌전하게 잡아먹혀 줄 의향은 없었다. 가능한 있는 힘껏 반항할 생각이었다. 사나이가 그래도 가오가 있지. 그런데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꼬여내는 말이라든지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행동이 없었다. 하다못해 그런 낌새마저도 느껴지지 않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얘는 다른 요괴들처럼 분노를 형형하게 드리우지도 않는다. 결국 호기심을 견디지 못한 태형이 한 쪽 눈꺼풀을 게츰스레 떴다.
바로 코앞에 있는 하얀 귀신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제 나 말해도 돼?”
그리고 화사하게 웃었다. 귀신이 화사하다니, 이상한 어법이었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었다. 온통 별난 것들 천지였다. 당황스러워하는 태형을 더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그 별난 귀신의 입으로부터 쏟아진 말이었다.
“나 좀 도와주라.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그래.”
온통 새까맣던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는 방향으로 꼭 천사가 날아다니는 신전에서나 쏟아질 것 같은 눈부신 빛줄기가 하나둘씩 창문을 투과한다. 이십 대 초반의 남자 혼자 사는 집이 넓어봤자 작달만한 거실 하나와 방 두 개가 고작이었다. 인정사정 없이 얼굴로 내리쬐어지는 햇빛에 태형은 눈살을 마구 찌푸렸다. 아오, 이놈의 집구석은 쓸데없이 창문만 커서는. 암막 커튼이라도 달던가 해야지. 금방이라도 실명할 것 같은 눈부심이었지만, 절대로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정체 모를 귀신과 지금까지 대치를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대치라고 보기에는 좀 일방적인 구석이 있었지만. 물론 태형 혼자서만.
“좋은 말로 할 때 나가.”
단호한 말투에 귀신이 가지런한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입술도 부리처럼 뾱 내밀었다. 서운한 듯, 울상 짓는 듯. 애처롭게 눈망울을 빛내기까지 한다.
“너 그렇게 불쌍한 척해도 소용없거든?”
“......”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우리 할아버지 퇴마사야. 내가, 어? 전화 한 통만 하면, 어? 너 바로 소멸하는 수가 있다?”
물론 개뻥이었다. 할아버지는 퇴마의 ‘퇴’자와도 거리가 먼 만년 농사꾼이셨다. 지금쯤이면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 떼기들을 토벌하느라 아주 정신이 없을. 귀신을 소멸시켜주기는커녕 한창 열이 단단히 받은 할아버지로부터 욕받이가 될 터였다. 고막이 소멸할 수는 있겠네.
“나 귀찮은 거 딱 질색이거든? 그러니까 얼른 나가라.”
그리고 그걸 저 귀신도 알았나 보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나가라고, 소멸시킬 거라고 한 오백 번은 더 말한 것 같은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태형이 억지로 벌린 거리를 조금씩 좁혀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 불쌍한 눈망울을 하고 무릎으로 꾸물꾸물 기어 온다. 원래부터 남을 속이는 재주에는 벼룩의 간만큼도 소질 없고 배짱도 없던 태형이었다. 하기사, 목소리만 좀 가다듬었지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삿대질해봤자 통할 리가 없었다. 옆 동네 초등학교 애들도 태형보다 거짓말에 능할 것이었다. 이런 젠장,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사촌 형이 깡패질하며 주변 사람들 뒤통수 후려치고 다닐 때 나도 좀 배워두는 거였는데. 환장하겠는 거다. 오지 말라고 꽥꽥 소리 질러봤자 들어먹지도 않고 그렇다고 기가 막히게 협박할 수단도 떠오르지 않고.
귀신 부탁이 남 저주하는 거 아니면 대신 죽여주는 일일게 분명한데, 누가 좋다고 하겠는 가. 방금 전까지 신명나게 헐뜯었던 조상님께 어떻게든 살려만 달라고 싹싹 빌었다지만, 감방에서 콩밥 먹으며 목숨 연장하는 인생은 진짜 별로였다. 진심으로 이 밴댕이 소갈딱지 같으니라고. 진짜 살려만 주면 어떡해요? 당신은 사람 실컷 살려놓고 난 살인청부나 하라고? 태형이 환멸감에 차올라서 또 가련한 인생을 곱씹는 사이, 귀신이 한 걸음 더 기어 왔다. 이제 코앞이었다. 태형의 발끝 바로 아래로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이 지척이었다. 무심결에 시선을 아래로 내리던 태형이 흠칫거렸다.
“아 진짜! 오지 말라니까?! 내 말이 말 같지 않냐? 개소리 같아?!”
진짜 개소리를 했다. 말을 해도 뭐 저따구로 등신 같게 했지.
“어려운 거 아니야. 쉬운...... 아니, 엄청 쉬운 부탁은 아닌데 나 막 위험한 부탁하는 거 아니야. 정말이야.”
“아아.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저기... 그러지 말구.”
“안 들린다! 왜 갑자기 귀가 먹먹하지?!”
이제는 배 째라는 식으로 버티는 방법밖에 없었다. 무논리에는 무논리로 맞서는 게 상책. 실체하지도 않는 몸을 발로 밀어낼 수도 없으니 태형은 등을 돌리고 아아아아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이 나이 먹고 이러고 있으려니 창피함이 정말 말도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무언들 못하리. 한참을 정신 사납게 말 지지리도 안 듣는 초등학생처럼 그렇게 유치하게 굴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
“......”
태형은 갑자기 심장 어딘가가 약해진 것 같았다.
옛날부터 태형은 자그마한 것에 약했다. 콩알만 한 게 귀엽기까지 하면 아주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무장해제돼서 웃음을 허흫 흘리고 다니기 일쑤였다. 그 작고 깜찍한 게 처연하기까지 하면 그냥 게임오버였다. 아니, 진짜. 쟤는 무슨 귀신 주제에 저렇게 버려진 강아지처럼 궁상맞은 표정을 짓고 난리야? 생긴 건 꼭 천사같이 반짝반짝해서는. 측은지심 들게. 흡사 순진한 어린아이의 사탕을 뺏어버린 못돼 처먹은 아저씨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잠깐.
측은지심? 못돼 처먹은? 내가 왜!
위험해지는 사고의 흐름을 뚝 끊고 퍼뜩 정신을 되찾은 태형이었다. 그래. 이렇게 불쌍한 척 꼬드겨서 내 인생을 말아먹을 속셈이야. 절대 넘어가지 말아야지. 결단코 방심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이미 눈동자는 슬금슬금 토라진 얼굴 쪽으로, 귀도 힝힝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활짝 열리었다. 결국 태형은 물꼬를 트고 말았다.
“......뭐, 뭔데.”
“...응?”
“뭐냐고. 그 부탁이란 거.”
경적이 울렸다. 너 인생 망한다! 아하하! 아하하하! 아주 대차게 망하고 있다?! 안 그래도 망했는데 여기서 얼마나 더 말아먹을 셈이야? 무식하게 큰 징까지 댕댕 쳐가며 확성기로 당장 그 입 다물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그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전, 귀신이 태형에게로 확 몸을 붙여왔다.
“내 부탁 들어주는 거야?!”
“악! 야! 야야! 떠, 떨어져. 떨어지라고! 저리 가. 그리고 오해하지 마라? 난 물어만 봤지, 들어준다고는 안 했어.”
방긋방긋 기운을 차리던 얼굴이 곧바로 풀이 죽은 시금치가 된다. 태형의 위를 올라탔던 체구가 꾸물꾸물 내려간다. 그래도 새벽 내리 매달렸는데 아랑곳 않던 태형이 물어봐 준 게 어딘가 싶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는 귀신이었다.
시작은 일주일 전이었다. 일주일 전이라고 딱 짚어 표현하는 이유는 기억나기 시작하는 시점이 그때부터였기 때문이었다. 지민은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자동차들이 벌떼처럼 주행하는 도로 한복판 위였다. 그 도로 한복판에 있는 저를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지나가는 운전자들, 실제로 자동차 타이어에 뼈가 으스러진다는 느낌도 없는 제 스스로의 무감각함에 기겁을 했다.
처음 하루는 그야말로 공황상태였다. 극도의 불안감으로 공포증이라도 도진 사람처럼 시도 때도 없이 발작을 일으켰다. 도저히 제 눈앞으로 펼쳐진 현실을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게 불가능했다.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끔찍한 도로 위에서 열 번도 넘게 기절을 하다 정신 차렸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여전한 지옥이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동물은 지구상에서 생존력이 가장 끈질긴 생물이었다. 아무런 생존도구 없이 극한의 오지에 떨어졌을지 언정,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구를 제작하고 종족을 번식하여 국가를 건국함으로써 부흥을 일으켰다. 어디에서든 진화를 거듭하며 새로운 환경을 창조했다. 그 말은 즉, 어떻게든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라는 소리였다. 개개인마다 적응하는 기간에 차이를 보일 뿐. 달리 말하자면 운명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길 외에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이유였다. 지민도 마찬가지였다.
나흘째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을 때, 지민은 도롯가 주변에 있는 커다란 붉은 다리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저를 알아봐 주는, 하다못해 제 목소리 한 가락이라도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정처 없이 길거리를 배회했다. 통각은 고사하고 숨을 쉰다는 기본적인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 몸이었지만, 맨발이 서러웠다. 그늘에 숨어 있으면 한기가 끼쳤다. 차라리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면 더 괜찮았을지도 모르는데 하필 한기는 자각할 수 있는 거다.
「혹시! 제 목소리 들리는 사람 있어요?」
아무도
「제가 보이는 사람 없어요?!」
어느 누구도
「......저기요! 내 목소리... 가지 말아요......」
그 어떤 사람과도 소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나 넘쳐 나는데. 이렇게나 생기가 가득한 세상인데. 동분서주한 지난날의 시간 동안 깨달은 거라고는 혼자만 다른 차원의 미지한 공간으로 튕겨 나와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과 제 사이가 거대한 유리벽으로 가로막히다 못해 완전히 단절돼버린 것처럼. 길바닥 한복판에서 고독감보다도 더 깊은 절망감이 파도쳤다. 참다 참다 울음보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민은 존재의 의의마저 몰랐다. 내가 왜 이렇게 떠돌고 있는 건지. 누구에게 살해라도 당한 건지 혹은 사고를 당한 건지. 이렇게 되기 전에는 도대체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인지. 어디에서 살았는지. 교류하는 가족이나 친구는 있었는지. 몇 살인지. 하다못해 이름 한 글자라도 기억해낼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비참하고 초라한 감정에 사로잡히지는 않을 터였다. 이대로 그 누구와도 닿지 못한 채, 스스로에 대한 것조차 한 줌 알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도는 게 아닌가 싶어 훌쩍였다. 지저분한 아스팔트 위로 소리도 없는 물방울이 방울방울 쏟아졌다. 서러운 흐느낌이 오열감으로 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오열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니, 애초에 태어난 게 맞기는 한 걸까. 하늘에서 무슨 큰 죄를 범하고 지상으로 추방된 것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마저 솟구치던 그때였다.
낯선 목소리가 불쑥 끼쳤다.
「아, 죄송합니다. 앞을 제대로 못 봤어요.」
지민은 말라비틀어져 있던 온몸의 신경세포가 곤두서는 감각을 느꼈다. 분명 몸이 닿았다. 분명 온기가 스쳤다. 아주 찰나였지만. 황급히 주변을 살핀 지민이었다. 하필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탓에 거리가 북적였다. 그렇지만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남자는 분명 지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선명한 동공이 직선적으로 꽂혀온다. 심장이 팔딱거렸다. 금방이라도 맥박이 터질 것처럼 마구 뛰어댔다. 남자는 곧 짧게 목례하고 등을 돌렸다. 지민이 그 등을, 등 뒤로 늘어지는 그 그림자를 절대 놓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를 쭉 따라왔다고?”
“으응.”
“언제부터 내 주변을 맴돌았는데?”
“...그저께 저녁...”
묻지 말았어야 했다. 역시 끝까지 나 몰라라 잡아떼고 있어야 했다. 짐작했던 것보다는 스케일이 작았지만 다른 의미로 스케일이 컸다. 태형은 토해지려는 밭은 한숨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내 목은 왜 조르고 있었는데?”
“어? 내가?”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내 몸에 올라타서는 날 인정사정 없이 압사시켰잖아. 꼼짝도 못 하게 두 손으로 내 목 조르면서.”
“아니야! 그거 조른 거 아니야! 오해야! 난 그냥 너 도와주려다가 네 몸이 따뜻해서 잠깐 옆에 누워있는 다는 게......”
“...도와줘? 그게 무슨 말이야?”
지민이 필사적으로 손을 허우적거리며 해명했다. 그저께 저녁부터 태형에게 뭐가 들러붙었단다. 창문 너머로 음산한 기운 넘치는 께름칙한 게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태형의 몸 위로 올라탔다고. 게다가 한 둘이 아니었다고. 그런 걸 처음 목격해서 또 졸도할 뻔한 지민이었지만, 겨우겨우 발견한 은인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을 허망하게 잃을 수 없었다고. 그래서 고군분투하며 쫓아냈다고. 혹시 또 찾아올까 봐 근처에서 이틀 내리 불침번을 섰다고. 그러다가 너무 졸려서 깜박 잠들었다고 한다. 눈을 가늘게 뜬 태형이 미심쩍다는 눈초리로 흘겨보니까 지민은 웅얼웅얼 덧붙였다. 손가락 두 개를 빙빙 돌리면서.
“......그, 그게...”
“......”
꾸지람 받는 아이처럼 또 어깨를 늘어뜨린다.
“......사람 온기가 너무 그리워서.”
“......”
“...추워가지고 너 옆에 아주 조금만 기댄다는 게 나도 모르게 매달리면서 잠들었나 봐. 미안해. 숨 많이 막혔어? 내가 진짜 그럴려고 그런 게 아닌데......”
막히는 정도가 아니라 하마터면 골로 갈뻔했다. 염라대왕 면전 구경할 뻔했지. 다시 회자시켜도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태형은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다. 아까처럼 나가라고 매정하게 구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 저 조그만 몸으로 그간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겠는가. 얼마나 사람의 체온이 그리웠으면 본능적으로 파고들었겠냔 말이다. 그런 걸 다 제치더라도 일단 매일매일의 꿈자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별 거지 같은 것들을 물리쳐준 마음이 고맙기도 했다. 그래서 어제 잠자리가 괜찮았던 거였다. 까슬거리는 눈꺼풀을 연신 문지르는 얼굴이 조금 마음 쓰이기도 하고.
사실 다른 존재들은 전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데, 왜 지민만 인식할 수 있는 건지 그게 가장 의문이었다. 물론 여타 귀신이나 요괴들처럼 제 손으로 만져볼 수는 없었지만. 궁금한 게 산더미였으나 태형은 부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제안을 던졌다.
“이름부터 정하자.”
“......어?”
“계속 야, 너, 귀신, 이렇게 부를 수는 없잖아.”
“......”
재빠르게 의도를 읽지 못하는 지민에게 태형이 퉁명스레 밝혔다.
“도와주겠다고, 바보야.”
“......”
“기억 찾는 거 도와달라는 말 하고 싶었던 거잖아. 아니야?”
지민의 안색이 눈에 띄게 화사해진다. 다짜고짜 태형의 손을 붙잡는다. 고맙다고 막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얼마나 격렬한 지 금방이라도 떨어질 기세였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이렇게까지 이계의 감촉이 선명했던 적은 없었는데. 꼭 실제 사람에게 손을 잡히기라도 한 것 마냥. 태형은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아. 정말로 인생 망했다는 소리가 장대하게 울려 퍼졌다. 아니, 망한 수준까지는 아니고 한동안 번거로운 일에 시달릴 게 분명하다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그래도 그 경고를 귀담아듣기에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애를 내버려 둘 수가 없는 것이었다. 외면해버리면 진짜 잘못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니까.
나 참. 하루아침에 이게 뭔 일이냐. 길 잃은 고양이를 주은 것도 아니고.
“고마워! 진짜 고마워! 넌 이름이 뭐야?”
“......김태형.”
뭐...... 생긴 것만 보면 고양이 같긴 하네. 새끼 고양이. 머리가 복슬복슬하고 노란색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꼭 고대 벽화에 그려진 어린 천사 같기도 했다.
“태형아. 그럼 나 여기 계속 있어도 돼?”
“......어. 그, 그래. 그렇게 해. 갈 데도 없을 텐데...”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이 찰랑였다. 그 아래 있는 눈망울은 더 초롱초롱 반짝거린다. 확실히 태형은 자그맣고 사랑스러운 것에 약했다. 진짜 얘는 왜 이렇게 생긴 거야? 귀신 맞아? 전설의 고향에서 등장하는 애들은 하나같이 다 팔 없고 다리 없고 징그러운 몰골이던데. 태형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일. 동거가 뭐 대수라고. 별일 있겠어?
“근데 너 향수 뿌리고 왔어? 나한테 잘 보이려고? 냄새 되게 좋다.”
“응? 나 그런 거 뿌린 적 없는데...?”
“어? 그럼 이건 뭔 냄새야?”
“나는 안 맡아지는데...?”
承(승)
오싹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다름 아닌 귀신이랑 부대끼고 사는 거니 오싹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밖에 없지만, 사실 오싹하다는 것은 순전히 태형에게만 해당되는 소리였다. 지민의 시점으로 보면 좀 웃기고 재밌는 동거였으니까. 아무튼 만 나흘이 지나고 또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태형은 우선 나흘 동안 지민의 일상 패턴을 파악해보았다. 그런데 사실, 파악이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지민이 제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는 게 일과의 전부였으니까. 원래 혼자 막 편하게 어지르며 살다가 갑자기 동거하게 되면 불편한 점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럴 거라 예상도 했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치명적인 부분들이 분명 있었다.
우선 첫 번째. 태형은 노른자가 톡 터진 계란을 한 입에 집어넣고, 거창에서 할머니가 보내준 알타리 김치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반찬만 먹기는 좀 짭조름해서 꼬슬꼬슬한 햇반까지 한 숟가락 가득 퍼서 먹으려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수저를 탁 내려놓았다. 밥알이 총알처럼 튀긴다. 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한 계란 부스러기와 김치 조각들이 뒤섞여 어금니 주변을 나돌아다닌다. 마치 똥이라도 씹은 것 같은 표정의 태형과는 달리 지민은 말간 얼굴로 그런 태형을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멍하니 입을 벌리며. 무슨 동물원 원숭이 보듯.
아까부터 계속! 한시도 눈 돌리지 않고 계속!
“......”
입에 파리 들어가겠다.
“언제까지 볼 건데?”
“어?”
“내 얼굴이 그렇게 재밌어? 뭐가 그렇게 재밌어. 보기만 해도 웃겨?”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태형은 생각했다. 얘는 진짜 눈치가 없구나. 아니면, 없는 척하는 초고단수거나.
“아니. 내가 체할 것 같다고.”
그제야 해맑았던 얼굴이 조금 시무룩해진다. 꼬물꼬물 고개를 내린다. 모기만 한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한다. 안 볼 테니까 얼른 먹으라고. 너 학교 가야 하지 않냐고. 흠, 지금은 진짜로 눈치가 없는 거였군. 태형은 겨우 제 복부에 닿을까 말까 한 작은 식탁 아래에서 충전되고 있는 휴대폰 액정을 힐끔거렸다. 늦은 건 아닌데 여유롭지도 않아서 조금 서둘러야 했다. 옛날부터 점심시간만 되면 게 눈 감추듯이 급식을 먹어치우고 축구공을 뻥뻥 차대기 바빴다. 그 습관을 아직도 버리지 못해 빨리 먹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후딱 밥그릇을 싹싹 비운 태형이 그저께 건조대에 널어놓았던 수건을 홱 집어 들고 화장실로 걸어갔다. 상반신이 훤히 비치는 거울 정면을 바라보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지민도 옆에 자리하고 있다. 잇몸이 다 상할 정도로 무식하게 양치질을 하고, 또 무식하게 찬물을 어푸어푸 끼얹고, 초스피드로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후 한 쪽 어깨에 가방을 느슨하게 걸치며 운동화를 신을 때까지도 지민은 계속 태형의 곁을 배회했다.
그러니까, 이게 문제라는 거다. 정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태형이 뭐만 하면 졸졸 따라다니는 지민의 행동이. 지금처럼 밥 먹고 씻을 때는 물론이고 설거지할 때도, 학교 갈 때도, 과제할 때도, 자려고 침대에 드러눕는 그 순간까지도 뽈뽈뽈뽈.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기 시작한 후로부터 남의 시선은 의식하지도 않고 살았던 태형인지라 솔직히 시야에 거슬리기는 해도 그럭저럭 넘어가 줄만했다. 괜찮았다. 그런데 발개 벗고 샤워할 때 들어오는 건 진짜 아니었다. 어제 막 티셔츠와 바지를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팬티마저 내리려고 했을 때 갑자기 문을 통과하며 나타난 지민 때문에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고추도 확 떨궈지는 줄 알았다. 재빨리 팬티를 확 추켜올렸기에 망정이지...... 허벅지에 열이 잔뜩 올랐었다. 얼굴도 토마토처럼 시뻘개져서 꽥 소리를 질렀었고.
「악! 너 뭐, 뭐야! 미쳤어? 뭘 보고 있어! 빨리 안 나가?!」
그리고 두 번째. 밖에서 자꾸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건다는 점이었다. 이건 메뉴 고르기 귀찮아서 발가락으로 대충 아무 전화번호부 뒤적거리고 아무 배달 음식이나 시키는 것처럼 쉽게 넘기고 간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여간 정신 사납고 귀찮은 걸 떠나서 사람들이 저를 어디 머리 아프고 마음에 골병 난 애 바라보듯 혀를 쯧쯧 차기 때문이었다. 쪽팔리다 못해 수치심까지 들었다. 불쌍하다고 수군거리는 목소리는 더더욱 참을 수 없었다. 불쌍하기는 뭐가 불쌍하다는 거야? 남의 집 귀한 자식한테.
때문에 태형은 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풀어헤쳐진 운동화 끈을 다시 단단하게 조여 묶은 태형이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움직이려는 지민의 앞으로 팔을 척 뻗어서 가로막았다.
“지민아. 너 오늘은 집에 있어.”
아, ‘지민’이라는 이름은 임시로 부르기로 한 이름이었다.
처음 만난 날 오전 강의가 휴강되는 바람에 분주하게 준비할 필요가 없어진 태형은 아빠 다리를 하고 지민과 마주 앉아 골몰했다. 이름을 뭐라고 정할지에 대해서. 어떻게 지을까, 뭐라고 부를까 약 십 분 정도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다 에너지를 팍팍 소모하며 밤을 꼴딱 지새운 탓에 다 귀찮아져서 그냥 나비야, 짱구야 그렇게 부르면 안 되나 무성의의 절정을 찍으려던 찰나였다. 지민이 신난 얼굴을 하고 태형을 불렀다.
「태형아! 나 이거! 이거 할래. 내 이름 이걸로 할래!」
「...어? 그래, 어떤 거? 뭐?」
「지민! 박지민!」
「그래. 그럼 그걸로 하......」
귀찮기도 하고, 본인이 좋다는 이름이 있는데 굳이 말릴 의지가 벼룩의 코딱지만큼도 없던 태형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잠깐만. 그런데 왜 이렇게 낯이 익지. 왜 어디서 들어본 것만 같지. 뭔가 불길한 기분이 끼쳐서 다시 또렷해진 정신으로 지민을 바라보던 태형이 지민의 뒤로 시선을 던지다 벌떡 일어났다. 기겁하며 책상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비밀의 책이 활짝 펼쳐져 있는 상태였다. 나흘전, 그러니까 지민을 만나기 직전까지 태형이 읽었던 페이지 그대로. 태형의 표정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다, 다른 이름으로 해.」
「왜에. 난 이 이름이 가장 끌린단 말이야.」
「다른 걸로 하자니까? 그 이름 별로야. 내 친구들 중에 이름 더 예쁜 애들 많아. 보검이도 있고, 민재도 있고, 성재도 있고, 형식이도 있어.」
「싫어. 나랑 다 안 어울리잖아. 책에 너 이름 나와서 그래? 너랑 여기 ‘지민’이라는 애가 쪽쪽거리고 섹,」
「해! 어어, 그 이름으로 해! 좋다. 짱 멋있어. 예뻐. 너랑 완전 천생연분이야. 지민으로 하자. 이제부터 박지민이라고 부를게. 됐지?」
손사래를 친 태형이 얼른 책을 덮었다. 어제 엉덩이 보이고 불알 크기 까발려질 뻔한 것보다도 얼굴이 더 화르륵 화르륵 불타오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 진짜. 김태희. 이 지지배 가만두지 않을 거야. 책을 다 불태워버릴 거야.
김태희, 그러니까 태형과 세 살 터울이 나는 태형의 셋째 누나는 글을 쓰는 작가였다. 로맨스 소설 작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보이즈 러브 소설‘만’ 쓰는. 세간에서 흔히 BL 작가라고 부르더라. 콩알만 했을 때부터 글 쓰는 재주가 하도 뛰어나서 각종 문학상이란 상은 다 타오더니, 그 귀한 재능을 호모 덕질하는데 모조리 쏟아부을 줄은 가족 그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고집부리기 대회에 나가면 황소도 가뿐하게 제압하고 남을 정도라서 감히 말릴 생각조차 그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고. 태형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이 지지배가 제정신인가 기겁했지만 어차피 본인 인생인데 알아서 제 갈 길 잘 가겠지, 싶어 간섭하지 않았다. 그런데 되려 셋째 누나가 태형의 인생에 자꾸 끼어드려는 게 문제였다. 작가로서의 재능을 한층 더 갈고닦아줄 실험 대상으로서 오 남매 중 유일한 아들내미였던 태형이 실험대에 오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내의 정확한 마음을 좀 연구해 봐야겠다며, 본인이 남자들의 심리를 기깔나게 표현했는지 검수하고 첨삭해달라고. 부탁도 아니고 강요였다.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응해줄 태형이 아니었다. 고집으로 치면 태형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괜히 같은 성을 타고난 핏줄이 아니었다.
「내가 미쳤냐? 미치려면 누나 혼자 곱게 미칠 것이지 이딴 걸 내가 왜 읽냐고!」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이딴 거? 이딴 거? 이딴 거!!!」
물론 겁대가리 상실하고 왈왈 대들었다가 후두골이 푹 꺼지기 직전까지 후려 처맞고는 바로 뉘우쳤지만. 누나의 핏줄은 남동생의 핏줄보다 훨씬 튼튼하고 튼실했다. 남동생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를 말해보라고 하면 엄마도 아니고 아빠도 아니고 계모보다 못돼 처먹고 보디빌더보다 우락부락한 제 누나였다.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 태형은 셋째 누나가 연재 주기에 돌입할 때마다 저예산 노예ㅡ그래도 양심은 남아있는지 쥐꼬리만한 용돈을 챙겨주었다ㅡ가 되었다. 지금의 책 또한 태형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곧 공개될 신간이었다. 다만, 사전에 저와 협의도 없이 제 이름을 픽션에 넣을 줄은 몰랐지만. 그것도 남자 주인공들이 아주 질펀하게 뒹굴고 저속한 말을 사랑의 밀어처럼 속삭이는 느와르 장르에. 제 누나는 갈수록 가관이었다.
아오, 내 언젠가 이런 망측한 일이 터질 줄 알았지. 김태희가 기어코 경을 치는구나.
지민이 꼭 놀리고 싶어 죽겠는 철딱서니 같은 얼굴을 하고서 눈썹을 까딱거렸다. 눈도 얄밉게 치켜세우고 음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손가락을 쭉 뻗어서 태형의 옆구리를 툭툭 건드리기까지.
「너, 의의로 부끄럼 많구나.」
뭐야. 얘 이런 얼굴도 할 줄 알아? 놀릴 줄도 알고? 무슨 눈 뜨고 코 베인 기분이야. 쪽팔림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활개를 쳤다. 여하튼, 그런 자초지종 끝에 낙찰된 이름이었다.
“왜? 오늘은 왜 따라가면 안 돼?”
그리고 지금은 그런 부끄러움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고. 지민은 깜짝 놀라서 얼른 태형의 청자켓을 붙들었다.
“......내일도 안 돼?”
“......”
“태형아...... 나 데려가면 안 돼? 얌전히 있을게...”
집에서 공생하는 동물도 이 정도로 극성맞게 쫓아다니지는 않을 터였다. 실제로 그랬다. 허구한 날 가위에 짓눌리는 게 서럽고 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적적해서 까만 포메라니안을 키워봤는데, 오히려 그 강아지가 자꾸 뭘 봤는지 새벽마다 하도 왈왈, 으르렁 컹컹 짖어대서 편두통에 스트레스성 위염까지 도졌었다. 결국 얼마 견디지 못하고 거창으로 유배를 보냈지. 아마 그 유배길이 연탄이에게도 더 행복했을 거다. 그래서 그런 지는 몰라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데도 꼬리를 몇 번 붕붕 흔들고 마는 게 전부였다. 주인보다도 개껌에 더 관심을 보였다. 너무 매정해서 오히려 내가 더 엉엉 매달렸지.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다.
태형은 눈대중으로 지민의 정수리로 여겨질 법한 위치에서 손바닥을 살랑거렸다. 허공에서 손이 흔들린다. 쓰다듬는 듯한 모션이었다.
“미안. 끝나고 금방 올게.”
마지막으로 세 번째. 가장 치명적인 점이었다. 태형이 ‘게이’라는 거다.
태형의 옷자락을 줄곧 거머쥐고 있던 지민이 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면서 귀찮게 안 할 테니까 제발 옆에 있을 수 있게만 해달라고 애원했다. 무슨 사연 있는 사람처럼 아주 절절하다. 그래, 이 얼굴이 정말 큰 문제였다. 얼굴만 문제인가? 그냥 다 문제였다. 보고 있으면 자꾸 마음이 부실해졌다. 태어날 때부터 위로만 누나들이 네 명 있었던 태형은 또래 친구들 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여자에 대한 환상이 박살났다. 아니, 정정한다. 애초에 있었던 적이 없었지만 하루하루 커가면서 여자라는 존재는 두려운 종족으로 둔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차를 가한 건 셋째 누나 김태희의 일격이 컸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자로 관심이 쏠렸는데, 작고 귀여운 걸 좋아하는 태형의 성향으로서는 지민이 완벽하게 이상형이었다. 얼굴이나 말투, 목소리, 체구 여러 가지로. 아주 그냥 거푸집에 이상형을 콸콸 들이부어서 탄생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상형 월드컵을 한다면 나머지 후보들은 거들떠볼 필요도 없이 단독 우승 후보였다. 그런 애와 내기나 승부를 하면 게임오버는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부탁은 뭐 말할 것도 없지. 그래서 더 안 된다는 거였다. 더 옆에 붙여놓으면 위험하다는 소리였다.
제 마음이.
“......간다. 잘 놀고 있어.”
애잔한 눈망울을 애써 외면한 태형이 현관문을 열었다. 망설이지 않고 닫았다.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빌라 계단을 내려가서 맑은 공기를 들여마신다.
“......”
하늘은 청명하고 햇빛은 화창하며 따사롭기만 한데, 마음 한구석이 그늘로 채인 것처럼 찝찝하다. 영 껄끄럽고 불편하다. 마음만 먹으면 지민은 얼마든지 제 말을 무시하고 따라 나오는 게 가능했다. 지민도 우기면 그만이었다. 꼭...... 반려동물을 홀대하며 집에 두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번 봄의 시작도 썩 산뜻하지 않았다.